[김홍빈 추모 특집 ③ 화보&말‧말‧말] "꿈이 있는 한 어떤 난관도 두렵지 않다"

글 서현우 기자 2021. 7. 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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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남긴 기록과 사진으로 엿보는 김홍빈 대장의 등산철학
에베레스트-로체 베이스캠프. 2015년.
김홍빈 대장은 1991년 매킨리 조난 사고로 열 손가락을 절단했던 시기를 가리켜 “꿈 많은 청년 산악인에게 그건 죽음보다 더한 좌절이었다”고 말했다. 손가락을 앗아간 산이 저주스러울 만도 했을텐데, 오히려 김 대장은 그곳에서 희망을 보고, 도전을 꿈꿨다. 김 대장은 대체 어떤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산을 올랐으며, 또 그 모습은 어떠했을까? 본지가 입수한 사진과 기록을 통해 이를 살펴본다. _편집자 주
에베레스트-로체 베이스캠프. 2015년.
등산의 시작
처음 등산을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면 어떤 의미나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텐트를 치고 야영하고 싶은 호기심에 산을 찾았다가 산에 가면 넓은 시야와 자연 그리고 힘겹게 오름짓하는 몸동작과 더불어 나오는 땀 냄새가 좋아서 산을 다녔다. 그리고 그 산행 속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없이 행복했다. 처음엔 동네 뒷산의 등산로에서 헤매다가 어느덧 죽음과 삶이 갈리는 눈과 암벽 앞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하고 섬 놀라게 되는 것이 등산이 아닐까 싶다.
낭가파르바트 원정 및 훈련 중. 1990년.
즐거움 속에서 의미가 피어난다
사람들은 일에 의미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의미 이전에 우리에게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다. 즐거움 속에서 산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와 등산의 의미가 다가오는 것이다.
캠프1에서 캠프2를 향해 오르는 중. K2. 2009년.
산에서 사람 대하는 법을 배운다
동료를 빼놓을 수 없다. 선등자와 후등자 사이에는 목숨을 담보하는 신뢰가 싹튼다. 산에서는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료를 믿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진실한 만남과 신뢰를 통해 발전하는 인간관계는 산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삶의 가치다.
우리는 정상에 선 사람이 내가 아니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나의 부족함을 대신 채워 주었던 등정자에 대한 감사함과 투철한 등정정신에 존경을 가지며 함께 즐거워한다. 주어진 여건에서 만족할 줄 알고 주어진 기회에 최선의 노력을 할 줄 아는 자세를 우리는 산행을 통해서 배워 왔으며 또한 그렇게 행동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크레바스를 통과한다. 안나푸르나. 2018년
삶의 가치와 소중함
간혹 산을 다니다가 사랑하는 선후배 그리고 동료를 잃을 때도 있다. 그 상처가 너무나 깊어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그러나 고통의 시간들 속에서도 터득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살아서 숨 쉬는 것은 정말 몸 저리는 기쁨이라는 사실이다. 조난의 어려움을 돌파하고 살아오는 대원들의 모습에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 모두는 터득했고 몸으로 느껴 왔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상 도전의 날, 동상을 피하기 위해 면도를 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2007년
장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것이 등산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신적·신체적인 이유로 갈 수 없는, 갈 용기가 없는, 같이 갈 사람이 없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장애인들의 처우가 예전보다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참여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 모습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순간들을 볼 때마다 나는 보람을 느끼며 생기가 돈다.
보틀넥 위, 정상 직전의 설원. K2. 2012년.
아름다운 도전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하는 모습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불편함을 적극적인 용기로 극복하고, 불가능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꾸는 노력이야말로 꿈의 정상에 설 수 있는 힘이다.
내리막을 걷는다고 해서 인생의 위치까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판단과 생각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며,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는 목표를 향해 한 발 더 내딛게 만들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 번도 실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새로운 시도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무모한 일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꿈이 있는 한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도 도전해 볼 만하다.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로체 베이스캠프. 2015년.
먼 아픔, 가까운 행복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절단한 후)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1997년부터 시작해 7대륙 최고봉을 2009년에 남극대륙 등반을 끝으로 완등했다. 2006년부터 시작한 8,000m 14좌의 꿈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고 있다. 앞으로 어렵고 힘든 난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오르겠다는 당찬 목표도 갖고 있다.
행복은 항상 나의 옆에 있다. 처음으로 혼자서 팬티를 입고, 양말을 신고, 문을 열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혼자서 울었던 기억들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신발 끈을 묶지 못해서 정상으로 향하지 못하고 하산해야 했던 상황, 등반 중 소변을 보는 게 힘들어 물을 먹지 못한 그때가 아쉽기도 하다. 혼자 옷에다 소변을 보며 이틀 밤을 비박하고 살아 돌아온 기억들….
하지만 이젠 나에게도 꿈이 있고 희망의 전도사로서 내가 해야 할 귀중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야 행복을 느낀 걸 보면 삶은 처절할수록 아름다운 것 같다.
스키를 신고 썰매를 끌고 있다. 빈슨매시프.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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