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빈 추모 특집 ① 김홍빈을 말하다 (2)] 마지막 드라마를 간절히 기원한다

글 오영훈 기획위원 2021. 7. 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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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엘리트 알피니즘에서는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알파인스타일', 또 이를 통한 미등봉·신루트 초등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엔 등반가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역량 등 스포츠 자질이 핵심이다.

암벽등반이든 고산등반이든 등반가가 오롯이 자기만의 능력으로 산에 도전하고 거기서 얻은 개인적 체험을 값지게 여기는 게 현대 등반의 정수다.

등반가는 개인장비와 기호품만 챙겨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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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훈 월간산 기획위원 기고
故 김홍빈 대장
세계의 엘리트 알피니즘에서는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알파인스타일’, 또 이를 통한 미등봉·신루트 초등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엔 등반가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역량 등 스포츠 자질이 핵심이다. 로프 없이 암벽을 오르는 ‘프리솔로’로 유명한 알렉스 호놀드도 엘리트 알피니즘의 보루 황금피켈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암벽등반이든 고산등반이든 등반가가 오롯이 자기만의 능력으로 산에 도전하고 거기서 얻은 개인적 체험을 값지게 여기는 게 현대 등반의 정수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다르다. 사람이 8,000m 고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한 세기가 넘게 흘렀다. 그 사이 14좌 등반은 ‘관광 상품’이 되어갔다. 고산등반의 자잘한 비결과 노하우는 차고 넘치게 쌓였다. 국제 원정대행사는 치열한 경쟁 속에 맞춤형 원정대를 꾸려준다. 등반루트는 뻔하다. 주요 구간에는 고정 로프가 깔린다. 각국의 위성정보를 종합한 일기예보는 큰 오차 없이 맞는다. 베이스캠프에는 전기난로가 설치되고, 능숙한 현지인 요리사가 매 끼니 푸짐한 한식을 제공한다. 등반가는 개인장비와 기호품만 챙겨 가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14좌 완등을 ‘돈 만 있으면 해볼 만하다’로 간주하면 곤란하다. 기본적으로 특출한 체력과 정신력이 없으면 엄두도 내기 어렵다. 고산병, 눈사태, 추락, 각종 사고로 인한 위험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큰돈을 받쳐줄 후원자를 섭외하는 능력도 능력이다. 게다가 대규모 원정대를 기획해 관리하고, 날씨·행정·예산 등 각종 외적 변수를 수완 있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걸 감내하며 최소 14번 넘게 밀어붙일 추진력이야말로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가벼운 등반’이 대세가 된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자질이다.
오영훈 월간산 기획위원.
2019년, 단 6개월 6일 만에 14좌를 완등했던 네팔인 니르말 푸르자의 경우가 그랬다. 이전까지 14좌 완등 최단기간 기록은 故 김창호 대장의 7년 10개월 3일이었다. 푸르자는 가이드가 지어다 준 산소통을 많이 썼다. 고정로프를 잡고 올랐고, 헬기로 베이스캠프까지 날아다녔다. 아무리 그랬다 해도 14좌를 1년 안에 모두 올랐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시도했지만 개인 체력부터 피고용인 문제, 악천후, 현지 사정, 자연재해 등등이 겹치며 절반도 못 이루고 그만두었다. 푸르자의 14좌는 오롯한 개인만의 성취가 아니라 인맥과 수완, 팀워크와 협조, 운까지 따라주는 것을 겸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홍빈의 14좌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이 더 값진 드라마다. 푸르자의 14좌가 대단한 개인들이 힘을 합친 거라면, 김홍빈의 14좌는 부족한 개인들이 서로 채워주며 성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트 산악인들은 오히려 모를 인간의 나약함으로 산을 올랐다. 김홍빈은 어떤 면에서는 푸르자보다도, 14좌 최초 완등자 라인홀트 메스너보다도 어려운 14좌를 해냈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처음부터 끝까지 싸웠다.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모순된 말을 그는 보란 듯 행동으로 증명해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건강해 부족함 모르는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자기 몸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오른 열네 개 정상마다 김홍빈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 고난의 종착점에서는 무엇과 만났을까?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 특별했던 14좌를 녹여내 살아갈 그 이후의 인생도 궁금했다. 그러나 김홍빈은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등산과 모험, 산과 인간의 편견을 깬 선구자로, 신화 속 인물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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