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2km 장대레일, 휘면 대형사고..40도 폭염에도 버틴 비결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강갑생 2021. 7.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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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선로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스 1]

기차가 다니는 레일은 굵고 묵직한 철로 튼튼하게 만들어졌지만 그래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계절이 있습니다. 바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과 매서운 동장군이 찾아오는 겨울인데요.

특히 요즘 같이 기온이 거의 영상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는 뜨겁게 달구어진 레일이 평소보다 늘어나게 돼 자칫 철로가 휘거나 솟아오르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면 탈선사고가 나기도 하고, 열차 운행에 적지 않은 지장을 주게 되는데요.


무더위 땐 레일 휘어지거나 솟아
실제로 2019년 8월엔 KTX 천안아산역 인근의 고속철도 레일이 무더위에 늘어진 탓에 KTX 21개 편성이 속도를 시속 30㎞까지 낮춰 서행한 바 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화물열차 바퀴가 레일을 벗어나는 사고가 발생해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 운행이 30분 넘게 지연됐는데요. 당시 사고는 고온으로 레일이 휘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폭염에 선로가 휘어진 탓에 화물열차 바퀴가 선로를 벗어났다. [연합뉴스]


반대로 추운 겨울에는 레일이 수축하면서 철로를 이어놓은 구간이 끊어지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끊어진 틈이 넓을 경우 열차 바퀴가 빠져 선로를 벗어나는 사고로 이어질 우려도 있는데요.


겨울엔 선로 수축 탓 끊어지기도
이런 계절적 요인 등을 고려해 통상 25m짜리 레일과 레일을 연결할 때 약간의 틈을 뒀습니다. 이를 '이음매'라고 부르는데요. 틈이 있으면 여름에 레일이 팽창하는 걸 어느 정도 받아줄 수 있고, 겨울에 연결부위가 끊어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레일 사이에 틈을 둔 이음매. [출처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하지만 이음매는 적지 않은 부작용도 갖고 있는데요. 이음매를 통과할 때 나는 "덜컹덜컹"하는 소음과 충격입니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의 소리일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승차감이 떨어지는 건 물론 차량과 선로 훼손도 빨라져 유지보수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요.

2004년 개통한 고속철도가 25m짜리 레일이 아닌 훨씬 긴 장대레일을 사용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속도를 높이고 승차감도 좋게 하기 위해서인데요.


장대레일 이어붙이면 최대 2㎞ 길이
고속철도에서 사용하는 레일은 25m짜리 레일을 공장에서 이어붙여 200~300m 길이로 만든 뒤 현장으로 가져와서는 다시 용접방식으로 붙여 최대 2㎞까지 잇는다고 합니다.

요즘은 일반철도에서도 대부분 짧은 레일 대신 장대레일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신설 구간은 물론 기존 철도를 개량하는 구간에는 거의 다 장대레일이 적용됐다는 게 국가철도공단 설명입니다.

장대레일을 부설 현장으로 수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레일 하나가 이음매 없이 길게 이어지면 그만큼 속도를 내기도 좋고, 덜컹거리는 소음과 충격이 사라져 승차감도 한결 나아질 수 있을 텐데요.


무거운 침목과 자갈로 레일 변형 방지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생깁니다. 이음매가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도 40도 가까운 폭염에 레일이 휘지 않게 방지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하는 건데요.

장대레일은 무거운 침목과 자갈 등으로 꽉 붙잡아 변형을 막는다. [강갑생 기자]

국가철도공단 궤도처의 채기현 부장은 "여름에는 레일이 늘어나려는 성질이 있는데 이때 레일을 옆에서 잡아주는 힘이 약하면 휘거나 솟게 된다"며 "레일을 받치는 침목을 무겁게 하거나 자갈 또는 콘크리트 도상으로 꽉 잡아주면 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튀어나가려는 힘보다 이를 잡아주는 힘을 더 크게 하면 레일의 변형 없이 버텨낼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채 부장에 따르면 레일이 온도에 따라 수축하거나 늘어나는 정도는 통상 ± 40㎜가량입니다.


교량 등엔 사선 형태 '신축 이음매'
또 장대레일은 밀도를 높인 고탄소강으로 만들어져 일반 레일보다 비교적 날씨 변화에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하는데요. 어느 온도에서 장대레일을 부설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기온변화에 따른 신축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저 온도인 영하 20도와 최고 온도인 영상 60도의 중간값인 영상 20도 정도에서 레일을 깐다고 하네요. 다만 기온이 훨씬 낮은 겨울철에 부설한 레일은 무더위가 닥쳤을 때 변형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레일을 비스듬이 잇는 방식의 '신축 이음매'. [출처 위키백과]


장대레일이라고 해서 아예 이음매가 없는 건 아닙니다. 교량 등 필요한 구간에는 이음매를 만들되 기존 형태가 아닌 레일의 연결 부분을 비스듬히 사선으로 겹쳐놓는 방식의 '신축 이음매'를 적용하는데요. 기존 이음매보다 승차감이 좋으면서 레일이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걸 완화하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145곳, 선로 온도 측정과 살수장치
이처럼 레일을 생산하고, 부설하는 과정에 여러 보완장치를 해놓았지만 이걸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열차가 다니는 현장에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선로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있는 코레일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코레일에 따르면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선로 이상을 막기 위해 전국 145개소에 레일 온도 측정장치와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추는 살수장치를 설치했다고 하는데요.

무더운 여름엔 레일 온도를 낮추기 위해 살수작업을 한다. [중앙일보]


주로 통풍이 안 되거나 일조량이 많은 곳에 있는 선로가 대상입니다. 이 중 고속철도 105곳에 설치된 살수장치는 선로 온도가 영상 48도에 도달하면 물을 뿌리기 시작해 45도로 낮춰지면 멈추는 자동시스템입니다.


온도 4~5도 낮추는 특수 차열페인트
취약지역에 부설된 레일에는 열을 막아주는 차열페인트를 칠하기도 하는데요. 장대레일에 차열페인트를 칠하면 레일 온도가 4~5도가량 낮아진다는 설명입니다. 레일을 꽉 잡는 역할을 하는 자갈을 보충해주거나 틈새를 메워주는 작업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이런 치밀한 준비와 땀 흘리는 노력이 합쳐져 무더운 여름에도 열차가 별 탈 없이 원활하게 달리고 있는 건데요. 새삼 철도 건설과 유지보수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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