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대기업·정규직이라서 미움 받아야 할까?

신진욱 2021. 7. 3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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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에세이]
'을들의 전쟁'이라는 분열의 틈에 끌을 밀어 넣는 것이 '착한 약자'의 논리다. 그것은 하나라도 가진 자를 미워하라고 속삭인다.
사회 곳곳에서 ‘을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당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항의하는 시위 모습.​​​​​​​ⓒ연합뉴스

20년 전의 일이다. 박사과정 막바지였던 어느 날 새벽, 거실에서 논문을 쓰던 중 기지개를 켜다가 마룻바닥에 쌀알만 한 벌레를 발견했다. 잘 아는 놈이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마루에서 몇 마리가 놀고 있곤 했다. 사람이 오면 꼼짝 않고 있다가 살짝 누르면 죽어주던 ‘착한’ 놈이다. 그런데 이날 밤엔 내가 다가가니 이놈이 사사삭 다가왔다.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오,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의 힘이란!

착한 것은 이렇게 때론 위험하다. 불평등한 관계에서 약자가 착하다는 것은 무력함, 무해함을 뜻하기 쉽기 때문이다. 많은 관계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착하다는 것은, 다른 쪽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갖고 시혜와 박탈, 보상과 처벌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강자는 착한 약자를 원한다.

노조라서, 대기업, 정규직이라서 자격이 없다

사회 곳곳에서 ‘죽어야 할’ 집단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착한 약자’가 아니라는 게 이유다. 노조가 죽어야 정규직이, 공무원이, 무능한 기성세대가 죽어야 청년이, 비정규직이, 저소득층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논리는 간교하다. 중소기업 노조, 말단 공무원, 중년 노동자, 대기업 비정규직 등 뭐라도 하나 가진 모든 집단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2011년에 시작된 미국의 월가 점령운동은 ‘1% 대 99%’라는 슬로건을 세계에 퍼뜨렸다. 다수가 생산한 부를 소수가 다 가져가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이런 사회적 압력이 높아질 때 상류층은 착취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힘의 균형이 부자와 기업 쪽에 있으면 입증책임이 바뀐다. 진정한 약자임을 입증한 자만이 착하다는 칭찬을 받는다.

이것은 상징의 정치다. 누가 비난받아야 할 기득권층인가, 누가 누구의 적이고 친구인가를 정의하는 싸움이다. 사람들을 설득할 논리, 공감을 구하는 서사들을 생산하는 담론의 정치이기도 하다. 그 배경은 구조적이다. 우리 사회는 하나의 거대균열로 쪼개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다중격차, 교차균열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자산 격차, 자가와 임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와 비노조, 학력·학벌, 남성과 여성, 중장년과 청·노년 등 여러 축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고학력 저소득, 중소기업 노조, 대기업 비정규직 등 수많은 조합이 있다. 모든 것을 가진 소수, 아무것도 갖지 못한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인구는 강자와 약자, 내부자와 외부자, 중심부와 주변부의 속성을 함께 갖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연대와 적대의 관계는 상반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하나는 ‘을들의 연대’다. 세입자, 저소득층, 비정규직, 취준생 등 다양한 취약함을 서로 지지해주는 방향이다. 그 반대는 ‘을들의 전쟁’이다. 정규직이라고, 노조원, 기성세대, 복지수혜자라고 적대한다. 이런 분열의 틈에 끌을 밀어 넣는 것이 ‘착한 약자’의 논리다. 그것은 하나라도 가진 자를 미워하라고 속삭인다.

그런 논리로 비난받을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 다중격차 구조에서 최소한 한 가지의 내부자 속성과 외부자 속성을 갖고 있는 다양한 혼합형을 계산해보면 된다. 예를 들어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2018년 분석으로 정규직 비노조원이 958만명, 비정규직 노조원이 68만명, 고용노동부 2019년 통계로 중소 규모 노조원이 31만명, 대기업 비노조원이 177만명이다.

이들이 모두 노조라서, 대기업, 정규직이라서 권리주장을 할 자격이 없는 자로 몰린다.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 “노조 때문에 비정규직, 중소기업이 죽는다”? 그럼 청년유니온은? 배달 노동자 노조는? 아파트 경비원 노조는? 청소 노동자 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 노조는? 기만적인 반노동의 논리 아닌가.

‘착한 약자’의 논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만이 사회의 공감과 정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권익을 지킬 어떠한 힘도 가져선 안 된다. 마룻바닥에 꼼짝 않고 있는 벌레 같아야 한다. 그런가? 아니다. 움직여보라. 저들도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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