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을 경험하는 이들을 위한 눈물사원

한겨레 2021. 7. 30. 05: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BOOK]
삼중 음성 유방암 진단 받은 작가
병상·대기실·일터에서 써내려간
죽어가며 죽음에 저항하는 사유들
함께 통곡할 시공간으로서의 기록
‘죽음의 침대 위에 누운 젊은 여인’(Young Woman On Her Death Bed). 1621년 그려진 작자 미상의 작품. <언다잉>의 저자는 이 그림에 대해 “주변 환경은 양호하지만, 이 여자 앞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안락함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고 적었다. 프랑스 루앙 미술관(mbarouen.fr) 제공

언다잉
고통, 취약성, 필멸성, 의학, 예술, 시간, 꿈, 데이터, 소진, 암, 돌봄
앤 보이어 지음, 양미래 옮김 l 플레이타임 l 1만8000원

“우리는 불행은 혼자 간직하고 용기는 만인에게 기부해야 한다.” <언다잉>에 나오는 이 비판은 현대의 잠언이다. 미디어도 대중도 어려움을 ‘극복’해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가난을 드러내면 취업도 사교도 어렵지만 부유해지고 나면 가난은 극심했을수록 그가 지닌 용기의 크기처럼 취급받는다. 각종 투병기도 비슷한 성격을 띤다. <언다잉>이 다루는 유방암을 예로 들면, 유방암 환자들은 유방암에 걸리기 이전의 자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때보다 더 낫고 더 강하면서도 동시에 가슴이 아려 올 정도로 악화한 상태이기도 해야 한다.

<언다잉>을 쓴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앤 보이어는 41살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고 모아둔 돈도 없는데, 심지어 삼중 음성 유방암이라고 한다. 의사는 이 암에 대한 표적 치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여러 유방암 중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이 가장 적은데다가 예후도 상당히 좋지 않아 사망률이 유난히 높은 암이라고. 치료 과정에 들을 수 있는 간호사의 설명 중 하나는 젊을수록 더 아프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나는 목욕과 치장을 거부하고, 아무 데나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도 그만둔다.” 앤 보이어는 암병동의 시끄러운 대기실, 병상, 약물 투여실, 치료가 끝나자마자 향한 일터와 생활을 위한 모든 장소들에서 <언다잉>을 썼다.

앤 보이어는 유방암을 앓은 여성 작가들의 목록을 추린다. 수전 손택, 레이철 카슨, 재클린 수전, 샬럿 퍼킨스 길먼, 오드리 로드, 패니 버니, 캐시 애커를 지나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1991년 마흔하나의 나이로 유방암 진단을 받은 퀴어 이론가 이브 코소프스키 세즈윅은 유방암을 둘러싼 문화가 놀라운 방식으로, 때로는 잔인한 방식으로 젠더를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다룬 글에 이렇게 썼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든 생각에 대해. “빌어먹을,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여자네.”

암이 제공하는 사유는 폭력적이다. 갑작스럽게 생은 중단되고, 돈, 시간, 몸의 가용한 부분 전부 암을 상대하는 데 쓰도록 요구받는다. 그렇게 밀착해 지내게 된 암 치료의 과정은 환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최대 이익을 위해 체계화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앤 보이어는 미셸 푸코를 인용한다. “클리닉은 하나의 방향만을 향해야 했다. 위에서 아래로, 구성된 지식에서 무지로.” 그리고 덧붙인다. “암 파빌리온에서는 지식이나 무지가 아니라 돈과 신비화가 기본 방위가 된다.” 암 치료가 수반하는 고통 중에는 언어의 파괴도 있다. 시인, 에세이스트,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직원인 저자는 몸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고통이란 고통이 끝나길 바라는 절박함으로서만 간신히 존재하는 어느 장소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쓴 챕터에는 10가지 항목으로 치료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을 자세히 적었다. 이것은 마치 치료보다는 고문당한 생존자의 증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언어로 고통을 정의하는 대목도 있다. 아무리 고통을 묘사하려 해 봐도 고통을 경험하는 몸을 갖는 만큼은 될 수 없음을 절감하면서.

<언다잉>이라는 제목은 ‘죽어가지 않는 상태’라는 뜻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죽음에 저항하는 동시에 죽어가는 상태가 바로 앤 보이어가 정의한 자신이었던 듯 보인다. 책의 긴 부제 ‘고통, 취약성, 필멸성, 의학, 예술, 시간, 꿈, 데이터, 소진, 암, 돌봄’은 이 책이 사유하는 거의 모든 것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도, 자기 자신이 계속 살아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어야 한다. 치료 중의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함을 느끼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그에게 (아마 당신도 암환자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기 관리를 해”라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지치면 운동하고, 아무리 음식이 먹기 싫어도 먹고, 요가를 하고, 죽음일랑 입에 올리지도 말라고 ‘아직’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여상하게 말을 건넸다.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사나운 생각에 나를 내맡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잇따라 이메일을 보내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걸 그만두게 할 생각은 말아줘, 라고 경고했다.”

<언다잉>을 읽을 때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이 새롭게 갱신된다. 이것은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인생을 보는 방식(모든 국면이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된다)과도 닮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 대기실은 돌봄 노동과 데이터 노동이 만나는 장소다. 부인들은 남편의 서류를 대신 작성한다. 어머니들은 아이의 서류를 대신 작성한다. 병든 여자들은 자기 서류를 직접 작성한다. 이 문제는 간병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후반부에서 자기 착취와 소진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암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시간 자체가 생산성을 갖추게 되는 등 압도적인 혼란이 만성화된 현시대에, 소진된 자들은 몸과 시간의 빈번한 불화가 초래하는 고통을 남들보다 잘 견뎌낸다.” 존재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소진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앤 보이어는 병들기 전에 통곡을 위한 공공장소를 마련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누구든 필요하기만 하면 한데 모여 괜찮은 동지와 울 수 있는, 종교 사원에 가까운 장소를. 그리고 이 건축물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의 주인공을 연기한 줄리에타 마시나 이름을 따 ‘줄리에타 마시나의 눈물 사원’이라 부르겠다고 쓴다. 그런데 병과 함께 이 모든 일은 무력해졌고, 항암 화학 요법 치료를 받고 나서 약물 부작용 때문에 감정과 무관하게 쉼 없이 눈물을 흘리게 되자 자기 자신이 눈물 사원이 되어버렸음을 자각한다. <언다잉>이라는 책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앤 보이어의 눈물 사원’이 될 것이다. 유방암으로 고통받는 이들이여, 이 책으로 오라. 함께 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사유의 사원으로서의 언어로.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