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설계된 반전의 위력

한겨레 2021. 7. 3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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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존재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내 안에 갇혀 있기에, 내 몸에서 빠져나가 바깥에서 나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기에, 다른 존재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

인간이라고도, 비인간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주인공에게 절로 연민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임영태의 <여기부터 천국입니다> 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에 나오는 존재들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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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의 책들 사이로][한겨레BOOK] 정아은의 책들 사이로

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지음 l 아작(2020)

‘나’를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존재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내 안에 갇혀 있기에, 내 몸에서 빠져나가 바깥에서 나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기에, 다른 존재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인 우리는 어떻게 인간을 알 수 있을까? 이 역시 마찬가지로, 외부 존재에게 시선을 의탁하면 된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이 작업을 위해 외계인, 동물, 신, 괴물, 유령, 로봇을 동원한다. 비인간 존재를 통해 인간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얼마나 닮았는가’는 로봇의 시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파악하는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뇌를 스캔해 장착한 유사인간 의체’, 즉 반인 반로봇의 시점이라 해야 하리라. 로봇의 시점에서 쓰인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이 소설의 주인공도 로봇이면서 일정 부분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다. 그가 인간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동시에 어떤 부분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연유다.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가 누군가의 눈빛과 표정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의 진의를 알아차리거나, 짧은 미소를 주고받는 것으로 백 마디 말보다 더한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알게 된다. 익숙한 듯 새로운 깨달음도 있다. 이를테면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며,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 인간이라고도, 비인간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주인공에게 절로 연민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임영태의 <여기부터 천국입니다>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에 나오는 존재들을 연상시킨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뒤 철저히 비인간적으로 취급받는 생명체들을.

“손가락에 심는 레이저 키보드와 홀로그램 모니터가 생겨난 이래 벙어리는 장애가 아니다. 안경이 생겨난 이래 근시가 장애가 아니게 된 것처럼.”과 같은 사회비판 메시지가 간간이 출현하는 이 소설은 결정적인 지점에서 뜻밖의 반전을 선사한다. 화자인 로봇이 처음부터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되뇌었던 대상.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사로잡혀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인간 존재들은 모두 보고 있지만, 화자만은 끝내 보지 못했던 것. 그것이 밝혀지는 것은 소설이 대단원에 이르렀을 무렵이고, 독자는 예상치 않게 출현하는 ‘문제’ 앞에서 일순간 망연해진다.

선원들의 과도한 불복종, 멸시와 저평가, 따돌림, 진영의식까지, 공기처럼 떠돌며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던 모호하고 이상한 분위기가 이 ‘문제’의 프리즘을 들이대면 단번에 이해가 된다. 이런 화두가 나올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반전의 장면에서 나는 적잖이 놀랐고, 앞으로 돌아가 그간 무심하게 읽어왔던 장면들을 다시 꼼꼼히 읽어나갔다. 그렇구나! 작가는 우주의 한 공간을 떠도는 우주선에서 일어나는 선상반란이라는 에스에프(SF)적 상황설정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 깊숙이 잠재된, 질기고 해묵은 고정관념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 방식이 탁월하고 기습적이라, 내 무의식 깊이 뿌리내린 고정관념의 무시무시한 형상과 불시에 맞닥뜨리는 불편하고 의미심장한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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