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며 영예로운 인간의 원천, 뇌

김진철 2021. 7. 3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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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BOOK]
1.36kg 뇌에 얽힌 오해와 편견, 그리고 진실과 가능성
심리학·신경과학 석학 리사 펠드먼 배럿의 '뇌 강의'
"문명 건설 능력과 상호 파괴 능력 모두 부여한 인간 뇌"
일러스트 장은영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 l 더퀘스트 l 1만6000원

“두 귀 사이에 있는 3파운드짜리 덩어리.” 인간 뇌다. 1.36㎏에 불과한 뇌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을 이해한다 할 수 없다. 뇌를 알려는 것은, 인간을 알고 싶어서다. 인간의 다종다양한 행태들 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어떻게 이러지? 도대체 왜? 맙소사! $%#&!? 감탄사를, 때로 욕설을 뒤섞어 연발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 그 인간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사람들의 이목이 뇌과학에 쏠리고 관련 서적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개념은 말할 것도 없고 용어조차 이해하기 어렵거나, 엉터리 겉핥기에 그치는 수준의 책더미에서 허기와 빈곤을 느껴온 터다. 심리학·신경과학 분야의 석학인 리사 펠드먼 배럿이 지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뇌를 지닌 모두에게 건강한 한 끼처럼 여겨진다.

인간에겐 뇌가 왜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개는 생각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상상도 아니다. 창의성이나 공감도 아니다. (…)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뇌’라는 가설도 무너뜨린다. 특히 칼 세이건이 소개하며 확산된 이 가설은,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의 뇌에 인간만의 뇌가 합쳐져서 뇌를 구성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진화 과정에서 인간만이 거대한 대뇌피질을 가지게 되었다는 편견을 심어준 것인데, “인간의 신피질, 대뇌피질, 또는 전전두피질이 이성의 근원이라고 선언한다든가, 전두엽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이른바 감정인 뇌 영역을 조절한다는 이야기에 관해 당신이 읽거나 들은 모든 것은 시대착오적이거나 한심할 정도로 정확하지 못하다.”

뇌는 “1280억개의 신경세포가 하나의 거대하고 유연한 구조로 연결된 네트워크다.” 게다가 신경세포들은 하나의 심리적 기능만 갖고 있지 않으며, 특정 기능에 더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시각능력과 관련한 세포가 촉각이나 후각에 기여하기도 한다. “뇌는 끊임없이 공사 중이다.” 한평생 인간의 뇌가 변화하는 성질을 ‘가소성’이라고 한다. 이런 세포들이 다양한 활동패턴을 만들어내면서 복잡성이 형성된다. 복잡성은 창의성과 혁신의 배경이 된다. 이러한 뇌의 특징을 감안할 때 어린 아이에 대해 본성이냐 양육이냐, 유전이냐 환경이냐의 논의는 무의미하다. 이 둘은 “격렬하게 탱고를 추는 연인과 같기 때문이다.” 아기의 유전자는 주변 환경에 따라 조절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뇌가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책무다. “지금 빈곤을 퇴치하는 것이 수십년 뒤에 빈곤의 결과에 대처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덜 든다.”

놀랍게도, “뇌는 거의 모든 행동을 예측한다.”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이다. 같은 장면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뇌가 구성한 것이 조합된다. 모든 감각이 그렇다. 핸드폰이 울리지 않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지거나, 하루종일 어떤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흥얼거린다. 뇌의 예측은 결국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 있다. 또한 뇌는 타인의 뇌와 연결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심장박동이 일치되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인상을 찌푸리면 다른 사람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말의 역할이 특히 그렇다. 지속적인 모욕과 위협이 뇌를 해치는 것은 상식적으로 와닿는다. 배럿이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우리는 아기들과 우리 자신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책임져야 할 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타인들에게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뇌는 세계를 구성한다. 뇌는 마음을 만드는데 문화권마다 생각과 감정이 달라진다.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여러 종류의 다른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보편적 마음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넘어 인간의 마음에 관한 한 변이가 있는 것이 정상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종류의 마음도 다른 어떤 마음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거나 나쁘지 않다. 다만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변이가 있을 뿐이다.” 나아가 “우리는 모두 인간의 뇌 속에만 존재하는 사회적 현실의 세계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동체, 공감과 연대도, 전쟁과 학살, 혐오와 차별도 모두 ‘뇌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현실’이다. 인간 뇌가 지닌 ‘다섯 가지 C’라고 배럿이 규정한 ‘능력 세트’가 큰 노력 없이도 인간이 사회적 현실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창의성(creativity), 의사소통(communication), 모방(copying), 협력(cooperation), 압축(compression)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만 있는 가장 복잡한 능력은, 추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압축이다. 결국 ‘3파운드짜리 덩어리’는 “우리에게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능력과 동시에 서로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전체 250쪽이 되지 않는 이 책은 쉽게 읽히지만 강력하며 결코 가볍지 않다. 찰떡 같은 비유를 쓰되 동시에 부적절한 비유 수용 방식과 사례를 경계하면서 술술 책장이 넘어가도록 서술한다. 참고문헌은 저자의 홈페이지로 옮겨두고 부록은 본문에서 약술한 세부사항을 보기 좋게 담아냈다. 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뇌과학자다운 책 구성이겠지 싶다. 무엇보다 뇌과학 지식은 단순 나열되지 않고, 마치 뇌의 구조와 기능이 그러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곳곳에서 연결된다. 게다가 과학에서 시작하되, 삶의 태도와 지혜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좋은 선생님을 만난, 충만한 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리사 펠드먼 배럿. 더퀘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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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펠드먼 배럿은 심리학·신경과학 분야에서 혁신적 연구 성과를 많이 낸 석학으로, 감정이 사회적 구성물임을 강조한다.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 재직 중이며 하버드 의대 ‘법·뇌·행동센터’의 수석과학책임자(CSO)다. 저서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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