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권침해 ‘쥴리벽화’… 여당은 즐기기만 할건가

이슬비 기자 2021. 7.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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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종로구 한 중고 서점 외벽에 그려진 ‘쥴리의 남자들’ 벽화 앞은 친문 강성 지지자들의 ‘성지(聖地)’가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성지순례’ 운동이 일면서 모여든 사람들은 “명화가 따로 없다” “남자가 저리 많았나?”라고들 했다. 가로 약 15m, 세로 2.5m 길이의 벽화에는 야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예비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 얼굴을 본뜬 여성의 얼굴과 ’2000 아무개 의사, 2005 조 회장, 2006 아무개 평검사, 2006 양 검사… 2009 윤 서방 검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쥴리’는 일부 친문 성향 유튜버가 김씨가 과거 유흥업소 접객원 출신이라는 미확인 루머를 퍼뜨리며 붙인 별명이다.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란 문구와 함께 빨간 립스틱을 칠한 여성의 입술과 혀 그림도 있었다. 보는 동안 얼굴이 화끈거렸다.

29일 서울 종로구 한 중고 서점 외벽에 그려진‘쥴리의 남자들’벽화 앞에 승합차가 주차돼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자들이 윤 전 총장 아내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벽화를 가리겠다며 이곳에 차를 댔다. 강성 친문 지지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성지 순례를 가자”고 독려하며 이곳을 찾고 있다. /오종찬 기자

잠시 후 윤 후보 지지자들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승합차로 그림을 가리려 했고, 골목은 이내 난장판이 됐다. “우파 새X들이 왜 차로 막고 지X이냐!” “그러는 좌파 새X들 뇌엔 뭐가 들었냐!” 시민들은 둘로 나뉘어 싸웠다.

벽화를 칠한 서점 주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친문 강성 지지자 사이에선 서점 주인에 대해 “선한 시민들의 자유를 위한 용기에 존경을 표한다”며 지지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김씨도 대통령 후보의 아내로 검증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혼 전 사생활은 검증 대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어떤 자유도, 어떤 검증도 그것을 핑계로 다른 사람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특히 이 벽화에 그려진 인물이 누군지는 이미 특정이 된 상태다. 한 여성을 두고 이처럼 공개적으로 무조건적인 비방과 조롱을 퍼붓는 것은 폭력이다. 특히 성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날 야권의 다른 대선 주자들은 벽화 철거를 요구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인격 살인”이라며 “더러운 폭력을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 하태경 의원도 “친문 지지자들의 막가파식 인격 살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성’과 ‘인권’을 강조하던 여권의 대선 주자들은 이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박원순·오거돈·안희정의 성폭력에 침묵하고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불렀던 민주당 여성 의원들도 침묵했다. 다만 민주당 소속 김상희 국회 부의장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인권침해”라며 “더욱이 진보·보수 유튜버들이 충돌하며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했다.

종로 골목에서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떠올랐다. 당시의 문 대통령이라면 이 현장을 외면하지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현장을 찾아 “명백한 여성 인권 유린”이라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회 분열을 유발하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도 5년 전엔 후보였고, 김정숙 여사도 검증 대상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 벽화도 ‘경쟁을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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