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어"[관계의 재발견]

고수리 에세이스트 2021. 7. 30. 03: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어요?" 지인은 대답했다.

"나는 잘 죽고 싶어요. 그러려고 매 순간 노력하며 살아요." 그는 매일 일터에 나가 저녁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조금이나마 선명한 답을 구하고 싶어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삶을 찾아 읽었다.

'잘 죽고 싶다'던 말은 '잘 살고 싶다'는 바람이 동그랗게 이어진 말이었구나.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어떻게 살고 싶어요?” 지인은 대답했다. “나는 잘 죽고 싶어요. 그러려고 매 순간 노력하며 살아요.” 그는 매일 일터에 나가 저녁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일터로 향한다. 성실하고 충실한 매일을 사는 사람. 그에게 남다른 특별함이 있다면, 그는 뾰족한 말을 하지 않는다. 화창하게 웃는다. 씩씩하게 걷고, 맛있게 밥을 먹는다. 사람들을 잘 살피고 사소한 것들에 아이처럼 감동한다. 삶을 단단하게 꾸려 나가는 사람이기에 건네 본 물음이었는데, 돌아온 의외의 대답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어떻게 죽고 싶어요?” 그와의 대화 이후 물음을 바꿔보았다. ‘어떻게 살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다. 나는 잘 살고 싶은 바람과 마찬가지로 잘 죽고 싶었다. 정반대라고 생각했던 삶과 죽음은 사실 동그라미를 그리는 시작과 끝처럼 이어져 있었다. 조금이나마 선명한 답을 구하고 싶어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삶을 찾아 읽었다.

책 ‘가만한 당신’에는 서른다섯 명의 부고가 담겨 있다. 호주의 코미디언 겸 작가이자 장애인 인권운동가였던 스텔라 영은 1m가 되지 않는 키에 희귀병을 가진 장애인이었다. 서른한 살의 스텔라 영은 ‘여든 살의 나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다(I‘m here for a good time not a long time). 하지만 여든 살이 될 때까지 모든 가능성을 움켜쥐고 늘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지혜롭게, 즐겁게 살겠다.” 그는 매 순간 이 약속을 지키며 살았지만, 여든 살까지 살지는 못했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스텔라 영의 편지에 불현듯 지인의 대답이 떠올랐다. ‘잘 죽고 싶다’던 말은 ‘잘 살고 싶다’는 바람이 동그랗게 이어진 말이었구나. 나도 그랬다.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었다. 그제야 둘러보는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매일의 날씨와 매일의 풍경과 매일의 만남과 매일의 대화가, 단 한 번 살아보는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다.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나는 하루라도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처럼 살아본 적 있었을까. 깨끗한 달이 뜬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오늘 밤 죽더라도 후회와 미움 없이 잘 죽고 싶다고. 내일 아침 살아 있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처럼 잘 살고 싶다고. 이상했다. 잘 죽고 싶을수록 더 잘 살고 싶어지니 말이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