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노들섬
[경향신문]
사진은 재현에서 시작된다. 이 기능은 사진의 복잡한 이론을 낳게 한다. 이런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사진이기에 가능한 초월적인 것이 있다. 사진은 먼 시간을 단숨에 끌어당기는 역사의 증언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사진 한 장이 문득 60여년 전 한강 노들섬의 모습을 아련히 다가서게 한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두 여인의 뒤태가 곱다. 멋이란 이런 것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는 것, 되바라지지 않는 것, 무상한 것. 초로의 두 여인은 곱게 단장을 하고 여름날 물 구경을 나온 것인가. 한 여인은 꽃무늬 치마에 꽃무늬 양산으로 깔맞춤을 하고 있다. 여인의 뒷모습에서 속옷이 비치는 시스루룩 저고리가 인상적이다. 다른 여인은 흰 치마저고리에 흰 양산을 들고 있다. 한국의 정서와 멋과 여유를 사진에 잘 담고 있다.
예전에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흔치 않았다. 쓸쓸함과 같은 뒷모습이 담고 있는 정서를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니지만 아까운 필름으로 뒷모습까지 담을 여유는 없었다. 그런데 뒷모습 사진으로 보이는 이 사진은 한 여인이 다른 여인에게 무슨 말을 던지며 살짝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에서 정적인 사진에서 동적인 사진으로 바뀐다. 한영수 선생의 사진은 참혹하거나 거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삶의 여유와 위트를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1956~1963년 사이에 찍은 것으로 한국전쟁 후 거친 숨을 몰아쉬던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삶에 희망을 보여준다. 60여년 전의 사진 한 장이 힘든 시간 속에서도 여유를 갖게 하는 잔잔한 여운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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