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부산 디렉터, 정석호

서울문화사 2021. 7. 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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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세계 미술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아트페어가 취소되며 작가들의 발이 묶여 주춤하던 사이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경매가 활성화되고, NFT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작품이 본격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뉴욕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NFT 콜라주 작품이 6930만 달러, 우리 돈 약 783억원에 팔리며 미술시장을 넘어 경제 분야의 이슈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미술계도 들썩였다. 작가 마리킴의 작품이 국내 첫 NFT 미술품 경매를 통해 약 6억원에 거래되었으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의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3배나 늘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주식이나 부동산 관련 뉴스에나 나오던 ‘신고가’라는 단어가 미술품 시장에 연이어 등장하고, RM을 비롯한 톱스타들이 아트페어에 등장해 컬렉터임을 자처하니 여러모로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 트렌드에 민감하고, 소비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MZ세대들이 특히 미술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솔직히 이 모든 관심의 핵심은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이 작품 사면 오를까?’ 하는 기대감이 크다. 그러니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세대를 겨냥해 작품에 공동 투자하고 재판매해 수익금을 나누는 공동구매 플랫폼도 여럿 등장하고 있다. 반면 한편에선 여러 전문가들이 여전히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아트 쇼핑에 우려를 내보인다. 지금 미술시장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아트 컬렉팅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일찌감치 아트 컬렉팅에 눈을 떠 예술을 향유하고 소유하는 기쁨을 누려온 이들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별장에 정석호 씨가 컬렉팅한 작품들을 설치했다. 책상 뒤편에 걸린 작품은 배헤윰 작가의 ‘Saga of the Unwrittenʼ.


양혜규 작가의 ‘Stone Skipping at Lunar Eclipse-Trustworthy #307' 작품이 걸린 다이닝 공간.

국내 최대의 아트페어로 성장한 ‘아트부산’의 기획실장이자 영 컬렉터 모임을 이끄는 정석호 씨. 어머니가 아트부산을 설립한 손영희 이사장으로, 얼핏 그의 배경만 들으면 어릴 때부터 예술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컬렉터로 성장한 것 같지만, 실제로 그가 예술에 입문하고 컬렉팅을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라고. 정치학을 전공하고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경영 수업을 받던 중 어머니의 새로운 도전을 돕기위해 페어 일에 참여했다가 실전으로 부딪히며 하나씩 배워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컬렉터가 된 케이스이다. 배우고 싶은 게 많다 보니 함께할 사람들을 찾게 되고 영 컬렉터 모임도 운영하게 된 것. 초보 6년차 젊은 컬렉터이지만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예술을 향유하고, 이들과 함께 미술작품을 지역의 미술관에 기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컬렉터의 플렉스라고 말하는 정석호 씨다.

넓고 흰 벽에는 핑크색 붓터치가 돋보이는 베스 르테인의 작품을 걸었다.


소재의 관념을 깨트리는 작업으로 주목받는 누리아 푸스터의 작품.


라이브 퍼포먼스로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한 도나 후앙카의 페인팅 작품과 우고 론디노네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는 복도.


다이닝 테이블 위 작은 조각품은 시오타 치하루의 ‘In the Handʼ.


침실 벽면에는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을 설치해 밝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나 비버스의 작품이 설치된 침실.

예술 애호가의 길은 어떻게 걷게 되었나요? 어머니께서 2012년에 아트부산이란 페어를 시작하면서 도와드리게 되었거든요. 외국에서 방문하는 컬렉터나 미술계 인사를 안내했는데, 그분들과 대화가 통하려면 저 역시 예술을 공부해야 했죠. 그러던 중 2017년 초에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정치학 석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세계적인 갤러리들과 작품들을 접하며 애호가의 길에 스며들게 된 것 같아요. 독일의 갤러리는 누가 와도 친절하게 응대해주고, 곳곳에서 작품을 보고 토론하는 모습이 특징이에요. 지역 사회를 위한 사명감으로 일부러 슬럼가에 갤러리를 열기도 하고요. 그렇게 3년 동안 수많은 갤러리를 다니며 다양한 작품을 접하다 보니 저만의 취향이나 관점이 생겼고, 그때부터 컬렉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처음 구입한 작품은 어떤 것이었어요? 2015년 구입한 임창민 작가의 미디어 작품 ‘into a time frame’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컬렉팅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 작품은 뭔가 보자마자 저를 끌어당기더라고요. 커다란 TV 프레임 안에 병원의 복도 같은 공간이 보이는데요. 창문 밖으로는 잔잔히 움직이는 파도가 보여요.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 파도뿐인데, 평화로운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작품을 구입하려면 원래 공부도 많이 하고 예산도 고려해야 하는데 즉흥적으로 구입한 거죠. 게다가 그 비용을 한 번에 지불할 돈이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6개월 동안 분할 납부를 했죠.

첫눈에 반해서 작품을 구입하는 것도 멋진 일인 것 같아요. 미술품도 할부로 구입이 가능한지는 처음 알았네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신용도 있고 순수한 의도로 작품을 원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분할 납부도 가능해요. 물론 웬만하면 자신의 경제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품을 고르고 구입하는 게 가장 좋지만, 너무 갖고 싶은데 비용이 부담스러울 땐 한 번쯤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일 거예요.

아트 컬렉팅은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이기도 하고,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다는 선입견도 있잖아요. 돈이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은 맞습니다(웃음). 하지만 돈을 가치 있게 쓰는 일 같아요. 예를 들어 자동차는 거의 필수품처럼 생각하지만 자동차만 해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명품 시계나 가방 같은 것들도요. 나이가 들면 그런 부분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는데, 저는 그런 것보다는 미술작품에 제 돈을 쓰기로 마음먹은 거죠. 정말 마음에 드는 예술작품을 소장하게 되면 잠깐의 즐거움이 아닌 행복감을 누릴 수 있고,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이 좀 바뀔 거예요.

컬렉터가 된 후의 삶은 어때요? 좋아하는 게 명확해지니까 훨씬 깊고 풍요롭게 삶을 누리게 돼요. 많은 작품을 접하다보면, 미술사나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고, 혼자서 공부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고요. 아트 컬렉팅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멋진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경험이 일상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해주더라고요. 그 결과로 함께 미술품을 구입해서 미술관에 기증한다거나, 더 나아가 미술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이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되팔아서 재테크를 하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겠죠? 본인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아직까지는 없지만, 복도에 걸려 있는 도나 후앙카의 작품은 2018년 하반기에 구입했는데요.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꾸준히 전시해 인지도가 높아졌고, 그때에 비해 작품 가격이 2배 정도 올랐다고 들었어요. 물론 팔려면 팔 수도 있겠지만 지금이 그 작가의 전성기도 아니고, 작업을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커리어를 쌓아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직 팔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작품을 되파는 방법은 경매사에 위탁하거나 개인 딜러에게 의뢰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다만 팔려고 하기 전에 그 작가의 작품이 최근 어떻게 거래되었는지, 가격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확인하고 위탁하는 게 좋아요. 경매사에 위탁했는데 낙찰이 안 되면 다시 되팔기 어려운 건 물론, 판매자가 원했던 가격보다 낮게 판매가를 제안받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한 번 유찰된 작품은 다른 경매사에서 안 받아줄 확률이 높으니 유의해야 해요.

본인의 컬렉팅 스타일은 어떤 편이에요? 나만의 숨은 보석을 발견할 때 뿌듯함을 느껴요. 최근에는 비주류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큰 편인데요. 기존의 작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하나씩 사 모으고 있어요. 다만 한 작가의 작품을 한 점 이상은 못 사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고 멋진 작가의 작품이 눈앞에 나타나요. 세계관이 멋진 작가가 너무 많아서, 이 작가도 궁금하고 저 작가도 궁금해서 한 작품씩만 구입하고 있습니다.

초보 컬렉터에게 가장 좋은 학교는 아트페어일 텐데, 페어를 잘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전 세계 갤러리에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장점이죠. 신진 작가부터 몸값이 높은 작가들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으니까요. 컬렉팅을 시작하고 싶으면 페어를 찬찬히 둘러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걸 추천해요. 그러면 요즘 미술작품들의 시세도 알 수 있고, 자신이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이 정해지거든요. 컬렉팅할 때 너무 많이 고민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사는 것이 컬렉팅의 시작이고, 그건 나만이 결정할 수 있어요. 한번 시작해보면 컬렉팅의 매력을 알게 될 거예요.

기획 : 심효진, 김의미 기자  |   사진 : 김덕창, 이지아, 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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