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베토벤·쇼스타코비치, 폭정에 맞서 '자유'를 노래했죠"

2021. 7. 2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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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심포니 '왕의 두 얼굴' 공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장중한 E플랫.. 강렬한 대조 풍성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러시아 전통 탈피, 순수한 작품 평가
9월부터 슈투트가르트 발레 음악감독
"음악 열정적인 한국관객과 만남 기대"

월간객석과 함께 하는 문화마당 지휘자 미하일 아그레스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협연 손민수)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으로 이어지는 공연을 연다. 두 작품은 전쟁이 남긴 상흔 위에 피어났다.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언어인 '음악'으로 당대 사회를 기록하는 책임을 다했다.

공연의 부제인 '왕의 두 얼굴'은 무거운 책임을 진 두 작곡가의 초상을 가리킨다. 지휘를 맡은 미하일 아그레스트(1975~)에게도 그 책임의 얼굴이 선명하다. 러시아와 미국, 유럽 각국에서 쌓은 경험이 그를 책임감 있는 음악가로 성장시켰다.△러시아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미국으로 이주해 인디애나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러다 홀연히 러시아로 돌아갔다. 당신을 다시 러시아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나? 자국의 음악 유산에 대한 소명이었을까?

-지휘에 대한 갈망이었다. 미국에서도 아스펜 지휘 아카데미를 통해 데이비드 진먼과 요르마 파눌라로부터 가르침을 얻었다. 그러다 지휘계 전설인 일리야 무신(1903~1999)의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보고 러시아행을 결정했다. 사실 한 학기만 있을 생각이었는데 교육자이자 음악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무신에게 매료돼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이후 마리스 얀손스의 마지막 제자로 배웠고,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발탁으로 마린스키 극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무려 25년 세월을 러시아에서 보냈다.

△특정 음색을 가리켜 '러시아 사운드'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러시아의 음악적 DNA를 지닌 당신은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하다.

-러시아의 음악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그 전통 중 하나가 '러시아 사운드'인데, 이는 현악부에 초점을 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드 아우어 악파에 기초한 표현력 넘치는 소리, 여기에 더해진 어둡고 깊은 음색이 특징이다. 다른 나라의 악단과 러시아 레퍼토리를 연주할 때, 나는 "테누토로 더 깊이 노래하라"라고 주문한다. 한편, 러시아 금관은 원시적이고 직관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에는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 보다 정제됐다.

△2014년, 10여 년간 일했던 마린스키 극장에서 나와 독일에 정착했다. 이후 러시아를 거의 찾지 않았다. 러시아 음악을 수호하던 사람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궁금하다.

-1950년대, 할아버지는 종교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시베리아로 유배될 뻔했고 남은 가족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나는 여전히 소셜미디어에 귀여운 고양이 사진조차 자유롭게 올릴 수 없었다. 사상의 자유에 관한 기사를 공유하거나 글을 써 올렸는데 삭제되기 일쑤였다. 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는다. 러시아를 떠나야 했던 이유다.

◇자유의 노래△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공연을 위해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택한 의도가 보인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나폴레옹의 빈 함락 직후에,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은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죽음 직후에 쓰였다.

-두 작곡가는 폭정에 맞서 자유를 노래했다. 예술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사회를 반영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계몽시킨다. 베토벤의 음악엔 혁명 정신이 가득하고,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거대한 테러리즘에 맞선 한 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두 작품의 조합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유'다.

△베토벤의 협주곡에 영국의 한 출판업자가 '황제'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제목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장중한 E플랫 장조의 이 협주곡에는 엄청난 다이내믹과 기교가 가득하다. 당대까지 발표된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단연 '황제'라 이름 붙일 만한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한편으로, 스스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을 베토벤이 꼬집는 것 같기도 하다. 베토벤은 한때 그를 혁명을 완성할 영웅이라 믿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은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난 작곡가의 솔직한 내면을 볼 수 있다는 평과, 독재정권 '해빙기'의 기쁨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는 평을 동시에 받는다. 이러한 간극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20년 동안 두려움 속에 살았다. 작품은 사회주의 정권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평을 받았다. 그뿐인가. 생명의 위협에도 시달렸다. 언제 체포될지 몰라 생필품을 가방에 늘 지니고 다녔다. 쇼스타코비치는 그렇게 자신을 고립시킬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의 죽음으로 독재정권은 해빙기를 맞았지만, 지난 20년간 패인 상처를 반년 만에 회복할 수는 없었다. 교향곡 9번도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었으나 그는 작업에 어려움을 느꼈다.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승리를 어찌 맘껏 축하할 수 있었을까.

△게르기예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 리코딩을 두 차례 진행했다.(Philips/Arthaus Musik) 한 음악평론가는 그의 두 번째 전집에 관해 "러시아의 전통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현대적인 음악적 관점을 견지했다"고 말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한 게르기예프의 접근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다큐멘터리 '쇼스타코비치 전쟁 교향곡'(1997)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동료들과 게르기예프는 독재정권이나 1937~38년 대테러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의 정치 풍토는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스탈린은 "국가의 발전을 견인한 위대한 지도자"로 묘사된다. 게르기예프가 두 번째 전집에서 이 음악을 '순수'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표현한 이유는 현 정치 내러티브와의 불편한 '불협화음'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러시아는 스탈린의 시대로 회기하고 있다. 내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오늘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 생각인가?

-요즘 많은 러시아 사람이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다. "충분한 음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좋은 시절이었다. 세계는 우리를 두려워했다"면서 말이다. 내게는 쇼스타코비치가 그린 당대 사회의 '공포'를 잘 표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그 시절이 얼마나 '멋진 시기'였는지 설파하는 프로파간다에 맞서,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음악 앙상블과 협업도 오래 이어왔고, 야나체크나 바인베르크 등의 작품을 초연하는 데도 앞장섰다. 20세기 이후의 음악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 음악은 삶을 반영하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다. 물론, 신작 중 일부는 세월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모차르트와 차이콥스키도 피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해 첫걸음을 내디디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음악가로서 가진 의무다.

△최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작품이나 작곡가가 있나?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지금' 작업하고 있는 곡이다. 그래서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다. 그래도 언급하자면, 올가을 90세가 되는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와의 협업이 최근 내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됐다. 곧 본격적으로 공연이 재개될 텐데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9월부터 대규모 작품이 다시 슈투트가르트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런데 '지금' 가장 기대하는 것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한국 관객과의 만남이다. 한국에서의 지난 몇 차례 공연을 통해 이곳 관객이 음악에 무척 진지하고 열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음악을 잘 아는 관객이기 때문에,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를 선보이는 데 더욱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글=월간객석 박찬미기자·사진=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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