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새 규칙, 그들이 정하도록 둘 수 없다

한겨레 2021. 7. 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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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과학 언저리
베이조스는 우주를 사유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주를 새로운 기회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가. 우주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 될지 부자들의 무중력 상태 체험장이 될지, 그 방향이 결정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주의 새 규칙을 베이조스와 부자 친구들이 모두 정하도록 둘 수는 없다.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지난 20일 자기 돈을 들여 잠시 우주 공간에 다녀온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그 돈을 지구를 떠나는 대신 지구를 살리는 일에 쓰라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기본적인 의료와 위생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이때, 세계에서 첫째가는 부자는 지구상의 그 모든 고통을 못 본 체하며 불과 몇분의 우주 체험을 위해 돈을 뿌리는 것처럼 보였다. 또 베이조스의 우주 체험에 들어간 돈은 결국 아마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세금을 회피하여 번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부자들의 우주여행이 잦아질수록 탄소 배출이 늘어나서 이미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지구의 상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베이조스가 못마땅한 사람들은 그가 지구 바깥으로 나갔다 왔다고 해도 미국 연방항공국에서 인정하는 ‘우주인’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마침 개정된 연방항공국의 정의에 따르면 베이조스는 ‘우주비행 참가자’이긴 하지만 ‘우주인’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우주인은 발사와 재진입 등 우주비행체의 작동에 관련된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우 14시간 동안 교육을 받고 우주선에 탑승한 베이조스는 발사 당일 우주선이 움직이는 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는 우주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탑승한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키우지도 않았다. 그의 역할은 안전한 자세로 비행과 무중력 상태를 즐기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베이조스와 그의 우주개발 회사 블루오리진이 우주선을 조종사가 필요 없는 완전 자동 시스템으로 만들기로 했을 때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베이조스를 포함한 여행객 네명은 우주선을 조종하고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파일럿이 없는 상태에서 우주로 올라갔다. 베이조스는 아폴로 11호를 조종해서 달에 착륙시킨 닐 암스트롱 같은 영웅적 우주비행사가 없는 우주여행을 설계한 것이다. 이는 그보다 한 주 앞서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온 또 한명의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이 조종사가 있는 우주선을 만들어 탑승한 것과 대비된다. 브랜슨의 우주 기업 버진갤럭틱은 탑승객들이 우주비행 경험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우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뉴욕 타임스> 보도). 억만장자들 사이에서도 우주여행 철학이 다를 수 있다.

우주인 자격에 대한 지적에 크게 개의치 않을 베이조스는 자신과 함께 우주에 다녀온 82살 여성 월리 펑크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것이다. 펑크는 1960년대에 미 항공우주국 나사의 우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한 훈련을 마쳤지만 이후 번번이 우주인으로 선발되지 못했다. 항공기 파일럿으로서 오랜 비행시간을 축적했고 후배들을 교육한 역량도 있었지만 우주비행에 있어서는 젠더 장벽에 부딪혔다. 젊은 시절 진작 우주인이 될 수 있었을 펑크를 자신과 동행할 승객 셋 중 하나로 선택함으로써 베이조스는 다시 한번 영웅적 남성 우주인의 시대와 거리를 두는 모양을 만들었다. 물론 그 모든 결정은 돈을 내는 자신의 것이었다.

베이조스는 우주를 사유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주를 새로운 기회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가. 한편으로 그는 국가의 의제나 인류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우주에 가는 방식을 결정하고 우주에 갈 수 있는 사람의 기준도 정한다. 세계 제일의 부자라서 가능한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닐 암스트롱처럼 남성 엘리트 파일럿 출신이 아니더라도 우주에 가는 일을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이번에 동행한 승객 중 한명은 네덜란드의 18살 학생이었고,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우주에 간 기록을 세웠다. 물론 이것도 세계 제일의 부자와 그보다 조금 못한 부자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베이조스의 우주여행을 보도하면서 <뉴욕 타임스>는 “우주의 아마존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썼다. 베이조스가 만든 아마존은 누구나 클릭 한번으로 온갖 물건을 살 수 있는 편리를 주는 동시에 거대 인터넷 기업이 노동자와 소비자를 옥죄고 감시하는 시대를 초래했다. 우주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 될지 부자들의 무중력 상태 체험장이 될지, 그 방향이 결정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주의 새 규칙을 베이조스와 부자 친구들이 모두 정하도록 둘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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