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사는 방식

한겨레 2021. 7. 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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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공기가 데워질 대로 데워져 불가마가 되면, 더워 못 살겠다고 발악하는 듯 매미가 떼창을 한다.

하지만 따져보자면 매미도 나비 못지않게 연애 지향적인 존재다.

오래된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커다란 매미 한마리를 클로즈업시켜 그린 것이다.

매미는 순간의 감정일 뿐인데, 소나무는 지속하고픈 사랑이었다면, 둘 사이엔 감정의 불균형으로 인한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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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크리틱]
정선, <송림한선>(소나무 숲의 가을 매미), 18세기, 비단에 엷은 색, 21.3×29.5㎝, 간송미술관.

이주은|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도시의 공기가 데워질 대로 데워져 불가마가 되면, 더워 못 살겠다고 발악하는 듯 매미가 떼창을 한다. 외롭다고, 또 시간이 얼마 없다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저 소리를 듣고 있으면 왠지 다급해지고 불안한 기분이 든다. 매미 소리의 데시벨 수치가 90을 훌쩍 넘긴다고 하니, 구닥다리 진공청소기를 돌릴 때 나오는 소음에 버금가는 시끄러움이다. 어느 누가 아파트 단지의 매미 소리를 편안한 자연의 소리라고 말하겠는가.

매미는 긴 세월을 침묵하며 빛 볼 날을 기다리는 곤충이다. 6~7년 정도를 꼬박 땅속에서 애벌레로 견디다가 여름 어느 날 슬그머니 땅을 뚫고 나오는 거다. 그리고 쭈글쭈글한 헌 옷을 벗어 던지고 멋진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취직시험에 붙은 것일까, 박사학위라도 받은 것일까. 세상으로 나온 매미는 목 놓아 마음껏 외쳐본다. “거기 누구 없어요?”

우리 옛 그림에는 매미가 종종 존경받을 만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매미 그림은 주로 학자의 방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책 읽는 선비는 그림을 보면서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매미의 덕망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에 나가 자신의 뜻을 펼칠 날도 꿈꾸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매미 이미지는 인내와 더불어 관직에 오르는 출세를 의미했다. 권력의 정점이던 임금은 매미 날개 모양을 본뜬 익선관(翼善冠)을 머리에 쓰지 않았던가.

서양 그림에서는 매미는 찾기 어렵고, 애벌레에서 탈피하여 날개를 단다는 차원에서 나비가 매미를 대신한다. 하지만 나비는 현실의 출세라기보다는 부활한 영혼을 상징한다. 물론 꽃과 함께 있는 나비 이미지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남녀의 연애를 가리킨다. 하지만 따져보자면 매미도 나비 못지않게 연애 지향적인 존재다. 아니 어쩌면 매미는 오로지 연애만을 위해 사는 곤충인지도 모른다.

매미 소리는 참기 어려운 도시 소음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만, 실은 수컷이 암컷을 향해 부르는 달콤한 세레나데이다. 아무리 들어봐도 인간의 귀에는 낭만적인 구애 분위기의 노래는 아니지만 말이다. 여름의 일상을 소재로 짤막한 단상들을 엮은 <아무튼, 여름>이라는 책에서, 저자 김신회는 여름 한 계절의 일탈 같은 일회성 사랑을 ‘플링’(fling)이라고 부른다. 플링은 잠시 몸을 던져 실컷 즐기는 사랑, 그리고 더 이상의 미련을 남기지 않고 끝내버리는 사랑을 말하는 모양이다. 매미도 플링족일까.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의 작품 중 <송림한선>(소나무 숲의 가을 매미)이 있다. 오래된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커다란 매미 한마리를 클로즈업시켜 그린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와도 늘 한결같은 자태의 소나무와, 오직 여름 한 계절만 맹렬하게 살다 가는 매미가 대조를 이룬다. 겸재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매미와 소나무를 연인으로 본다면, 어느 쪽이 단순한 플링이고, 어느 쪽이 영원한 사랑일까.

매미는 순간의 감정일 뿐인데, 소나무는 지속하고픈 사랑이었다면, 둘 사이엔 감정의 불균형으로 인한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예술의 경우, 순간성과 영원성은 무게와 깊이를 저울질하며 비교할 수가 없다. 소나무가 매미에게 말한다. “너는 모를 거야. 홀로 남겨진 겨울이 얼마나 춥고 쓸쓸할지. 여름은 매해 추억과 함께 돌아오겠지.” 그러면 매미는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해. 내 생애 단 한번, 후회도 미래도 없어.”

책장은 넘어가지 않고 글도 써지지 않고, 창문 모기장에 붙은 매미를 툭 쳐서 쫓아낼까 하다가 터무니없는 상상만 해보았다. 세상에는 매미 같은 인생도 있고 매미 같은 사랑도 있다. 매미족이 아니라면 이런 불볕더위엔 좀 쉬었다 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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