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견딘 폭염은 그늘 되어 사람들을 감싼다

서울앤 2021. 7. 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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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㉚ 서울시 노원구1

[서울&]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세월 환난 이겨낸 나무들 숲 이루고

그 숲에서 나오는 사람들 표정 밝다

무더위 속 밤나무에 영근 작은 밤톨

‘더위 물러간 뒤 가을’을 꿈꾸게 한다

불암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 멀리 백악산(북악산), 북한산, 도봉산이 보인다.

한여름 폭염에 사람들은 숲을 찾는다. 이른 아침부터 노원구 불암산 숲을 찾은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숲에서 나눴다. 그들의 얼굴은 환했다. 그들에게 숲은 생활이었다. 생명의 활기 가득한 여름 숲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도로가, 주택가 골목을 지키는 오래된 나무는 폭염을 견디며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쓰레기를 쓸어 모으던 비질을 멈추고 고목이 만든 그늘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던 그 사람의 마음이 선선했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숲으로 가는 사람들

동트기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노원구까지 가는 시간도 꽤 걸리지만, 여름 한낮 폭염의 작살 같은 태양 빛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노원구 중계동 중계주공2단지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30분이었다.

어디론가 떠나려고 차에 짐을 싣는 사람들과 주차장을 청소하는 경비원, 아파트를 감싼 숲에서 나오는 아저씨 아줌마들로 아파트 단지는 아침부터 활기차다. 207동 앞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나무 그늘에 앉은 할머니는 90살이 넘어 보인다. 혼자 계신 할머니께 아침 인사를 드렸더니 할머니는 ‘지금 나오시냐’며 인사를 받는다.

그렇게 시작된 얘기 중에 할머니는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이 주변은 산기슭 밭과 낡은 집들, 들판이었다는 말씀도 들려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두컴컴했던 숲이 조금 밝아진다.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숲에서 나오는 사람의 발걸음이 느긋하다.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중계주공2단지 아파트 207동 앞 숲에 있는 675년 된 은행나무.

207동 앞 숲은 불암산으로 이어진다. 그 산기슭에 675년 된 은행나무가 숲을 오가는 사람들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듯하다. 이 나무의 배웅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 명성황후다. 조선 시대 고종 임금 때 임오군란을 피해 여주로 피신하던 명성황후는 이 나무를 지나게 됐다. 당시 이 나무는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서낭나무였는데, 명성황후는 이 나무 앞에서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며 나라의 안녕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숲에서 나와 은행나무 고목 앞을 지나는 사람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새벽 운동을 하고 오는 모양이다. 숲으로 들어가는 아줌마 중 한 명이 나무 앞에 잠시 멈춰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숲 입구에서 만난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저 나무는 컸어, 아주 컸어.’ 675년 세월 환난 속에서 살아남은 은행나무 고목 앞에서 90살 할머니가 남긴 말씀이다.

나무 주변을 서성거리며 숲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아침 인사를 숲에서 나누었고, 사람들 얼굴은 환했다.

불암산 숲속의 넓은 쉼터에서 만난 아침

발길은 중계주공2단지 아파트 남쪽 불암산 나비정원으로 향했다. ‘불암산 힐링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불암산 기슭에 생태연못, 생태학습관, 힐링 쉼터, 전망대, 데크길, 유아숲체험장, 사계절 정원 등 여러 공간을 만들었는데, 나비정원은 그중 하나다.

커다란 나비 조형물이 숲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같다. 데크길이 생태연못과 숲으로 이어진다. 갖은 꽃들이 피어난 정원에는 애벌레 모양의 커다란 장난감이 놓였다. 그 앞에 분홍바늘꽃이 무리 지어 피었다. ‘프러포즈 트리’라는 이름표가 붙은 나무도 보인다. 나무줄기를 감싸고 도는 짧은 나무 계단에 올라서면 통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와 탁자가 있다. 둘이 마주 보고 앉게 한 이 공간은 둘만으로도 가득한 세상이다. 나무 아래 앉아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생각하니 나무가 달콤하다.

‘프러포즈 트리’에서 나비정원을 한눈에 넣고 돌아섰다. 불암산 힐링타운 종합안내판을 보고 불암산 전망대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전망대로 가는 숲길은 흙길과 데크길이 있다. 데크길로 막 걷기 시작하려는데, 나무에 달린 작은 밤송이가 눈에 띄었다. 한여름 폭염 속에서도 가을은 밤나무 가지에서 이렇게 움트고 있었다. 8월7일이 입추이니, 가을도 이제 머지않았구나! 입추 지나면 말복, 마지막 여름 더위다. 계절이 여름 속에 가을을 들인 까닭을 생각해본다.

아침 8시18분, 사람들은 불암산 전망대로 가는 길 입구 밤송이 맺힌 밤나무 아래를 오간다. 아직은 햇볕에 날이 서지 않았다. 나무 그늘은 선선했다.

불암산 전망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망대가 나왔다. 엘리베이터도 있어 몸이 불편한 분들도 전망대에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게 했다.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면 360도로 펼쳐진 풍경에 속이 시원하다.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건물과 산의 이름이 적힌 안내판 그대로 청계산부터 관악산, 남산, 백악산(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까지 길게 이어지는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먼 데 풍경에서 눈을 거두어 발아래를 보면 숲의 정수리다. 숲 밖 세상은 환하게 빛나고 숲이 만든 그늘에서 환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는 숲속의 사람들이 빛난다.

은행나무가 많았다던 서울시 노원구 옛 은행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은행나무 고목.

은행마을의 나무들

중계주공3단지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중계본동 종점으로 가다보면 은행사거리를 지난다. 예로부터 이 부근에 은행나무가 많아서 은행사거리로 불렀다는 이야기와 금융기관인 은행이 많아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은행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실린다.

이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옛 지명인 은행마을이라는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부르고 있다. 현재 노원우체국 주변부터 북쪽으로 영신여고 아래까지 걸쳐 있는 마을의 옛 이름이 은행마을이다. 이곳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아서 마을 이름이 은행마을이 됐다고 한다.

은행마을 부근에 남아 있는 옛 마을은 몇 개 더 있다. 은행마을 아래 광석마을이 있었다. 마을 개울에 구리 성분이 많은 돌이 있어서 햇빛을 받으면 돌에서 빛이 난다고 해서 광석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석마을 아래는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섰다는 무시울이었다. 무시울 일부가 지금은 백사마을이 됐다. 이 옛 마을들이 지금은 중계본동으로 묶였다.

은행나무가 많았다던 은행마을에 지금은 은행나무 고목 딱 한 그루가 살아남아 은행마을을 지키고 있다. 중계동 61-22, 아파트 단지와 빌라가 모여 있는 골목길 가운데 500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가 그 나무다.

은행나무는 아니지만 이 마을에 남아 있는 고목이 몇 그루 더 있다. 시내버스 중계본동 종점 부근에는 150년 넘은 음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100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115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고, 느티나무 삼거리에서 중계로8길로 접어들어 약 160m 정도 걷다보면 14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보인다. 옛 은행마을에 남아 있는 500년 은행나무와 보호수로 지정된 고목 몇 그루를 보고 도착한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윤탁한글영비’였다.

보물 제1524호로 지정된 이 비석은 1536년(중종 31년) 이윤탁과 그 부인 고령 신씨를 합장한 묘 앞에 아들 이문건이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는 한글과 한문으로 묘역이 훼손되지 않게 지키는 내용의 글이 새겨졌다. 특히 한글로 새겨진 문구는, 이 비석은 신령한 것이고 비석을 쓰러뜨리는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윤탁 묘역은 원래 지금의 태릉 자리에 있었다. 조선 시대 중종 임금의 계비이자 명종 임금의 어머니인 문정왕후 윤씨의 능을 이윤탁 묘가 있던 자리에 만들면서 이윤탁 묘를 부인의 묘로 이장하게 된 것이다.

이윤탁 한글 영비를 뒤로하고 원래 이윤탁의 묘가 있었던 태릉으로 향한 시간은 오전 11시30분, 햇볕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바늘로 살갗을 찌르는 것 같았다.

이윤탁한글영비가 있는 비각과 이윤탁과 그의 부인을 합장한 묘역.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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