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친다"는 의구심에 사생활 폭로로 대응한 '골목식당'

정덕현 칼럼니스트 입력 2021. 7. 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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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골목식당'의 민낯.. 진정성과 사생활 폭로 사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아예 작정한 듯 했다. 지금까지 '진정성 없는 출연자'의 문제는 간혹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하남 석바대골목의 춘천식 닭갈빗집의 경우는 그 대처가 달랐다. 편집과 솔루션 포기가 아니라, 그 진정성 없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한 것이다.

춘천식 닭갈빗집은 등장하면서부터 이번 편의 '빌런'이 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모자가 함께 하는 가게에서 등장부터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 차릴 수 있게 따끔하게 혼났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가족들조차 아들을 통제할 수 없었던 사실을 드러낸 것. 충격적인 위생상태는 백종원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질타가 이어졌고 결국 아들 사장님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사과문을 써서 문 앞에 붙이는 장면이 공개됐다.

그렇게 일단락이 된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깨끗하게 변화한 가게는 이제 어머니가 말했듯 '새 출발'을 예고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질타가 이어졌던 그날 제작진이 철수하고 남겨져 있던 카메라에 사장님의 '이중적인 언동'이 담겨진 것이었다. 제작진이 철수한 지 약 한 시간 후 지인들이 찾아왔고 놀러나가는 사장님의 모습이 찍혔고, 빈 가게에 들어선 어머니의 실망 가득한 모습과 동생의 답답해하는 한탄이 이어졌다.

"가게는 이 모양 이 꼴이 났는데... 근데 사실 방송에 나오는 건 문제가 전혀 없고 (형이) 일을 잘 못하는 게 문제인 거지 와서 지적한 건 전혀 문제가 안돼요. 근데 제일 큰 문제는 저희 형이 공사하는 법도 모르고 주방배치도 모르고 하려는 의지도 없고 놀러 간 게 문제인 거죠." 결국 그날 밤 사장님은 가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다음 날 카메라가 돌아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디오가 안 된다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내뱉은 사장님의 말이었다. 그는 "카메라 돌아가고 있어서 카메라 앞에 있는 것만 닦고 있다"고 했고, 방송에 대해 묻는 지인에게 "엄마도 엄청 울고 저도 '방송용 눈물' 좀 흘리고"라고 말했다. 카메라가 찍고 있어서 "앉아가지고 슬픈 생각 하면서 눈물도 조금 보이고"라고도 했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충격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그 상황에 따라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뉘앙스가 달리 읽힐 수도 있다. 그 광경은 사장님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일 수 있고,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실제로 사장님은 그 장면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내놨다. 사전 면담을 한 제작진이 "사장님이 저희를 속인 거냐"고 묻자 사장님은 "그 순간은 진심으로 눈물이 난 것"이라며 주변 사람들이 우는 모습에 혹시 놀릴까봐 그렇게 변명한 것이라고 했다.

그 장면을 확인한 백종원은 실망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단지 기만당한 사실에 대한 '황당함'만이 아닌, '방송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백종원은 아들의 언동이 모두 "사기"이고, 그간 <골목식당>에 나왔던 사장님들의 진정성까지 의심하게 됐다며 "기분이 정말 더럽다"고 했다.

이 문제가 만일 사람들 입으로 전해져 전파되면 방송 프로그램 전체가 "짜고 쳤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앞에서는 눈물 흘리고 지인들과 놀러 나간 데다, "방송용 눈물을 흘렸다"는 식의 이야기가 주변 지인들을 통해 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간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과 여기 출연한 사장님들의 진정성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문제였다.

이런 근거로 가게에 설치된 카메라에 포착된 아들 사장님의 모습들을 방송을 통해 공개한 것이지만, 그래도 남는 불편함은 존재한다. 물론 사전에 관찰카메라의 설치를 허락하고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한 것일 테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물론 그게 용납된다는 뜻은 아니지만)까지 방송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때에 따라 그 상황의 감정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 앞에서 하는 이야기와 뒤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둘 다 공적인 상황이라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공적인 이야기와 다른 사적인 이야기는 다를 수도 있다. 없는 곳에서는 임금님 욕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은 방송인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카메라가 돌아가고 오디오가 녹음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떠들었던 게 아닌가.

하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 제작진 입장에서는 '방송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부분일 수 있는 영상을 공개하는 것만이 백종원이 말하듯 그 진정성을 최소한 담보할 수 있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개인의 사적인 치부를 폭로하는 것이 어디까지 정당할 수 있을까.

백종원의 지적은 정확하다. "짜고 친다"는 진정성 논란은 이미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드리워진 지 오래다. 그건 늘 비슷하게 패턴화된 이야기를 담아낸 제작진의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래 방송되면서 출연자들도 이제 자신들이 어떻게 방송이 비춰질 것인가를 알고 있어 '맞춰가는 방송'이 만들어낸 진정성의 훼손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문제에 대해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편집이나 솔루션 포기가 아닌 '폭로'를 선택했다. 진실을 알리려는 것일 수 있지만 그 폭로된 장면들이 사적인 부분일 수 있다는 건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현재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처한 딜레마다. 관찰카메라의 힘은 진정성에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방송이 패턴화되면서 갈수록 상황이 쉽게 읽힌다. 그래서 "짜고 친다"는 논란도 자주 불거진다. 하지만 진정성의 회복을 위해 솔루션 받은 가게를 다시 급습해 달라진 모습을 폭로하거나 어쩌다 찍힌 사적인 영상들을 공개하는 방식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심지어 빌런이 만들어져 온 국민의 질타를 받을 수 있는) 문제를 양산한다. 최근 시청률을 바닥까지 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보여주는 벼랑 끝 민낯이 위험천만해 보이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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