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야! 울려 퍼진 소방서

한겨레 2021. 7. 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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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에서 군 생활을 했다.

이 말을 하면 생소한 정보에 대부분이 그런 게 있느냐는 반응이다.

10년도 더 전에는 일선 소방서에 말벌보호복이 따로 없었고 화재진압복에 양파망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벌집 제거를 했었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은 감찰반이 그 전날 밤 소방서 차고에 몰래 들어와 말벌보호복을 숨겨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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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삶의 창]

정대건|소설가·영화감독

소방서에서 군 생활을 했다. 이 말을 하면 생소한 정보에 대부분이 그런 게 있느냐는 반응이다. 그러면 나는 의무경찰처럼 소방서 내에서 내무실 생활을 하고 출동을 나가 보조업무를 하는 의무소방원이라고 설명한다. 2023년이면 의무경찰과 함께 대체복무 제도가 폐지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2년간 소방서 생활을 해보기 전에는 몰랐다. ‘소방’ 하면 떠오르는 화재·구조·구급 출동 이외에도 동물 포획, 실종자 수색, 수난 구조, 산악 구조 등 소방서에서 처리하는 일이 그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을. 산악 구조 출동의 경우 헬기는 그리 쉽게 뜨는 게 아니고 산에 들것을 들고 올라가 요구조자를 싣고 내려와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 말벌집 제거가 하루에도 몇번이나 출동을 나갈 정도로 잦은 업무인 것도 몰랐다.

벌 쏘임 사고는 종종 뉴스에서 접할 수가 있다. 2015년에는 소방관 한명이 벌집 제거 출동 중에 말벌에 쏘여 순직하였고, 매년 5명 정도의 벌 쏘임 사망 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위협적이다. 10년도 더 전에는 일선 소방서에 말벌보호복이 따로 없었고 화재진압복에 양파망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벌집 제거를 했었다. 어떤 말벌집은 정말 농구공보다 더 크다. 말벌 입장에서는 자기 집을 건드리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곧바로 수백마리의 말벌이 달려드는데 얼굴을 가린 양파망에 달라붙어 공격하는 분노한 말벌 떼의 표정이 보였다. 살충제 스프레이로는 끄떡도 안 한다. 우우우웅, 하는 소리. 특히 장수말벌은 헬리콥터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공포 그 자체다. 출동이 많을 때는 말벌 떼가 꿈에 나올 정도였다. 출동 중 나도 말벌에 쏘인 적이 있었고 내 엉덩이에는 아직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그런 생활을 했던 연유로 아무래도 소방 관련 뉴스를 접하면 마음이 가서 귀를 쫑긋 세우게 되고, 길에서 구급차 소리와 소방차 출동 소리를 듣게 되면 큰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코로나 와중에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있지만 감염보호복을 전신에 입고 고생하는 구급대원들과, 36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서 30㎏에 달하는 장비를 짊어지고 화재 현장을 누비는 대원분들을 생각하면 고마움과 함께 숙연한 마음이 든다. 대중에게 소방과 관련해서는 소방관들이 사비로 장비를 구입한다느니 하는 열악한 처우에 대한 인식이 퍼져 있었다. 그래도 국가직 전환과 소방노조 출범 등 그 와중에도 좋은 소식들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이번에 한 기사를 보고는 분노했다. 얼마 전 소방노조가 ‘함정 감찰’에 대해 시위했다. 감찰반이 장비 점검을 요구했는데 말벌보호복이 없어서 그것에 대한 지적을 했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은 감찰반이 그 전날 밤 소방서 차고에 몰래 들어와 말벌보호복을 숨겨두었던 것이다. 소방노조는 “감찰이 아닌 도둑질”이라며 반발했다. 여름에는 하루에 서너차례 이상 벌집 제거를 위해 출동하는 데 필수 안전장비가 사라진 거다. 출동은 식사 중에도, 자는 도중에도, 장비 점검 중에도 언제든지 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같은 조직에 있는 동료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설마 화재진압복이 아니라 말벌보호복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던 걸까.

소방이 아닌 어느 조직에서 일어났어도 말도 안 되는 함정 감찰이지만, 잘 있던 안전장비를 침입해서 몰래 숨겨두고 책임을 묻는다니, 코로나와 폭염에 고생하는 대원들을 응원하기는커녕 진정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감찰의 존재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감찰을 위한 감찰을 하려다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짙다. 감찰관이 폭염 속에서 말벌 수백마리가 달려드는 출동을 나가봤다면 과연 안전장비를 몰래 훔치는 그런 발상을 할 수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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