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88 최후항전' 앞둔 미얀마 시민..최대의 敵은 '무기화된 코로나'

박세희 기자 2021. 7. 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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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에 맞서 항의의 표시로 등교를 거부하고 있는 미얀마 대학생들이 지난 7일 양곤 시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다음 달 1일 쿠데타가 발발한 지 6개월이 되는 가운데, 시위대는 같은 달 8일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4일 미얀마 양곤의 한 화장장에서 유가족들이 시신 수십 구의 화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미얀마나우 홈페이지 캡처

■ 민주화 시위대, 33년전 ‘8888항쟁’ 재연 추진

군부 쿠데타 발생 6개월째

최소 934명 사망·6928명 체포

국제사회 관심 사그라든 동안

군부, 더 강경하게 시민 진압

설상가상 코로나까지 확산

시위 나선 의료진들 체포되며

병원 복도에 시신 그대로 방치

사망자 통계조차 확인 어려워

軍 ‘치료용 산소’까지 완전통제

“팬데믹에 시위동력 상실” 전망

88서울올림픽을 한 달여 앞둔 1988년 8월 8일. 미얀마 전역에서 학생과 시민 수십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군부에 맞서 민주화를 외쳤다. 미얀마 민주주의 역사에 획을 그은 ‘8888 민주항쟁’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의 무자비한 총칼에 3000명이 넘는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미얀마 민주화 시위대는 도쿄올림픽이 끝나는 8월 8일, 올해 33주년을 맞는 ‘8888 민주항쟁’의 재연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로 민주 정권이 뒤집힌 지 6개월이 돼 가지만,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과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면서 동력을 잃어가는 시위의 불을 다시 댕기겠다는 것. 시위대의 ‘최후의 항전’은 성공할 것인가. 전 세계의 시선이 8월 8일 미얀마에서 벌어질 일에 쏠려 있다.

◇‘최후의 항전’ 준비…성공 여부는 비관적 =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이 주도해 쿠데타를 일으킨 지 다음 달 1일이면 6개월이다. 쿠데타가 발발한 직후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렸던 것도 잠깐, 미얀마의 뒷배인 중국·러시아의 입김에 세계 각국이 사실상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채로 이제 미얀마는 국제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2월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최소 934명이 사망했고 6928명이 체포됐다. 군부의 강경 진압이 이어지자 시위대는 대규모 시위에서 산발적 소규모 시위로 방향을 전환했고 시민방위군(PDF)이 창설돼 곳곳에서 소규모 시위와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 소식통은 29일 “8월 8일 민주항쟁 기념일을 맞아 시위대가 ‘최후의 항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규모 시위들에 참여하지 않았던 중산층이 최근 코로나19에 무력하고 오히려 코로나19를 무기로 사용하려는 군부 모습에 많이 분노하고 있어 이게 대규모 시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위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사실 비관적 전망이 더 우세하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전역의 의료 체계가 망가진 상태에서 최근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면서 하루에도 몇 명의 사망자가 나오는지 통계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영준 한-미얀마연구회 부회장은 “코로나19가 워낙 심각해 시위 등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한 현지 교민도 “사태가 장기화하고 코로나19 상황이 너무 나쁘다 보니 시민들은 거의 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사실상 군부가 승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최 부회장은 “얼마 전 흘라잉 총사령관과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그동안 강공으로 일관해온 군부가 회유책을 쓰며 시민들을 회유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가 지옥” 심각한 코로나19 상황…군부는 ‘무기화’= 실제로 미얀마 수도 양곤에는 시신이 쌓여가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미얀마나우는 “지난 24일 한 종합병원의 산소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한 병원에서 하룻밤 새 23명 이상의 환자가 사망했다”며 “시신을 빈소로 옮길 인력도 부족해 대부분의 시신을 병원 복도에 방치하는 등 지옥 같은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누적 조회 수 100만 건 이상을 기록하는 등 이슈가 된 동영상 속에서 양곤의 화장장엔 50여 구의 시신이 소각되길 기다리며 줄지어 있었고 이 중 절반은 담요나 매트에 싸여 있었다. 급격히 늘어난 사망자 수에 관도 부족해지면서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26일 기준 미얀마의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는 4630명, 사망자는 396명이다. 하지만 CNN방송 등 외신은 현지 의료진과 봉사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군부가 발표하는 확진자 통계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도했다. 조이 싱할 국제적십자사 미얀마 대표도 “최근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사람의 3분의 1이 양성 판정을 받고 있다”며 “상황은 정부 통계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군부에 맞서는 국민통합정부(NUG)의 조 웨 소 보건장관은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없으면 향후 몇 달간 코로나19로 30만~40만 명의 미얀마인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의료 시스템이 무너진 건 ‘흰 가운 시위’를 벌이며 반군부 투쟁에 앞장섰던 의사들을 군부가 체포하는 등 탄압하면서다. 지금까지 240개 이상의 의료진 시설이 습격당한 것으로 보이며 토머스 앤드루스 유엔 인권조사관에 따르면 약 500명의 의사가 체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병원에 갈 수 없어 집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뜻의 노란 깃발만 내건 채 하루하루 버티다 사망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한 교민은 전했다.

이런 상황 속에 군부는 코로나19를 무기화하는 모습이다. 늘어나는 확진자로 인해 ‘산소 대란’이 벌어진 가운데 군부는 산소를 독차지하고 산소 판매를 제한하고 있으며 산소통 제조 공장을 장악해 민간 산소 판매를 금지했다. 치료용 산소는 군 병원에만 공급하며 군 병원들은 환자를 가려 받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태평양 전문 온라인 매거진 더 디플로마트에 따르면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을 지낸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는 “군부는 민주화 운동을 질식시키고 의도적으로 인도주의적 재앙을 부채질해 합법성을 얻는 등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코로나19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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