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충분히 잤는데 난 왜 회의때 졸까” 나쁜 잠엔 이유가 있다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1. 7. 28. 2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괜찮은 잠과 나쁜 잠

#1. 50대 중반 A씨는 잠이 예전 같지 않다. 젊을 때는 밤에 한 번도 안 깨고 잤는데, 최근 자다가 한두 번씩 깬다. 기상 알람이 울리기 전인데 스스로 일어나는 날도 많아졌다. 다만, 자다가 깨더라도 다시 잠들기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낮에 일상생활하는 데 졸림이나 피곤함은 없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정상적으로도 경험하는 수면 변화다. 수면 중 각성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증가한다. 노년기가 되면, 깊은 잠인 서파 수면은 더욱 감소하고, 수면 중 자주 깨어 수면 효율이 감소한다. 수면 주기가 당겨져 초저녁 잠이 많고, 새벽에 일찍 깨는 경향이 생긴다.

#2. 40대 직장인 B는 원래 잠이 적은 편이다. 평소 밤 12시쯤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 반에 일어난다. 이후 1시간가량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회사에 출근한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항상 5시 반쯤 일어나 책을 읽거나 운동한다. 7시간은 자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해서 더 자려고 노력해봤지만, 6시간 이상 자지 못한다. 그렇다고 낮에 졸리지 않다. B는 체질적으로 잠이 적은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다. 더 자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자지 못하는 수면 부족과는 다르다. 소수에 해당하나 비정상 수면은 아니다.

#3. 30대 남성 C는 낮 시간 졸음이 심하다. 어려서부터 잠이 많은 편인데, 직장 일로 수면 시간이 줄어든 이후 졸음이 심해졌다. 검색해 보니 스스로 기면병이 아닌가 싶어 병원을 찾은 적도 있다. 수면 다원 검사와 낮잠 검사를 해보니 기면병이나 특발성 과다 수면증은 아니다. 원래 잠이 많은 롱 슬리퍼(long sleeper)다. C는 하루 10시간 이상 자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그렇게 충분히 자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심한 주간 졸음을 보일 수 있다. 충분히 잘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금부터는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이른바 나쁜 잠 사례다.

#4. 40대 직장인 D는 자도 잔 것 같지 않아서 힘들다. 7~8시간 충분히 잤는데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오후 회의 시간에는 졸기 일쑤다. 최근 고혈압과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아내는 D가 자는 동안 숨을 멈추기도 하는 무호흡을 보여서 너무 불안하다고 하였다.

이는 폐쇄성 수면 무호흡 증상이다. 수면 중 기도 위쪽에 부분적 폐쇄가 일어나 무호흡 내지 저호흡이 생겨 산소 공급이 적게 일어난다. 숨을 쉬려는 노력으로 잠에서 자꾸 깨게 된다. 수면의 질이 떨어져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주간 졸음이 심해진다.

코골이와 과체중이 대표적 위험 인자다. 합병증으로 고혈압‚ 심장 부정맥‚ 뇌졸중‚ 당뇨병‚ 기억력 장애‚ 성기능 장애‚ 우울증 등을 보일 수 있다. 수면 다원 검사를 통한 정확한 진단과 수면 중 공기를 밀어 넣어주는 양압기 치료가 필요하다.

#5. 50대 여성 F는 자려고 누우면 양쪽 장딴지가 스멀거리는 느낌이 들어 잠들기 힘들다. 이럴 때는 자꾸만 다리를 움직이고 싶고 가만히 있기 어렵다. 낮에는 괜찮다. 남편이 F가 자는 모습을 보더니 다리를 계속 움찔거리면서 잔다고 했다.

이는 하지 불안 증후군이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다리가 움직이고 싶은 느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면 장애다. 다리가 시리거나 아프기도 하다. 성인의 5~10%에게 있을 정도로 흔하다. 중년에 많다. 철 결핍이 원인일 수 있으니 혈액 검사가 필요하다.

#6. 20대 대학생 G는 밤 12시부터 자려고 애를 쓰다가 새벽녘이 되어야 겨우 잠이 든다. 점심때 겨우 일어나니 학교 결석과 지각을 밥 먹듯이 한다. 이는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 장애다. 수면 주기가 사회생활과 안 맞아 문제를 일으킨다. 새벽 2~3시가 넘어서 잠이 들고 오전 10~11시까지는 자는 리듬이 반복된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청소년과 젊은 성인에게서 7~16%의 유병률을 보인다. 야간 스마트폰 사용이 악화 요인이다.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쇼트 슬리퍼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많으며 약간 조증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롱 슬리퍼는 불안하고, 약간 우울하다고 보고되기도 한다. 수면 다원 검사를 해보면 둘 다 비슷한 양의 깊은 잠, 즉 서파 수면을 보인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문제는 안 된다. 몇 시간을 자야 한다고 지나치게 집착하면 되레 불면증이 생길 수 있다. 코골이, 하지 불편감 등 수면 장애나 일주기 수면 리듬으로 문제가 있다면, 수면 의학 전문가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게 좋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