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즐겨라, 10대!
[경향신문]
“49초대에 턴한 걸로 만족할래요.” 지난 27일 도쿄 올림픽 경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7위를 차지한 황선우(18·서울체고)의 쿨한 반응이다. 취재진은 150m까지 선두이던 황선우가 마지막 50m 구간에서 지쳐 메달권에 들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며 100m 구간기록(49초78)을 전해줬다. 아쉬워할 줄 알았다. 뜻밖에 황선우는 “오버 페이스였네요” 하며 환하게 웃었다.
‘자기 객관화.’ 산전수전 다 겪은 성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미덕이다. 한국의 10대 국가대표들은 ‘그 어려운 걸’ 해낸다. 27일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탈락한 ‘코리아 파이팅’의 김제덕(17·경북일고)은 “(바람에) 당황했다. 버벅거리다가 게임이 끝나고 말았다”며 “더 배워야겠다”고 했다. 여자 탁구 단식 3회전에서 패한 신유빈(17·대한항공)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너무 세게 나간 것 같다”면서도 “선수라면 이기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앞서 2회전에서 신유빈은 41년 선배인 니시아렌(룩셈부르크)에게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가 10분가량 중단되는 일을 겪으면서도 시종일관 담담했다.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은 이들뿐이 아니다. 조용하게 결전을 기다리는 선수들도 있다. 여서정(19·수원시청)과 이윤서(18·서울체고)는 한국 체조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여서정은 여자 도마 결선에 진출했고, 이윤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여자 기계체조 선수로는 처음 개인종합 결선에 올랐다.
황선우가 또다시 큰일을 냈다. 28일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고 전체 16명 중 4위로 8명이 겨루는 결승에 진출했다. 아시아 선수가 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 오른 건 65년 만이다. 기자들이 알려주자 “엄청 오래됐네요”라며 웃고 만다. 노민상 감독은 황선우를 두고 “게임을 즐길 줄 안다. 일하러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일을 즐거워서 하는 사람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한겨레).
당차고 발랄한 10대들이 ‘코로나 블루’를 씻어준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즐겨라, 10대!
김민아 논설실장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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