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억제력 강화' 언급 안한 김정은, 북·미 대화로 이어질까
[경향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전국노병대회 연설에서 지난해와 달리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남과 북이 13개월여 만에 통신선을 전격 복원하며 대외환경 개선에 나선 상황을 고려해 자극적 발언을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도 통신선 복구 결정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태도 변화로 볼 때 북·미 대화 재개에도 청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남북은 전날에 이어 28일 남북연락사무소과 서해지구 군 통신선에서 정상적으로 시험통화를 진행했다.
■김정은, 작년과 달리 노병대회서 핵억제력 언급 안해
김 위원장은 6·25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북한의 ‘전승절’) 68주년을 맞아 지난 27일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앞에서 열린 제7회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해 “우리 혁명 무력은 변화되는 그 어떤 정세나 위협에도 대처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영웅적인 전투정신과 고상한 정치도덕적 풍모로 자기의 위력을 더욱 불패의 것으로 다지면서 국가방위와 사회주의 건설의 전초선들에 억척같이 서 있다”고 말했다고 28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지난해 노병대회 연설에서는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자위적 핵 억제력”, “최강의 국방력”등의 표현을 쓰며 공개적으로 ‘핵 무력’을 강조했던 것과 대비된다.
김 위원장은 이어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보건 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로 되고 있다”며 “전승세대처럼 우리 세대도 오늘의 어려운 고비를 보다 큰 새 승리로 바꿀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젤리나 포터 국무부 부대변인은 2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긍정적 조치”라며 “외교와 대화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도 “북한과의 소통과 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으로서도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을 벗어나는 것은 한반도 정세 관리 차원에서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의 대북접촉 시도에 응하지 않던 북한이 통신선 복구라는 전향적 자세로 나온 것은 북·미 대화 여건 조성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한미가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의 도발 억제 등 상황 관리를 하기로 합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통신선 복구 ‘환영’…북·미 대화 재개 ‘청신호’ 될까
남북 통신선 복구가 북·미 대화 재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섞인 관측이 나오지만, 코로나19를 포함해 물리적 장애요소를 포함해 난관도 적지 않다. 특히 미국은 북한에 ‘조건없는 대화’ 제안에 응하라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적대시 철회’를 대화 복귀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다.
당장 다음달 한·미 연합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합동군사연습을 중단하라고 직접 촉구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훈련 실시를 인도·태평양전략 관점에서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가 훈련을 전면 중단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이 문제를 놓고 한·미 간 잡음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중재역’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미 간 직접 소통 채널은 존재하지만 미국 신 정부와 김정은 정권 사이에 신뢰가 전혀 없는 점, 또 동맹과의 조율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 성향 등으로 한국 정부 역할론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에게 대화 복귀의 명분과 실리를 제공하는 데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핵동결을 대가로 한 유엔 안보리 제재 조건부 완화 등 단계적 보상 조치를 가시화해서 전달하는 식”이라며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제재 완화를 얻어내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방역이나 식량 등 통 큰 인도적 지원을 통해 관계 물꼬를 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남북 간 통신연락선 복원 사실을 전날 북한 주민들이 접할 수 없는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으로만 발표했고, 노동신문처럼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매체에선 전하지 않았다. 정세의 불확실성과 여러 변수를 고려해 북한 주민들의 혼란을 줄이고 외교적 여지를 남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은경·김유진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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