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석기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목격자들'

한겨레 2021. 7. 2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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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준 법무법인 다산 대표변호사

30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기억한다. 2019년에는 처제 살해로 수감 중이던 이춘재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밝히면서 다시 세상 밖으로 소환되었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윤성여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09년 8월 가석방되기까지 20년의 수감생활을 마친 뒤였다.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30년 만에 살인자라는 누명에서 벗어난 윤씨와 함께 지난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 섰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인권침해 및 사건 은폐로 피해를 입은 고인의 유족들과 함께 공권력의 반인권적 행위를 고발하고 공식 조사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변호사로서, 대한민국 법조체계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우면서도 참담한 마음이었다.

오랜 기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잘못된 진실들을 모두 앞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구금되었던 7326일,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다시 잠자리에 들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는 그에게 어떻게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동시에 ‘억울한 옥살이’라는 문구를 보면, 지금도 진행형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정보원의 댓글공작·대선개입에 대한 진상 요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던 시기에 절묘하게 맞춰 공개된 사건이었다. 그 당시 공동변호인단 단장 역할을 하면서 내렸던 ‘전부 무죄’라는 판단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언론 기사에 도배가 되다시피 한 ‘지하혁명조직 아르오(RO)’는 실체가 인정되지 않았고, 가장 핵심적인 공소사실인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되었다. 그런데 ‘내란선동’ 혐의는 인정되고, 지금도 일선 법원에서 위헌심판제청 결정이 나오는 ‘국가보안법 7조’ 위반까지 더해져, 최종 징역 9년형이 확정되었다. 말로 부추기는 것이 ‘선동’이고 선동에 호응한 사람들이 ‘모의’(음모)를 하여 실행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내란음모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판단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에서 이른바 ‘재판거래’ 문건이라고 지목된 법원행정처 서류에는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이 당당하게(?) 앞순위에 배치되어 있다. 이 전 의원 사건의 대법원 선고기일이 법관 뇌물수수 사건의 언론 대응 목적으로 앞당겨진 사실도 확인되었다. 정권이 바뀐 이후 선고된 후속 관련 재판에서는 2013년 5월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일반적인 행사로 인식하고 참여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 체제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결론지어진 사건이다. 그러하기에 90분 강연으로 9년형을 선고받은 이석기 의원은 전형적인 ‘양심수’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에서는 이춘재의 자백뿐 아니라 이후 재수사를 통해 상당한 증거들도 ‘새롭게’ 확보되었다. 과거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유전자가 검출되었고, 당시 경찰이 엉뚱한 민간인들을 피의자로 지목하여 자행한 불법체포, 폭행 등 고문과 가혹행위 정황들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석기 전 의원 사건에서는 그 어떤 ‘새로운 증거’가 더 필요하지 않다. 지난 재판 과정 자체만으로도 ‘무죄’이다. ‘양승태 대법원 체제’ 이후 새롭게 구성된 대법원을 두고서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지금 대법원에서 재판한다면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기록들을 보면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냈던 그 끔찍한 과정 동안 당연히 존재했을 수많은 ‘목격자들’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모두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에서는 같은 시대의 ‘목격자들’이다. 아니 이러한 불의한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방관자들이다. 같은 법조인으로서, 무엇보다 같은 목격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석기 의원은 왜 아직도 감옥에 있어야 하는지” 묻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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