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코다 국제콘퍼런스를 기다리며

한겨레 2021. 7. 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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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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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엄마가 통역을 부탁했다. 엄마의 언니가 아프다는데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달라는 거였다. 어른이 되면 이런 일로부터 졸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농인 부모 대신 전화를 걸어 궁금한 것을 묻고, 수어와 농인의 세계를 설명하는 일은 기한이 있는 것인 줄만 알았다. 농인 부모의 자녀를 일컫는 말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에게는 생애주기별로 겪게 되는 경험들이 있다. 수어와 음성언어를 동시에 접하게 되는 유아기, 부모와 함께 살며 전담 수어통역사이자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청소년 시기,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자신의 가족을 이루게 되는 청년기, 나이 들어가는 부모를 보살펴야 하는 장년기, 자신에게 수어와 농문화를 가르쳐준 부모를 여의게 되는 시기까지 연령, 인종, 민족, 국적,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직업, 장애 여부에 따라 비슷하고도 다른 코다의 경험이 존재한다. 코다가 지닌 다름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성이 되어 다채로움을 이룬다는 걸 코다 국제콘퍼런스에 참가했을 때 깨달았다.

청인 코다들이 설립한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코다 인터내셔널은 매년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한다. 세계 각국의 코다들이 모여 서로의 정체성과 경험을 나누는 행사다. 2023년 6월29일부터 7월2일까지 다음 콘퍼런스는 한국에서 열린다. 국내 최초의 코다 모임이자 대표를 맡고 있는 코다 코리아에서 아시아 대륙 최초로 콘퍼런스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23년은 코다 인터내셔널이 40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전세계 30여개 나라에서 300~400명 정도의 코다가 참석할 예정이다. 3박4일 동안 ‘컬러풀 코다’(Colorful CODA)라는 테마 아래 기조연설·폐막연설, 정체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소그룹 세션,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이 열린다. 2023년 7월에는 세계농인연맹 총회, 세계수어통역사협회 콘퍼런스, 세계농아청년캠프도 한국에서 개최된다. 그해 여름에는 어딜 가나 손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거리마다 손뼉을 부딪쳐 내는 박수 소리가 아닌, 두 팔을 들어 손을 반짝반짝 흔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넘쳐날 테다.

콘퍼런스를 주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 기쁨도 잠시, 이제는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코다 코리아를 정식 단체로 등록하며 조직의 역량을 키워내고, 콘퍼런스 준비위원회도 출범해야 한다. 이번 콘퍼런스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에 열리는 첫번째 콘퍼런스다. 비대면 콘퍼런스를 계획하고 있지만 이전처럼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대면과 비대면, 하이브리드 방식의 콘퍼런스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참가자들이 오가며 배출할 탄소도 고민이다. 지속가능한 콘퍼런스를 위한 상상력과 결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콘퍼런스인 만큼 더 많은 아시안 코다들이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 사정에 따라 항공료와 콘퍼런스 등록비를 부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누구든지 신청할 수 있는 장학금 제도를 마련하고, 정부·기업 및 시민사회와 연결하여 지원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어, 영어, 미국 수어, 국제 수어로 진행될 콘퍼런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전문 통역사와 자원봉사자도 필요하다. 숙원이었던 콘퍼런스 주최를 하게 되어 기쁘지만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이제 시작이다. ‘코다’라는 단어를 듣고 느꼈던 안도감과 소속감이 이곳까지 이끌었다. 더 많은 코다들이 모일 수 있는 시공간을 열어보겠다. 농사회와 청사회를 오가는 존재인 코다가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향유하는 축제를 만들겠다. 이는 한국 사회에 다양성을 더함과 동시에 당신과 나의 자리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여러분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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