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통신선 복원 '깜짝발표'에 얽힌 남·북·미 삼각관계

길윤형 2021. 7. 28. 1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4·27 3주년 기념한 남의 첫 친서로 물밀 접촉 시작
미 '싱가포르 공동선언' 인정하는 대북정책 내놓자
남의 대미 협상력 바라보는 북의 평가 달라졌을 듯
워킹그룹 종료 등 성과 이어지며 27일 발표 나와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27일 오후 군 관계자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활용해 시험통화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남북이 27일 “지닌 4월부터 정상 간의 여러 차례 친서 교환”을 통해 “그간 단절되었던 남북 간 통신 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했다”고 깜짝 발표하면서 지난 석달 간 이어진 물밑 교섭에서 어떤 논의가 진행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27~28일 발언과 <한겨레> 취재를 모아 보면, 이번 친서 교환이 시작된 것은 4월27일 ‘판문점 선언’ 3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면서부터였다. 북은 이 시기엔 남의 관계 개선 시도를 냉랭하게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 친서가 전해진 직후인 5월2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에서 탈북민들이 또다시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으며 “망동을 묵인한 남조선 당국의 그릇된 처사”를 맹렬히 비판하고, “우리가 어떤 결심과 행동을 하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이후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미 대화를 재개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려는 정부의 끈질긴 노력이 이어졌다. 이 무렵 초미의 관심사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뤄진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성과인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조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할지 여부였다. 다행히 5월 초를 지나며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 등 미 핵심 당국자들이 대북 정책의 목표를 싱가포르 공동선언에 기반한 ‘한반도 비핵화’라고 정의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김정은 위원장의 중요한 외교적 성취로 보고 있는 북 입장에선 이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대미 협상력을 재평가하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한겨레>에 ”문 대통령의 첫 친서에 북이 회신해 온 것은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이전이었다”고 말했다.

남북 모두의 기대대로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책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내용이 언급됐고, 한발 더 나아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도 명문화됐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대화를 우선시하며 남북의 독자적 접근을 강하게 견제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남북 관계의 독자성을 일정 정도 인정한 것이었다. 이에 화답하듯 김정은 위원장은 17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조선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온건한 대남·대미 메시지를 내놓게 된다. 정부는 그 직후인 6월21일 열린 한-미 북핵 수석대표 간 협의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 시절 남북 관계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정부가 남북 정상 간의 친서 교환이 10여 차례 이상 이뤄졌다고 밝혔으니, 한-미 간의 이런 협상 내용이 순차적으로 북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코로나19 팬더믹이 장기회되며 북한 내 식량과 방역 상황은 점점 악화돼 갔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첫째날인 6월15일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29일 열린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선 책임 간부들의 무능과 태만으로 국가비상 방역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을 발생시켰다”며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경질했다. 이 같은 북한 내 위기 상황이 ‘남북 관계를 개선해 간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을 재촉했을 수 있다. 7월로 접어들며 조용히 물밑 교섭을 이어온 남북은 27일 “북남관계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조선중앙통신 보도문)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통신선 복원이라는 성과를 내놓게 된다.

하지만, 이번 조처가 본격적인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 재개로 이어질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의 실시 여부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북-미 관계다. 김 위원장은 남북 관계는 개선해 나가는 쪽으로 확실히 갈피를 잡은 것으로 보이지만, 북-미 대화 재개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북-미 관계에 대한 북한의 마지막 언급은 “우리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리선권 외무상의 6월23일 담화였다. 미 정부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27일 남북 간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 “통신선 복원 소식을 알고 있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와 소통을 지지한다”고만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