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들 귀농서신] '어디 잘하나 보자'는 묘한 시선

한겨레 2021. 7. 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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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들 귀농서신]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시골에 와서 살려면 아는 체하지 마라, 있는 체하지 마라, 잘난 척하지 마라'였다고 해. 살아갈수록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나. 시골에 살아봐야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정서가 있어.

조금숙 | 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동네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동네 형님이 왜 도시에서 오는 사람들은 골짜기로만 들어가려는지 모르겠다고 지나가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일단 동네 안에는 들어갈 만한 집이 없다. 그렇다고 집을 지을 터가 있지도 않다. 그러니 이리저리 터를 찾아 안쪽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되는 거지. 거기에 더하자면 도시에서처럼 익명성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생각해. 누군가 본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게다가 지하철 안에서의 부대낌과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소음에서 벗어나 한적함과 안온함을 누리고 싶은 시골생활의 로망이 반영된 터잡기가 아닌가 싶다.

이곳의 정서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10년을 살았어도, 아니 60년을 사신 동네 할아버지조차도 외지인이라는 딱지를 달고 산단다. 우리 아로니아밭 뒤뜰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취밭이었는데 우리만 10년째 몰랐더란 말은 했었지? 그야말로 코앞에 두고도 10년을 모르고 지내 왔던 거지. 하기는 가을철이면 버섯을 따러 다니는데 그 장소는 다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10년 만에 알게 된 동네 비밀. 동네 사람은 다 알고 있어도 외지인에게는 이야기해주지 않는 사실을 알고는 그날 밤에 키득대며 웃었다. 한번은, 주민자치 노래교실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늘 모여 계시거든. 가끔씩 함께 노래 부르며 속 푸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 의견을 냈지. 그랬더니 한 동네 형님이 만들어 봐야 소용없다며 옛날에도 만들었지만 찾는 사람이 뜸해 두 달 만에 없어졌다는 거야. 그럼에도 노래교실은 만들어졌고 코로나로 마을회관이 문 닫기 전까지 할머니들의 즐거움이었단다. 과거에는 안 되던 일도 다시 시작해서 잘 운영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보여준 거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여기저기서 묘하게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배타적 시선을 많이 느낀다.

옥수수 농사를 시작했잖아. 일단 포트에 심어서 적당히 키운 다음에 밭에 정식을 하는 거란다. 씨앗을 넣고 열심히 물을 주고 기다려도 싹이 나오질 않는 거야. 마침 마실 오신 할머니한테 얘기했더니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낮아서 싹이 나오지 못하는 거라고 덮개를 씌우라고 하시더구나. 그렇게 키워서 정식을 했고 잘 자라고 있었지. 키가 훌쩍 커진 어느 날, 밭으로 가는 길에 할머니를 만났는데, 벌컥 소리를 지르시는 거야. 옥수수 순지르기를 안 하느냐고. 몰랐다고 하니까, 남들 하는 것도 안 보느냐며 성을 내시더라고. 그때, 생각을 했어. ‘아, 이웃이 어떻게 하는지 늘 살피면서 농사도 지어야 하는구나. 누군가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 가르쳐주지 않아도, 동네일 도와가며 어깨너머로 배워가야 하는구나.’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서 농사를 지으며 이뤄왔던 두레 문화의 영향은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시골의 정서지. 누가 얼마나 동네일에 함께하고, 누구네 밭이 농사가 잘되고, 누구는 풀도 베어주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이 시골의 정서구나 싶다.

얼마 전에 우연히 함께 자리하게 된 분이 자신이 교육받은 이야기를 해주더라.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시골에 와서 살려면 아는 체하지 마라, 있는 체하지 마라, 잘난 척하지 마라’였다고 해. 살아갈수록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나. 시골에 살아봐야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정서가 있어. 그 정서로 인해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하게 될 때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게 될 때가 있단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없다지만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이나 변할지는 모르는 일이지.

시골에 가고자 함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바늘처럼 촘촘히 박힌 고정된 시선을 뛰어넘는 선택이다. 몸은 시골에 살지만 도시생활의 동경을 아직 놓지 못하는 두 얼굴인가 하는 생각을 얼핏 하며 자칫 이중적인 모습이 될까 봐 에둘러 넌지시 말해야 했어. 아직도 그렇다. 엄마는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기회가 적었다고 생각해. 어쩔 수 없어서, 주위의 권유에 등 떠밀려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이기에 가야 했던 많은 순간에 매번 망설였단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었지. 잘하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일상의 삶에 자신감을 주는 중요한 기점이란 것을 깨닫는다.

너에겐 시골에 가고자 하는 간절하게 원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늠해보고 있으니 말리는 일이 무색해졌다. 아들의 인생에 관여하고자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부끄럽기까지 하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일상이 즐거울 수 있겠다고 자꾸 주문을 건다. 떠밀려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삶이라 해도 의욕과 결과는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은 꼭 유념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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