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대안'학교 제 이름 되찾기

한겨레 2021. 7. 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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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대안이란 현재 겪는 어려움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책까지 내놓는 일을 포함한다. 뾰족한 대안을 제시 못 하면 현재의 한계를 견디며 지내야 한다. 대안경제, 대안사회, 심지어 ‘얼터너티브 록’의 출현에서 감지하듯이 대중음악에서까지 우리는 뭔가 근사하면서도 또 다른 신세계를 꿈꾼다.

그럼에도 ‘대안’이 ‘교육’과 결합하는 순간 부정적 인상이 짙어진다. 각급 시·도교육청이 지역사회에 공립 대안학교 설립계획을 발표했을 때 주민들이 ‘혐오시설’을 입주시키지 말라며 반대하여 시행을 가로막았던 사건들을 나는 여러 건 기억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오늘날 보편 공교육이 채택하고 있는 여러 특징들은 과거 서구 사회의 대안학교에서 ‘선진적 실험’을 거쳐 받아들인 방식이었다. 남녀공학, 15명 이내 학급 편성, 체벌 금지, 프로젝트 중심 학습, 아동의 흥미와 선택 존중 같은 요소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처럼 대안학교는 인간의 본성, 학습 방식, 평등주의, 민주주의와 자치 능력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현장에서 실행했고, 그 교육적 실현 가능성을 입증해왔다.

우리나라 어른들, 특히 교육계가 크게 책임질 일이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그것이다. 2014년 이래로 5년 사이 자살 시도 청소년은 3만4552명이고, 이 가운데 무려 3748명이 사망했다. 하루 평균 청소년 2.6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다. 2020년 기준 산업재해 사고 사망은 882명으로 하루 평균 2.4명이다. 노동자의 산재사건은 잠시지만 사회 이슈가 되고, 노조에서 항의 성명서 한 장이라도 발표하지만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흐느낌’의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많은 대안학교들이 공교육 체제에 속한 일반 학교에서 보살피기 어려운 학생들을 묵묵히 뒷바라지해왔다. 탈북청소년, 경계선 학습장애인, 우울증이나 자폐증, 혹은 틱 장애를 안고 있는 아이들, 학업 중단 위기 청소년들을 보듬어온 것이다. 참 이상하다. 공공 영역에서 더 두텁고 세심하게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들을 왜 한 장소에 모아두고 ‘대안’이란 이름을 붙인 학교가 집중 위탁을 떠맡는가?

교육당국은 거의 대부분의 공립 대안학교에 교사가 일대일로 돌보기에도 힘든 아이들을 수십명씩 모아서 ‘관리’해왔다. 정규분포곡선의 오른쪽 끝자락 5% 안에 들어야 성공적이라 믿는 학업 경쟁 체제의 어두운 모습이다. 시스템 효율성을 방해하는 아이들은 따로 모아두어야 한다. 중간고사 보는 날 “저 오늘 ‘방석’하러 가요. 제가 9등급 ‘깔아줘야’ 공부 잘하는 애들이 빛나죠” 하고 자조 섞인 말 던지는 아이를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라. 너무 일찍 날개 꺾인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줄 말 고르기란 쉽지 않다.

공교육은 혁신학교를 기획하고 실행할 때 국내의 대표적 비인가 대안학교 사례들을 참조하거나 가져다 썼다. 지난 2년 사이 나는 미래학교 관련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찾아오는 교육연구기관이나 교육청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그런데도 가난해서 곧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을 견뎌온 비인가 대안학교들에 배정하는 지원금은 너무 빈약하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 비인가 대안학교 한 곳당 연평균 370만원을 지원했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초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이 땅에 제대로 된 교육 한번 해보겠다고 나선 교육실천가들에게 공교육은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인가 대안학교는 이 땅에 말 없는 그림자로서 필요할 때만 잠시 그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최근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는데, 올해 안에 시행령을 확정하면 내년 1월부터 발효된다. 이 법이 담고 있는 핵심 특징은 비인가 대안학교들이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교육기관으로서 ‘등록’할 수 있도록 그 경로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획일적인 공교육 체제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적합한 다양한 교육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교육받을 권리를 더 풍요롭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단, 그러한 선택권이 경제적·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계층에만 한정되지 않도록 국가와 지방정부는 공공성을 실현하는 비인가 대안교육기관에 균형을 맞춰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개별 대안학교는 ‘변형된 형태의 학원’으로 변모되지 않도록 스스로 공공성과 책임성, 전문성을 갖춰 운영하는 자세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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