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 만에 남북 통신선 복원.. 북·미 대화 이어지나
靑 "남북정상 4월부터 친서교환"
수차례 물밑조율 거쳐 동시 발표
꽉 막혔던 한반도정세 변화 주목
8월 한·미연합훈련 변수 될 듯
文정부, 2022년 대선 전에 성과 필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총력
DMZ내 전사자 유해 공동 발굴 등
군사합의 미이행 조치들 논의할 듯
北 대면접촉 꺼려 화상회의 등 추진
中 "남북, 대화로 관계 개선 지지"
413일 만에 남북 통화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27일 통일부 연락대표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서울사무실에서 직통전화로 북한 측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기계실에 남북의 통화상태 확인을 위한 대화가 짧게 이어졌다. 북한 측은 먼저 전화를 걸어 우리 측과 대화를 주고받은 뒤, “시험 팩스를 보내겠습니다”며 시험용 팩스를 전송했다. 우리 측도 같은 방식으로 팩스를 보냈다.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이용한 남북 통신 접선이었다. 기계 점검을 거쳐 오전 11시4분부터는 남북한의 연락대표부 사이에 3분 통화가 이뤄졌다. 오후 4시에도 군 통신선으로 통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6월 9일 북한이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판문점 채널을 비롯한 양측의 4개 통신선을 모두 끊은 지 1년 1개월, 413일 만에 이뤄진 남북 사이의 통신이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긴급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정상 사이의 직통라인이 아닌 통일부와 군에서 운영하던 남북 통신선이 우선 복원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판문점선언 3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교환한 뒤 7월까지 여러 차례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 사실이 공개된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과거에도 우리 측의 2016년 2월 개성공단 운영 중단을 계기로 중단된 남북 통신선이 2018년 1월 복구된 것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정세 변화의 신호탄이 됐다.
통신선 복원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 상황, 미국 행정부 교체와 북·미 관계 새 국면, 북한 내부의 심화되는 위기 등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얼마 남지 않은 임기는 남북 모두에게 경각심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대표적 치적으로 삼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외교·안보 라인을 전면 북한과의 대화 복원에 초점을 맞춘 인사들로 개편하며 공을 들였다. 그간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남북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보여왔는데, ‘한반도의 봄’ 재현으로 지지율이 상승하면 여권의 차기 집권에 긍정적 변수다.
북한으로서도 남측 대선 정국에서 문재인정부의 지지율 상승은 나쁜 카드가 아니다. 또 김 위원장이 6월 전원회의 이후 한반도 주변 정세를 활용하고, 미국과 대화와 대결 모두 준비하겠다고 한 점에 비춰서도 남북 관계 복원은 이점이 많다. 미국 행정부가 바뀌고 대북정책이 외부로 발표되는 과정에서 싱가포르 합의와 판문점선언 계승 등 한국 정부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 측 메시지가 문 대통령을 통해 (북한에)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해 북한과의 대화 재개 의지를 밝힌 직후 이번 조치가 나왔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년 가까이 고립되면서 심화된 북한의 내부 위기도 일부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된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통신선 복원 그 자체가 대화 재개는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으로선 한반도 문제 관리가 한·미 공조 위주로 고착화되는 상황을 견제하는 포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선 연결은 8월 한·미 연합훈련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군통신선 복구로 9·19 군사합의가 복원되면 상징적 의미에서라도 연합훈련으로 북한과 날을 세우기가 어렵다. 통신선 단절 당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에 대한 북측의 사과나 입장 표명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대남 관계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연락 채널 차단과 복구를 반복해 왔다. 한반도 긴장이 필요한 시기에는 통신연락선을 끊었고,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있을 때는 복원을 했다. 13개월여 만에 이뤄진 이번 채널 복원도 남북관계에 대화 국면을 가져올 개연성이 작지 않다. 회담 등 양측 접촉이나 협의가 이어질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협력 등 남측이 제안했으나 북측의 호응이 없었던 사업이 진척을 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남북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라는 관점에서 많은 합의를 했는데 연락이 단절되면서 이 같은 국면이 1년여가 지났다”며 “통신선이 복원되면서 합의를 이행할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상황과 대북 제재 등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대화나 교류 협력은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 지원을 하기도 어렵다. 연락 채널 복원은 할 수 있지만 대화와 교류로 연결되기에는 제한이 많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논의한 바 없다”는 입장이지만 화상을 통한 비대면 정상회담 등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내년 대선을 앞둔 문재인정부가 남북관계 개선→북·미 대화→비핵화 협상 촉진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되살리려면 남북 정상 간 만남이 필수다. 청와대 관계자가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 회담과 비핵화 협상을 조기에 진척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연락채널 복원이 남북 간 화상 정상회담 개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남북 대화 재개로 북·미 대화 재개에 기여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한계가 있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이익을 고려하는 절충점을 중국과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와 군 안팎에서는 9·19 군사합의 추가 이행 논의가 남북 대화 재개를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높은 수준의 코로나19 방역체계를 유지하는 북한이 인도적 협력 등에 당장 나서기는 어렵다”며 “단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게 9·19 군사합의”라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화상으로 개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여야 정치권은 27일 남북통신연락선이 복원되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여권은 일제히 “경색됐던 한반도 관계에 청신호가 켜졌다”며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라고 치켜세웠다. 반면 국민의힘은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사건 등에 대한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가뭄 깊은 대지에 소나기 소리처럼 시원한 소식”이라며 “북한과 직접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경선후보는 “남북 양 정상이 친서 교환을 통해 이뤄낸 소중한 결실”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능동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낙연 후보도 “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 남북관계에 또다른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며 환영했다. 이외에도 “대통령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정세균 후보), “온 겨레와 함께 환영한다”(추미애 후보), “(남북이) ‘사이좋은 이웃’으로 나아가자”(박용진 후보), “통 크게 합의해 주신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김두관 후보) 등 여권 대선 후보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반면 야권은 남북관계 개선에 앞선 북한의 사과를 요구했다.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사건 등 북한의 만행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도 “지난날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대한민국 공무원 피살 등 비인도적 처사에 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이번 합의가 1회용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지속성이 보장될 때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군 통신선 복구는) 위기가 찾아올 때면 쓰는 북한 치트키”라며 “이런 식으로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서 쇼만 하는 것은 오히려 남북관계를 망치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홍주형, 이도형, 박수찬, 구윤모 기자,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김병관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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