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함성, 도쿄의 침묵… 코로나 노이로제가 갈랐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2021. 7. 2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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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축구 유로 결승 열렸던 런던, 6만여명 팬 경기장서 환호
도쿄 올림픽은 무관중 진행
日, 확진자 수 英보다 적지만 온 사회가 코로나 공포 빠져
‘방역 성공’의 본질 돌아봐야
7월 11일 유로2020 결승전이 열린 영국 런던 웸블리 구장과 7월 22일 일본과 남아공의 올림픽 축구 예선이 열린 도쿄스타디움 모습. 웸블리 구장은 마스크를 벗은 관중들이 꽉찬 반면, 도쿄 스타디움은 무관중 경기로 관중석이 텅 비어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코리아 파이팅!” 17세 소년 궁사 김제덕 선수의 포효가 온 국민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그런데 김제덕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렸던 걸까? 관중석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기가 치러지는 도쿄 지역에는 현재 가장 높은 방역 단계인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된 상태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환호해야 할 관중 대신 그저 관계자나 소수의 관객만 앉아 있다.

텅 빈 것은 경기장 관중석뿐만 아니다. 올림픽을 향한 일본 국민들의 열정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 지난 16일과 17일 아사히신문이 수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여름에 올림픽을 치러야 한다는 응답자는 조사 대상자 중 34%에 지나지 않았다. 32%는 취소, 30%는 재연기를 요구했다. 마이니치신문이 19일 공개한 여론조사 역시 부정적 응답이 42%나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여론이 올림픽에 부정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83%가 올림픽으로 인한 코로나 확산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올림픽을 안전하게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64%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올림픽을 덮어버린 셈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보면 어떨까? 현지 시각으로 지난 7월 11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유로 2020 결승전을 떠올려보자. 당시 영국은 하루 확진자가 1만명 이상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유로 2020은 유럽 각지에서 유관중으로 치러졌다. 4강전과 결승전은 웸블리의 전체 좌석 중 75%에 해당하는 6만여 명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됐다. 웸블리에는 즐겁고 시끄럽고 북적거리며 함성을 질러대던 코로나 이전 세상이 있었다.

확진자, 사망자, GDP의 변화 등 객관적인 숫자만 놓고 보면 일본은 영국보다 코로나를 잘 막아내고 있다. 심지어 백신 접종률도 일본이 영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지난 7월 8일 영국 공공보건청에서 발표한 주간 보고서에 따르면 2차 접종 완료를 기준으로 할 때 영국의 백신 접종률은 45.5%이며 65세 이상 고령·고위험군은 90% 이상 접종을 완료했다. 덕분에 확진자가 만명 단위지만 치명률은 계절성 독감과 유사한 0.1%대에 머문다. 일본은 올림픽을 앞두고 백신 접종에 박차를 가해 2차 접종 완료 기준 25%까지 끌어올렸다. 영국처럼 고령·고위험군에 우선 접종하면서 추세를 이어나간다면 코로나의 고삐를 틀어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런던에서 들려온 함성이 도쿄로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 문제는 코로나 그 자체가 아니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일본 국민 상당수가 ‘코로나 노이로제’에 걸려버린 탓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코로나에 걸리거나 옮기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매우 강하다. 정부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를 국민들이 대신 끌어안고 서로에게 전가하고 있다. 일본 국민의 코로나 경각심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 셈이다.

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코로나 노이로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일본에서 지난 7월 3일 발생한 사건은 그 노이로제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검은 마스크를 쓴 53세의 여성이 성화 봉송 주자에게 물총을 쏘며 “올림픽 반대, 올림픽 그만두라”고 외친 것이다. 적잖은 일본인은 올림픽을 긍정적 이벤트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 외국인들이 몰려와서 병 옮기는 체육 대회쯤으로 여기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일본은 영국보다 코로나 방역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경기장에서 축구를 보며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하나가 되는 즐거움을 누린 반면, 일본인들은 57년 만에 자국에서 치르는 올림픽을 편하게 즐기지 못한다. 확진자 숫자만 바라보며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대체 무엇을 위한 ‘방역 성공’이란 말인가.

방역의 목적은 건강이다. 건강의 목적은 행복한 삶이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방역, 노이로제에 빠지게 만드는 방역은, 아무리 확진자 숫자가 적고 GDP가 건재해도 성공이라 볼 수 없다. 런던은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였다. 도쿄는 침묵 속에 올림픽을 치르고 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두 도시 중 어느 쪽이 더 살맛 나는 곳일까? 우리의 방역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게 된 지 1년도 더 된 지금, 본질적인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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