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대화 재개 물꼬..미국 반응 주목
[경향신문]
대북제재·연락사무소 폭파 책임과 한·미 훈련 등 변수
코로나와 관련된 남북협력이 현실적 후속조치로 유력
북, 남북관계 바꿔놓고 미국의 대화 제의에 답할 수도
남북이 27일 통신선을 13개월여 만에 전격 복원함으로써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사실상 단절 상태에 빠졌던 남북관계에 변화를 예고했다. 남북이 이날 정상 간 친서 교환 사실을 공개하며 ‘조율된 내용’의 발표를 내놓은 것은 그동안 물밑 소통이 지속적으로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잔여 임기 동안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나 진전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국경 폐쇄가 이어지고 있고 대북 제재, 미국과의 조율 등 장애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는 변화의 계기가 분명해 보인다. 특히 북한의 태도에 따라 남북관계 진전 속도는 물론 북·미 대화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
■ 군사적 긴장 완화 의미
북한은 지난해 6월 대북전단 살포를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모든 남북통신선을 차단한 뒤 곧바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통신선은 남북의 소규모·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소통 창구다. 북한의 통신선 차단은 앞으로 충돌이 일어나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대남 위협이었다.
따라서 이번 통신선 복원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와 함께 다양한 채널을 통한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오전 10시 군 통신선이 정상화되고 판문점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설치된 남북 직통 전화가 연결됐다. 통일부는 “이전처럼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5시 하루 2차례 정기통화를 할 것을 제안했고 북측도 호응했다”고 밝혔다.
■ 남북 간 후속 조치 및 전망
남북은 이번 조치가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 모두 관계 진전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행동적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에 취약한 북한은 국경을 닫아놓은 상태이고 촘촘한 대북 제재도 엄존하고 있어 남북이 직접 접촉하거나 공동사업에 착수하는 것은 어렵다.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책임 문제도 관계 진전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설명하고 재발 방지, 연락사무소 기능 부활 등을 약속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진전은 국내 여론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남북이 소통 채널을 열어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쉬운 상황 관리 방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남북협력도 후속 조치로 유력하다. 북한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면서 대북 제재에 저촉받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8월 한·미 군사훈련 규모 조정도 남북관계 분위기 변화에 중요한 변수다.
■ 북·미 대화로 이어질까
북한의 태도 변화는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남측을 배제하고 조 바이든 정부와 거래하는 것이 용이하지도, 유리하지도 않다는 판단에 따라 먼저 남북관계 분위기를 바꿔놓고 그다음 수순으로 미국의 대화 제의에 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 이후 한·미 간 협력과 이해가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정부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합의, 남북 대화 등에 대한 지지를 명시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지난달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방한 때는 한·미 워킹그룹 재편을 시도했다. 지난 4월부터 남북 정상이 수차례 친서를 주고받은 만큼, 모두 북한과의 물밑 접촉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상세한 설명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국이 이번 남북 간 합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 전직 관료 출신 전문가는 “미국은 남북 대화 진전을 환영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대화 필요성을 약화시킬 정도의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과의 소통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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