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경쟁 지나쳤나 .. 나라망신 자초한 MBC의 무리수

조성민 2021. 7. 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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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 그래픽·자막 파문 확산
체르노빌 원전·양귀비 사진 등
도쿄올림픽 개회식 '방송 참사'
"韓 입장 땐 세월호 사진 썼어야"
국내외 네티즌·외신 비판 쇄도
외교적 결례로 비칠 가능성 커
방심위 "소위 구성 땐 심의예정"
MBC는 23일 개회식 중계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 입장 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진을 올리는 등 부적절한 자막과 그래픽을 사용하는 실수를 범했다.
2020 도쿄올림픽이 시작되면서 지상파 3사의 ‘중계경쟁’도 불이 붙었다. 개회식 등 초반 시작은 KBS가 앞섰다.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코리아 집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개회식 중계방송에서 KBS 1TV는 전국 기준 8.4%의 시청률로 1위에 올랐다. SBS와 MBC는 각각 4.8%와 4%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이 첫 금메달을 획득한 24일 양궁 혼성 단체전 결승 중계에서도 KBS가 6%로 선두였다.

이후 SBS가 주요 종목 중계에서 시청률 1위로 선전하는 등 3사는 경쟁을 이어갔다. SBS는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 중계에서 시청률 9.5%로 2위 MBC(7.0%), 3위 KBS2(5.4%)를 제쳤다. 안창림이 출전한 유도 동메달 결정전 역시 SBS가 8.6%로 앞서나갔다. 황선우가 출전한 수영 중계에서도 SBS가 우세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축제인 만큼 지상파 3사는 도쿄올림픽 개막에 앞서 스타 선수 출신 등 ‘초호화’ 해설진을 확보하는 데 열을 올렸다. KBS에선 박찬호, 조원희, 여홍철, 한유미, 기보배 등이 나섰고 MBC에선 안정환, 허구연, 장혜진, 남현희, 유남규 등 각 종목의 베테랑들이 이름을 올렸다. 반면 SBS는 이승엽, 최용수, 이용대 등 레전드 플레이어들을 포함해 이보미, 정유인 등 현역 선수들을 합류시켜 이목을 끌었다.

◆네티즌들 “정말 창피하다·나라 망신”

중계경쟁이 지나쳤을까. 올림픽 중계 시작부터 MBC는 부적절한 자막과 그래픽을 사용하는 실수를 범했다.

MBC는 23일 개회식 중계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 입장 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진을 올렸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현재까지도 고통받는 사건이자 전 인류에 상처를 입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일리야 벨랴코프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 넣지, 왜 안 넣었나”라고 비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티 선수단 소개에서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위 사진을 삽입했다. 앞서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은 이달 초 자택에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를 설명할 때는 비트코인 사진을 넣었다.

아프가니스탄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양귀비 운반 사진이 등장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마약 재료인 양귀비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팔레스타인 소개 사진은 국가적 분쟁의 상징인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을 사용했다. 시리아는 “10년간 계속된 내전”이라고 소개했다. 또 노르웨이 대표 사진으로는 연어, 이탈리아는 피자, 일본은 초밥을 소개 사진으로 썼다. 네티즌은 “부적절하고 성의 없다”며 비난했다.

주요 외신들 역시 비판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은 “희망과 전통, 다양성을 주제로 삼은 개회식의 취지가 무색하게 (한국의 MBC에서) 공격적인 사진과 설명을 실었다가 온라인상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시리아의 경우 풍부한 문화와 유적지에 집중하기보다는 ‘10년 동안 계속된 내전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MBC는 24일과 25일 “당사국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크게 부족했고, 검수 과정도 부실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연달아 사과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MBC는 25일 남자 축구 조별리그 B조 2차전 한국과 루마니아 간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상대 선수를 겨냥해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화면 상단에 노출하는 등 연이어 무례를 저질렀다. 그런데도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해당 경기 중계의 승자는 MBC였다. MBC는 13.9%로 KBS(10.8%), SBS(8.3%)를 제쳤다.

MBC 박성제 사장은 26일 마포구 상암동 MBC 경영센터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신중하지 못한 방송, 참가국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방송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해당 국가 국민들과 실망하신 시청자들께 MBC 콘텐츠 최고 책임자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허리를 굽혔다. 박 사장은 확실한 책임 소재를 찾고 대대적인 쇄신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일각에서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한 조직개편, 제작 기능의 자회사 이관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방심위 “기준에 따라 심의 예정”

해당 사안은 외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하고 있으며 문제 장면들은 외교적 결례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연합뉴스에 “대한민국이 그동안 대외적으로 호감 있는 국가로 인식됐는데 그걸 상당히 까먹은 측면이 있다. 보통 문제는 아니다”라며 “다만 정부가 검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방송사가 전적으로 변명의 여지 없이 사과하는 것 외에 정부가 개입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MBC는 26일 주한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대사관에 사과 서한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격을 떨어트린 이번 일을 두고 여론은 MBC에 고강도 제재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26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MBC 건은 검토 중이며 소위원회가 구성되면 심의기준에 따라서 심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방심위는 지난 1월 말 4기 위원들의 임기가 만료된 이후 약 6개월째 구성되지 못하다가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과 이상휘 세명대 교수를 5기 방심위원으로 추천하면서 구성을 완료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23일 정연주 전 KBS 사장 등 7인을 방심위원으로 위촉했다.

올림픽 중계에서 MBC가 자막 등으로 물의를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MBC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일부 국가에 비하 자막을 사용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당시 MBC는 개회식 중계에서 카리브해의 케이맨제도를 소개하며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조세회피지로 유명’, 차드는 ‘아프리카의 죽음 심장’, 짐바브웨는 ‘살인적 인플레이션’ 등 부정적인 자막으로 올림픽정신은 물론 해당 국가에 모욕을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사안에 방심위는 같은 해 9월 법정제재인 ‘주의’를 내렸다. 프로그램 법정제재는 매년 방심위가 실시하는 방송평가 보고서에 반영되며 이는 3년마다 실시하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에 자료로 쓰인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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