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개회선언중 급히 일어난 스가, 비판론 이어지자 조직위 해명 [도쿄올림픽]
[스포츠경향]
도쿄 신주쿠(新宿) 국립경기장에서 무관중으로 열린 2020도쿄올림픽 개회식이 끝나갈 무렵인 지난 23일 오후 11시 넘어서 귀빈들이 모여 있던 식장 단상에서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일본 헌법이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국가원수 자격으로 “나는 이곳에서 제32회 근대 올림피아드를 기념하는, 도쿄대회의 개회를 선언한다”고 올림픽 개막을 선포하던 중에 자리에 앉아 있던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都) 지사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차례로 황급하게 기립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이 장면은 일본 인터넷 공간에서 올림픽을 강행한 주역으로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스가 총리와 고이케 지사를 향한 비판론을 더 키웠다.
중간에 급히 일어서긴 했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일왕이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어렵사리 성사된 올림픽 개회를 선언하는 모습을 총리와 개최도시 지사가 앉아서 지켜보는 것이 도리나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열도 온라인 상에선 스가 총리와 고이케 지사를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SNS 공간에서 스가 총리 ‘저격수’를 자임하고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가 개회식이 끝난 뒤 이를 문제 삼아 스가 총리와 고이케 지사를 비판하는 트윗 글을 개시해 논란을 더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천황폐하’(일왕)가 마음에도 없는 올림픽 개회 선언을 했는데, 옆에 있던 스가 총리와 고이케 지사는 도중까지 일어나지 않고 앉은 채로 듣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줬다”며 “그들은 천황을 (자신들의)형편에 맞게 이용하는 일에는 뛰어나지만 천황을 존숭하는 마음은 전혀 없는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지난 6월 올림픽 개최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뜻을 왕실 전담 기관인 궁내청 장관을 통해 내비치는 등 올림픽 개최에 소극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회 선언문에선 코로나19 상황을 반영해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사용했던 ‘축하’ 표현을 대체해 ‘기념’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런 배경을 깔고 이번 올림픽 개최에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보이지 않아온 나루히토 일왕을 스가 총리와 고이케 지사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적절한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트윗 글로 일갈한 셈이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대회 조직위원회의 다카야 마사노리(高谷正哲) 대변인이 27일 진행상의 잘못이었다고 조직위 차원에서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카야 대변인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환영사를 마치면서 갑자기 나루히토 일왕에게 개회 선언을 요청해 진행자가 장내 방송으로 사전에 예정된 기립 요청 타이밍을 놓쳐 혼란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바흐 위원장 환영사가 끝나고 진행자를 거쳐 나루히토 일왕의 개회 선언으로 가는 게 정상적인 식순이었는데, 그 순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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