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무력증' 오이팩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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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눈이 6개와 4개씩 달린 두 남자의 초상화가 다가온다.
지난 8일부터 서울 평창동 누크갤러리에 차려진 중견작가 김지원씨의 신작전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출품작들은 눈이 여럿 달린 두 남자의 상이다.
팬데믹 무력증에 시달리던 작가는 올 초 작업실에서 과거 이국땅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그렸던 일상 속 자신의 단편을 발견하곤 눈이 여럿 달린 오이 팩 자화상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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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눈이 6개와 4개씩 달린 두 남자의 초상화가 다가온다. 오이 팩을 얼굴에 잔뜩 붙이고 눈들을 멀뚱멀뚱 뜬 그림 속 남자들의 정체는 뭘까?
지난 8일부터 서울 평창동 누크갤러리에 차려진 중견작가 김지원씨의 신작전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출품작들은 눈이 여럿 달린 두 남자의 상이다. 전시장 안쪽 벽에서 관객들을 지긋이 지켜보는 이 기괴한 초상화들은 정밀한 묘사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곡선을 그리는 얼굴의 윤곽선에 서늘한 표정으로 여러개 겹눈을 뜨고 전방을 바라본다. 러시아나 비잔틴제국의 이콘화(성상화) 도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초상을 한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미지의 실체가 작가의 자화상임을 깨닫게 된다. 답답하고 지루한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들을 무심한 듯 버티며 지탱해가는 그의 속내인 것이다.
감상에 재미를 더해주는 건 두 남자의 초상 측면에 붙은 구작 한점이다. 1994년 독일 유학 시절 오이 팩을 한 작가의 자화상 소품인데, 작품 속 얼굴은 전시장 정면의 두 작품과 달리 멀쩡한 사람이고 사실적 묘사로 처리돼 색다르게 대비된다. 팬데믹 무력증에 시달리던 작가는 올 초 작업실에서 과거 이국땅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그렸던 일상 속 자신의 단편을 발견하곤 눈이 여럿 달린 오이 팩 자화상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과거의 내가 지금 시공을 초월해 딴사람처럼 찾아왔다”고 그는 말한다.
초상화 말고도 광화문 앞 해치상과 탁자 위의 해골 모형, 병상의 부친과 처남의 모습, 서울 삼청동~성북동 계곡길의 풍경 등을 담은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30여점이 나왔다. 비대면의 시기에 더욱 민감하게 다가오거나 소박한 위안과 성찰의 기회를 주었던 순간들과 함께했던 이미지들이라고 한다. 17세기 식기와 음식 등을 담은 정물 이미지로 인간의 탐욕과 인생의 덧없음을 드러냈던 네덜란드 대가들의 ‘바니타스’ 그림처럼, 관객마다 다르게 해석될 법한 기호와 상징들이 들어찬 신작들은 전염병의 시대에 죽음과 시간의 의미를 숙고하게 한다. 30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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