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치드: 악령의 저주 [시네프리뷰]

2021. 7. 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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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지만 익숙한, 그러나 훌륭한 공포영화
[주간경향]

세상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세공포는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아르바이트 동료 멜에 의해 보완된다.


제목 더 레치드: 악령의 저주 (The Wretched)
제작연도 2019년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5분
장르 판타지, 공포
감독 브렛 피어스, 드류 T. 피어스
출연 존-폴 하워드, 제이미슨 존스, 아지 테스파이, 케빈 비글리
개봉 2012년 7월 21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어, 내가 신청한 영화가 디즈니영화였던가. 알다시피, 오늘날의 디즈니는 과거 미키마우스나 백설 공주와 같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회사가 아니다. 공포영화도 만든다.

단, 법칙이 있다. 하이틴 호러영화라고 하더라도 귀결되는 건 가족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보수적 가치관으로 선회한다. 이혼이 진행되는 가정의 17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영화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전형적인 디즈니적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브렛 피어스와 드류 T. 피어스 형제가 만든 독립공포영화다. 영화는 35년 전 과거 회상으로 시작하는데, 영화 전체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이나 촬영기법이 딱 80년대스럽다. 진부하지만 익숙하다.

80년대스러운 공포영화

35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보여주고 영화는 ‘5일 전’으로 건너뛴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청소년 벤은 아버지가 일하는 패밀리 마리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옆집에는 실리콘밸리에서 엑시트한 너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데, 이들 부부는 딜런이라는 꼬마와 갓난아기까지 4인 가족이었다.

사건은 옆집 부인 애비가 차로 치어죽인 사슴을 가지고 오면서 시작한다. 야생생활을 은밀히 동경한 그는 유튜브로 본 사슴고기 해체법을 따라 칼을 들고 해체를 시도하는데 현실은 확실히 다른 법이다. 결국 포기하고 방치한 사슴고기 안에서 무언가가 나와 그의 집으로 스며든다.

벤이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그 낯선 존재(괴물)는 다크 머더(dark mother)라고 불리는 숲속 마녀다. 이 괴물은 사람(주로 여자)의 몸을 탈취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 괴물이 주술을 걸면 다른 가족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쌍안경으로 옆집 부부의 잠자리를 관찰하던 벤이 아이들의 실종을 눈치채고 911에 신고까지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경찰과 벤의 아버지는 그가 마약을 했다고 의심까지 하게 된다. 패밀리 마리나에서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멜의 동생 릴리까지 실종되면서 결국 사태가 벌어졌지만, 아무것도 못 했다는 벤의 신경쇠약은 극에 달한다.

앞서 ‘진부하지만 익숙하다’는 인상을 남겼지만, 뜯어보면 영화의 이야기나 캐릭터 구축은 상당히 탄탄하다.

영화를 보며 내내 흥미로웠던 지점은 어린아이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성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질풍노도의 시간’을 겪고 있는 17세 청소년이 겪고 있는 원초적 공포(아버지가 새로운 여자를 사귐으로써 어머니와 혈연으로 엮여 있는 자신을 배제하려 한다는)를 영화가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세공포는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아르바이트 동료 멜에 의해 보완된다. 즉 공간적인 어머니의 부재를 멜이라는 동년배가 대신한다. 이웃의 힙한 가족은 이미 실패 코스를 밟고 있는 벤의 가족에 대한 투사(projection)다.

의외로 탄탄한 이야기·캐릭터 구축

영화의 절정부에서 마녀에게 빙의된 아빠의 여자친구 사라는 아들을 걱정하며 찾아가려는 그를 가로막고 자신과 아들 중 하나를 양자택일하라고 요구한다. 아버지의 선택은 아들이었다. 이 아버지의 선택은 누구의 욕망이었을까. 아들 벤이다.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여전히 유아적 심리적 외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지만, 가정이 깨지는 것을 누구보다 두려워하는 건 벤이었다.

뭐, 이런 건 비평이나 해석의 영역이고 그래도 공포영화인데 영화는 무서울까. 앞서도 언급했지만, 영화는 전형적인 장르적 규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마침내 벤이 숲속으로 동생을 구하러갈 때 여자친구 멜이 동행한다. 우리는 벤이 자신의 동생을 구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멜이 그 구출과정에 동참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을 얻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막판의 작은 반전조차 공포영화들에서 널리 사용돼온 기믹이었다.

역설적으로 무서움을 타는 사람들은 순수한 사람들이다. 세상사 경험이 없는 어린아이들이거나. 선 넘는 야한 장면은 없으면서도 가족적 교훈으로 회귀하는 훌륭한 청소년용 공포영화다. 하이틴이 주인공이면서도 선을 한참 넘어 괴물의 벌을 받는 슬래셔 영화들 같은 걸 기대하지만 않았다면.

숲속 마녀를 다룬 기념비적 영화 〈이블 데드〉

경향자료


영화는 전형적인 숲속 마녀(witch-in-the wood)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비록 결손된 가정이지만 남자들은 합심해 이 숲속 마녀의 반란을 마침내 봉쇄한다. 그러나 남성 가부장주의를 본질로 하는 근대의 그늘에서 비합리, 전근대적인 것으로 배척되는 미신이나 괴물과 같은 존재는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부활한다. 공포영화의 역사에서 이 ‘숲속 마녀’를 다룬 영화 중 기념비적 영화는 역시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 데드〉(1981)다. 오두막에 놀러온 남녀들이 실수로 읊은 주문으로 깨어난 숲속 악령이 젊은이들을 습격하고, 제일 먼저 희생되는 건 주인공 애시의 여동생이다. 애시 등은 괴물로 변한 여동생을 지하실에 감금하는데, 심야에 이를수록 힘을 키운 이 괴물은 공중부양하면서 저주 섞인 예언을 내놓는다. “동트기 전까지 너희들은 뒈질 거야!” 그리고 벌어지는 피 칠갑의 향연.

〈이블 데드〉는 샘 레이미 감독이 1978년에 제작한 단편 공포영화 〈숲속에서〉(within the woods)의 아이디어를 확장한 것이다. 심지어 〈이블 데드〉 시리즈의 주인공 애시를 맡은 브루스 캠벨은 이 단편영화에서도 주연을 맡고 있다. 독립 호러영화다 보니 샘 레이미는 자신의 절친인 브루스 캠벨에게 영화 출연을 제의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이블 데드〉가 〈숲속에서〉를 확장한 영화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데일리모션 등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쉽게 앳된 얼굴의 브루스 캠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세상이 올 거라곤 예상 못 했다. 소수의 공포영화 팬들 사이에서만 인정받던 샘 레이미 감독이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감독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리라는 건 더더욱 상상도 못 했고. 세상은 요지경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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