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국의 인생 그래프 "세계적인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 만들고파"
아버지 반대 무릅쓰고 도전한 테니스 인생
박용국 단장은 중학생 때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운동소질이 남달랐던 박 단장은 학교 체육 선생님에 의해 작은 테니스 코트로 향했다. 3개월간 자세 교정을 하면서 테니스 인생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박 단장은 2남 1녀 중 장남이라 집안에서는 운동보다 공부하기를 원했고, 특히 아버지가 테니스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로 인해 테니스를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그만 둘 뻔했으나 특출난 운동신경을 자랑하였기에 체육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테니스를 시작하라고 권해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공부와 운동을 모두 해버리면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1년 동안 남들보다 일찍 등교하고 늦게 귀가하며 테니스 한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운동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 때문에 늦게 오는 줄 알고 계셨다.”
이렇게 공부도 하면서 테니스에 전념한 박 단장은 중학교 3학년, 경기도 소년체전 선발전에서 2등으로 대표로 선발되었다. 이 일로 인해 아버지는 그가 테니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선 소년체전에서 단, 복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결국, 테니스의 길을 허락 받고 이후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아버지의 지원에 힘입어 이후 인천 대건고에 입학, 특히 대학 입시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생선수권 단식 준우승, 18세부 주니어대회 복식 우승, 전국체전 준우승 등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사실, 박 단장의 최종 꿈은 프로로 데뷔하여 투어에 뛰는 선수가 아닌 체육 교사였다. 테니스의 첫 시작을 알려준 체육 선생님을 바라보고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체육을 가르치는 꿈을 키웠다. 그렇게 건국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박 단장은 ‘체육 교사’의 꿈을 위해 테니스 생활을 이어갔으나, 인생 곡선의 급하락이 찾아왔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선수로서 커리어를 이어가던 박 단장에게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모든 스포츠 선수는 부상을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나는 심하게 허리 부상이 찾아왔다. 대회에 한 번 출전하고 병원에 다니고 하는 생활을 매번 반복했다. 그로 인해 경기력도 안 좋아지고 대학교 2학년 때 진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박 단장은 팀 감독과 상의를 하였지만 당시 감독은 테니스를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여러 조언과 감독의 믿음으로 박 단장은 다시 테니스 라켓을 잡았고 대우중공업 실업팀에 들어가게 됐다. 당시 대우중공업에는 유진선, 김봉수 등 이름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포진됐다. 그렇게 10년 동안 부상을 안고 실업 무대 생활을 마쳤다.
“선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신념과 목표가 있다. 부상도 있었고 좌절도 많았지만, 쉬운 길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전혀 가보지도 못한 길,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누구나 꿈꾸는 대기업에 들어간 대우중공업에서 선수가 아닌 직장인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평생 운동만 하다가 근무를 선택한 박 단장의 첫 직장 생활은 역시 쉽지 않았다. ‘테니스 선수 출신?’이라는 직원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박 단장은 주눅 들지 않고 남들보다 더 노력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매사에 임한 그에게 주변의 차가운 시선은 인정으로 변했고 독일 연수와 홍보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기도 했다.
2년 만에 직장생활에 정착한 그는 1997년 NH농협은행 테니스팀에서 코치 제안을 받았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꿈이었던 박 단장에게 코치 생활은 누구보다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대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이 큰 자산이 되어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팀 스케줄 관리나 선수 지도 등이 어렵지 않았다. 대우중공업에서 극한의 상황을 견뎌 왔으니깐. 농협은 당시 큰 자금을 쓸 수 있는 구단은 아니었으나 체력과 멘탈이 좋은 선수 위주로 선수 영입에 힘을 더했다.”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박 단장은 농협은행 팀을 대통령기 14연패로 이끌며 인생에서 최고조의 상승 곡선을 달리게 되었다. 농협 코치 외 대한테니스협회 경기위원장, 실업연맹 전무 등 엘리트 테니스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일을 한 그는 2017년 지도자 생활을 그만두고 스포츠 마케팅에 새롭게 도전했다.
“2017년, 감독 7년차 시절에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스포츠 마케팅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지도자를 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를 못 만들었으나 스포츠단을 만들어 선수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서포터 역할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스포츠단을 창단하였다.”
남을위한 행동은 결국 나를위한 행동
박 단장에게 스포츠단은 빈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 하는 조직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문화인 농협에서 지난 2년 동안 그는 발 벗고 뛰었다. 다른 부서의 합의를 받아야 인력과 예산을 확보할 수 있어서 박 단장은 매일 아침 커피를 사 들고 다른 부서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눈도장을 찍은 박 단장은 코피를 쏟아내며 2년을 버텼다. 스포츠 마케팅으로 농협의 보수적이고 올드한 이미지를 젊고 세련된 이미지로 탈바꿈 시키고자 노력했다.
“내 몸은 피곤하지만,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복지 혜택을 받고 성적을 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부심이 생겼다. 남을 위해서 한 행동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해 한 행동이 되었고 내 스펙을 쌓을 수 있었다. 선수들이 나를 인정해줄 때가 가장 기뻤다.”
선수들의 심리를 잘 파악했던 박 단장은 NH농협은행의 스포츠단장이 되면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선수와 코치들이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마련했다. 테니스 재능 기부도 하면서 농협의 브랜드와 로열티를 높였고 현재는 주니어 육성 지원 사업까지 펼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이은혜, 백다연을 스카웃했고 내년에는 고등부 최강 정보영(안동여고)까지 들어올 예정이다.
자신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지 못했고 지도자로서도 세계적인 선수를 키우지 못했지만 박용국 단장은 이제 세계적인 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성하였으니 인생 최고의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NH농협은행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게 시스템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으니 선수들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여 노력했으면 좋겠다. 특히, 좌절이 왔을 때도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인성을 갖추고 끊임없이 자기계발도 하는 농협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용국 단장은 올해를 끝으로 NH농협은행 스포츠단장에서 물러난다. 그는 “코로나19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지만 감사한 사람들을 농협대학교 코트에 초청하여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테니스 아카데미 운영이나 스포츠 매니지먼트라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글= 정광호 기자(ghkdmlguf27@mediaw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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