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Z세대' 김제덕·신유빈·황선우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코리아 파이팅!" 외치는 김제덕, 해외서도 화제
'전신 방호복' 출국 신유빈..간절한 꿈 위해
황선우, 덤덤한 인터뷰 화법에 담긴 자신감
"김제덕 선수처럼 저렇게 파이팅 좋고 열정적인 한국 선수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본 적 없어요."
미국 NBC방송에서 스포츠 캐스터 빌 돌먼과 해설자 릭 메키나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두 사람은 24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혼성단체전 결승에서 김제덕(17·경북일고) 선수가 경기 도중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양궁은 보통 '조용한 경기'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김 선수의 패기 넘치는 모습에 중계진도 깜짝 놀란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 최정상급 한국 선수들에게선 더더욱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돌먼은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을 자주 접한 양궁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메키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해외에서도 김 선수의 파격이 화제다. 10대의 열정이 이역만리까지 전해져 꺼져가던 도쿄올림픽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 나선 대한민국 대표팀의 10대들 도전이 눈에 띈다. 김제덕 선수는 양궁으로 이미 2관왕(혼성·남자단체)에 올라 좋은 결과를 내고 있고, 수영의 황선우(18·서울체고) 선수도 남자 400m 결승에 진출해 박태환 이후 9년 만에 쾌거를 이뤘다. 탁구의 신유빈(17·대한항공) 선수는 야무진 경기 운영으로 국민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들에겐 특별한 분위기가 풍긴다.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즐길 줄 아는 'Z세대' 특유의 여유가 묻어난다. 초조해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는다. 당당함과 소신,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이들의 생애 첫 올림픽이 주목받는 이유다.
'열정! 열정! 열정!' 김제덕의 "파이팅!"
"오진혁 파이팅!" "코리아 파이팅!"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남자양궁 단체 결승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김제덕 선수는 무려 스물세 살이나 많은 양궁 대표팀 맏형 오진혁(40) 선수의 이름을 거침없이 외치며 응원했다.
경기 중이었지만 오 선수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그려졌다. 경기 내내 막내가 목청 높여 파이팅을 외치는 상황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했다. 이미 혼성단체 결승에서 그의 열정은 통한 바 있다. 안산(20) 선수는 김 선수의 파이팅에 긴장을 풀고 우승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 선수는 혼성단체 결승에서 몇 번이나 파이팅을 외쳤을까. 무려 15번이다. 금메달 시상식이 끝난 뒤 사진 포즈를 취할 때까지 이어졌다. 방송 카메라는 그의 마지막 파이팅 소리까지 담아냈다. 양궁 경기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이다.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Z세대의 당당함이다.
사실 김 선수의 파이팅은 국내 취재진이 먼저 알아봤다. 그는 지난달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당시 '파이팅 목청'을 선보였다. 양궁 대표팀 형, 누나 선수들과 사진 촬영을 할 때 터져나왔다. 연신 파이팅을 외치며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 선수는 '형들한테 파이팅 지도를 받았나'라는 질문에 "아니다. 제가 파이팅을 외치고 싶어서 외쳤다"면서 "더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입으로만 경기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두 형을 위해 '해결사' 역할까지 했다. 준결승에서 일본과 '슛오프(동점일 경우 승부를 가리기 위해 한 발씩 쏘는 경기)'까지 가며 접전인 상황에서 김 선수의 화살만 10점을 맞췄다. 두 형은 9점을 쐈다. 총 28점으로 일본과 동점이었으나, 과녁 중심부와 가장 가까운 김 선수의 화살 덕분에 결승행을 결정지었다.
김 선수는 대표팀이 위기의 순간마다 10점을 쏴주며 든든한 버팀목 역할도 했다. 안산 선수가 8점을 쏘면 10점을 맞춰주고, 형들과의 금메달 합작에도 자기 몫을 충실히 해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개인전 우승이다. 그의 긍정 에너지와 열정은 충분히 3관왕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김 선수는 안산 선수와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목표는 단체전이고 개인전은 즐기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김제덕 선수는 5년 전 '양궁 신동'으로 소개됐던 SBS '영재 발굴단'에서 이렇게 말했다. "활을 즐기면서 쏴야 해요." 이제 결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신껏! 결정은 내 스스로! 신유빈의 선택
사실 신유빈 선수는 일명 '공항패션'으로 먼저 시선을 강탈했다. 19일 인천국제공항에 나타난 신 선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었다.
선수단복과 트레이닝복을 입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들 속에 전신 방호복을 입고 나타난 이가 바로 신 선수다. 그는 새하얀 전신 방호복도 모자라 고글에 마스크를 두 겹이나 쓰고, 라텍스 장갑까지 낀 채 공항에 들어섰다. 마치 우주여행을 떠나기라도 하듯이.
방호복 차림은 그 누구도 아닌 신유빈 선수의 뜻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간절한 꿈까지 꺾여버리면 안 되니까.
신 선수는 당시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무서워서 (방호복을) 사 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사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으로 가는 2시간 비행 동안 철벽 방어를 하고 이동했다. 백신 예방 접종을 했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고 한다. 어리지만 꿈을 향한 도전과 진지함, 욕심 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이 뜻한 바를 믿고 나아가는 소신이 꽤나 야무지다. 일찌감치 자신의 인생 방향을 정해놓기도 했다. 오로지 탁구를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 선수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을 내렸다.
'탁구 신동' 수식어를 이어갈 인생의 방향도 스스로 정했다. 당시에도 아버지를 설득해 학교가 아닌 훈련에 매진했다. 남들보다 빨리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당차고 야무진 성격은 이번 올림픽 여자단식 2라운드에서 제대로 드러났다. 41세 차이의 '백전노장'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리안(58) 선수와 대결에서 여지없이 발휘됐다. 까다로운 구질의 공은 한 박자 늦춰 확인하며 받아쳤다. 점수를 잃더라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화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입력했다.
1980년대 중국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올림픽에 4회 출전한 고수 앞에서 작아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 선수는 눈을 더 크게 뜨고 집중했다. 4년 전 월드투어 스웨덴오픈에서 패배를 안겼던 니시아리안 선수에게 또 당할 순 없었다.
안재형 KBS 해설위원은 중계방송에서 "신 선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건 굉장히 잘하는 일이며, 지는 것도 받아들여야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니시아리안 선수는 만만치 않았다. 4세트 초반 3대 0으로 경기가 밀리자 갑자기 에어컨 바람이 경기에 방해된다고 항의했다. 급기야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신 선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경기 전략을 짰다.
결국 신 선수는 경기력과 정신력에서 모두 승리했다. 니시아리안 선수도 신 선수의 승리를 축하했다. 니시아리안 선수는 경기가 끝난 직후 "먼저 신유빈 선수에게 칭찬을 보낸다"며 "새로운 스타이고, 테크닉도 매우 훌륭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미래가 밝은 선수"라며 "더 중요한 건 즐기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즐김'의 미학을 전했다.
신유빈 선수는 즐김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담감보다는 저로 인해서 많은 국민들이 조금이나마 기쁨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황선우의 덤덤한 솔직화법이란?
"그냥…." 출전했다 하면 신기록을 경신하는 '기록 제조기'로 불리는 수영의 황선우 선수. 아직 10대여서일까. 경기 후 인터뷰할 때마다 특유의 버릇이 있다. 가볍게 툭 던지는 것 같은 '그냥'이 그의 버릇이다.
황 선수는 26일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200m 예선에서 1분44초62이라는 기록으로 들어왔다. 전체 준결승 진출자 중 1위를 차지했다. 또한 11년 만에 갈아치운 한국 신기록이기도 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박태환 선수의 기록(1분44초80)보다 0.18초가 빨랐다.
그래서 이번 이 종목에서 메달권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 기록은 2016 리우올림픽에서 중국의 쑨양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기록(1분44초65)에 근접해서다.
그런데 황선우 선수만 덤덤했다. 남자 자유형 200m 예선을 마치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생각보다 별로 안 떨려서 괜찮았고 기록도 상당히 만족한다"고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그는 이어 '출발 직전 무슨 생각했는지'를 묻자, "그냥 일반 대회랑 똑같이 뛴 것 같다"고 했다. '전혀 안 떨렸느냐'고 연이어 질문하자 "괜...찮...괜찮았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생애 첫 올림픽에서 첫 경기를 치른 선수의 인터뷰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18년 전 MBC 드라마 '대장금(2003)' 속 어린 장금의 화법 같기도 하다. "홍시 맛이 났는데...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말투와 표정은 무덤덤하지만 강인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황 선수는 3월 김천 전국수영대회에서도 이 같은 인터뷰를 했었다. 자유형 100m 한국신기록 보유자인 그는 당시 대회에서 처음으로 남자고등부 개인혼영 200m 결승에 출전했다. 그야말로 '깜짝' 출전이었다.
경기 결과는 놀라웠다. 공인 기록이 없어서 8번 레인을 배정받아 출전했는데 1위로 들어왔다. 그런데 또 대회 신기록(2분00초77)까지 세웠다.
인터뷰는 어땠을까. 황 선수는 '왜 개인혼영에 출전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어...그냥...개인혼영은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고, 진짜 그냥 나오고 싶어서 한번 나와봤다"고만 했다. 또 '첫 개인혼영 200m 출전이 부담스럽지 않았나'고 하자, "그냥...이번 대회는 즐기면서 뛰려고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황 선수는 이튿날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서도 48초48을 기록해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가히 '기록 제조기'다운 면모다.
이제 그의 첫 번째 올림픽에서의 첫 메달을 기대하는 국민들이 많다. 27일 오전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아쉽게 7위를 기록한 황선우. 150m까지 1등을 유지하며 대한민국 10대의 저력을 보여준 것만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을 터.
해설자로 이번 올림픽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의 수영스타 마이클 펠프스도 황 선수를 도쿄올림픽 기대주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황 선수는 과연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벌써부터 그의 인터뷰가 기대된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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