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데뷔 20주년' 김소향 "이젠 '마리 앙투아네트'가 내 대표작"
왕비 위엄 갖추려 말투· 행동 연구
"정말 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 뿐
강인하고 단단한 '마리' 기대하세요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배우로써 가장 큰 도전을 하게 한 작품이예요. 그 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저의 대표작이라 생각할 만큼 애착이 많은 작품입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만난 뮤지컬배우 김소향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나에게 다시 도전 정신을 고취시켰다”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세 작품 중 하나”라고 밝혔다. ‘마리 앙투아네트’ 외에 국내 무대 복귀작이었던 ‘모차르트’, 창작 뮤지컬의 매력을 일깨워준 ‘마리퀴리’를 인생작으로 꼽았다.
‘마리’의 굴곡있는 인생에 강한 끌림이 있었다고 한다. 김소향은 “저도 ‘마리’처럼 소중한 것들을 잃어 봤고, 처절하게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면서 “마리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외로움, 슬픔, 공허함을 꼭 한 번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역할에 욕심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주로 진취적이고 당당한 여성 캐릭터를 맡았던 김소향에게 비운의 왕비 역할은 그 자체만으로 큰 도전이었다. 왕비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걸음걸이부터 행동, 말투, 손짓, 표정까지 하나하나 새로 익혔다. 청아한 음색과 풍부한 성량이 매력인 김소향이지만, 목소리에 왕비의 우아함이 묻어나지 않는 것도 고민꺼리였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최정상급 뮤지컬배우 김소향은 “지난 시즌 날마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무대에 올랐다”고 했다. 그런 그가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자신만의 기품있고 우아한 왕비 캐릭터를 완성했다. “정말 잘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그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배우로써 가장 큰 도전을 하게 한 작품이예요. 그 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저의 대표작이라 생각할 만큼 애착이 많아요.
-특별히 애착이 큰 이유가 있나.
△주로 진취적이고 당당한 여성 캐릭터를 많이 하다가, 왕비로서 위엄, 우아함을 표현한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어요. 지난 시즌 처음 준비할 때에는 걸음걸이부터 행동, 말투, 손짓, 표정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공부해야 했어요. 어려운 노래들도 많아서 지난 시즌에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레슨을 받으며 무대에 섰어요. 여러가지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아 늘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섰던 작품이에요.
-무엇이 가장 부족하다고 느꼈나.
△가장 컸던 건 목소리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제 음색이 굵거나 해맑은 톤은 쉽게 나오는데, ‘마리’는 우아한 목소리가 필요했어요. 이번 시즌 준비하면서 김문정 음악감독과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고, 레슨도 받으면서 드디어 저만의 ‘우아함’을 찾아낸 것 같아요. 개막을 앞두고 김문정 감독님에게 “정말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익숙하지 않은 역할이다 보니 평소와 루틴도 많이 다를 것 같은데.
△몸 푸는 것부터 완전 달라요.(웃음) 원래 저는 공연 들어가기 전에 엄청 많이 뛰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 몸을 풀어요. 그런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절대 그런 거 안해요. 주로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하면서 제 자신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려 노력해요. 뭐든 ‘나긋나긋’, ‘천천히’ 하려 애써요. 왕비를 조금이라도 더 잘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루틴이에요. 저를 믿고 다시 맡겨준 만큼 이번 시즌은 정말 잘 하고 싶어요.
△20년 넘게 무대에 섰는데, 처음으로 우황청심환을 먹고 올라갔어요.(웃음) 물론 무대에 대한 떨림, 긴장보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에 어깨가 무거웠던 게 컸어요.
-무슨 얘기인지?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 후에 개막했잖아요. 첫 공연 시작 전에 150명이 넘는 배우, 스태프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사를 지내는데, 모두가 하나가 돼 간절한 마음으로 공연이 잘 되길 기도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타이틀 롤이다 보니 ‘정말 잘 해야 한다’, ‘내가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마음을 다잡았는 데도, 공연 시각이 다가 오자 갑자기 다시 심장이 요동치는 거에요. 결국 급하게 우황청심환을 구해서 먹고 올라갔어요.
-우황청심환 때문이었는지 전혀 긴장한 걸 느끼지 못했다. 첫 공연 커튼콜에서 관객들이 기립박수로 화답해 줬는데, 감격스러웠을 것 같다.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보고 벅찬 감정이 올라오고 있는데, 커튼콜이 끝나 버렸어요.(웃음). 백 스테이지에 가서 시계를 보니 오후 9시 54분이더라구요. 부리나케 옷 갈아 입고 정신없이 샤롯데씨어터를 빠져나왔어요.
(거리두기 4단계로 공연장은 오후 10시까지 운영이 제한된다. 3시간 짜리 공연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공연 시간을 앞당기고, 인터미션과 커튼콜을 줄여 오후 10시 전에 공연을 끝내고 있다.)
△그럼요. 관객들이랑 똑같아요. 4단계 이후 공연이 끝나고 옷 갈아입고 나오면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가발, 드레스를 보고 있으면 정말 만감이 교차해요. 찰리 채플린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것 같아요.(웃음)
-김소현 배우와는 두 시즌 연속 더블캐스팅인데, 두 사람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떻게 다른가.
△소현 언니의 ‘마리’가 무척 사랑스럽다면, 저는 좀 더 단단한 ‘마리’를 보여주려고 해요. 해석의 차이일 수도 있어요. 저는 마리를 미화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그 시대의 관습을 따랐던 한 명의 왕비일 뿐이라고 봐요. 그녀의 오만함도 당시의 왕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구요. 시대상을 감안해서 마리가 했을 법한 행동, 표정을 보여주고 싶어요.
-민우혁, 이석훈, 이창섭(비투비), 도영(NCT) 등 4명의 페르젠들은 어떤가.
△정말 4명 모두 100점을 주고 싶어요. 이번 시즌 연습 기간 중에 4명의 페르젠이 보여준 마음가짐과 태도는 놀라울 정도에요. 이석훈은 라디오 하러 가기 직전까지 연습에 매달려요. 도영은 본인이 연습 아닌 날도 매일 나와서 다른 사람들 연습하는 걸 봐요. 안 지겹냐고 물었더니 “너무 재밌어요”라고 답해요.(웃음) 이창섭은 연기할 게 많아서 너무 좋다며 푹 빠져 있어요. 민우혁은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정말 유별나요.
-연습실 분위기도 무척 좋았을 것 같다.
△대단했어요. 이한밀, 주아, 문성혁 등 지난 시즌 출연했던 배우들은 이제 여유가 생겨서 다른 배우들을 잘 끌어줬어요. 다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에요. 특히 이 작품은 앙상블이 최고에요. 25명 앙상블의 에너지가 엄청났어요.
-다들 무대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큰 것 같다.
△맞아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공연을 취미나 장난 정도로 치부하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은 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간, 열정, 돈, 노력을 쏟아부은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절대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모든 걸 바쳐서 일 하고 있어요. 저는 예술이 가진 힘을 믿어요. 지치고 힘들 때 우리를 일으켜 주는 건 바로 예술이에요.
-공연을 보면서 김소향이 ‘마그리드’를 하면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사실 2019시즌에 마그리드를 할 뻔 했어요. 그런데 시즌 시작하기 전에 일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을 보고 난 뒤, 이 작품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마리’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이유에서?
-‘마리’의 삶이 제가 무대에서 꼭 연기해보고 싶은 삶이었거든요. 저도 마리처럼 소중한 것들을 잃어 봤고, 처절하게 힘든 적도 있었어요. 그녀처럼 감옥에 갇힌 적은 없지만, 미국 유학 시절 우울함에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때도 있구요. 마리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외로움, 슬픔, 극한의 공허함을 꼭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역할에 욕심이 생겼어요.
-힘든 유학 생활이 지금의 김소향을 있게 한 동력 아니었나.
△맞아요. 유학 다녀온 후에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마음의 여유도 생겼구요. 유학 전에는 늘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 많았아요. ‘생계형 배우’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 제가 유학 전에 비해 돈을 엄청 많이 벌지 않지만, 이제 공백기가 생겨도 ‘나를 채우는 시간으로 삼자’는 생각을 해요. 더는 조바심 내지 않고, 저만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어요. 함께 무대에 서는 동료에 대한 애정도 커졌어요. 옛날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면, 이젠 저와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 존경심을 갖게 돼요.
-여유가 생겼다고 말하지만, 사실 국내 복귀 후 공백기라고 할 기간도 없었던 것 같다.
△전 계속 무대에 서야 해요. 공연 없는 날 집에 있으면 머리가 너무 아파요.(웃음)
-겹치기 출연도 많은데, 힘들지 않나.
△어떤 때는 겹치기가 좋을 때도 있어요. 작품 속 캐릭터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때 다른 작품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거든요. 물론 대사 외우기도 힘들고, 어려운 게 많아요. 하지만 그래서 더 진짜 바짝 긴장하고 무대에 오르게 돼요. 겹치기 출연하는 기간에는 정말 몸도 많이 사리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요.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정말 큰일나니깐요.
-여러 작품을 통해 강인함, 섹시함, 귀여움, 우아함 등 다양한 매력을 보여줬다. 본인의 실제 성격은 어떤가.
△정말 모르겠어요. 내 안에 여러 모습이 있는데, 어떤 게 진짜 나인지 이제 헷갈려요. 그런데 감정은 잘 못 감추는 편이에요. 특히 화가 나거나, 기분 나쁠 때 얼굴에 다 드러난데요.
-여러 작품에 출연하려면 체력 관리도 신경 많이 써야 할 것 같다.
△집이 남산 근처라, 남산에 올라 하루 한 시간 정도씩 꼬박꼬박 산책해요. 원래 수영을 열심히 다녔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거의 못 갔구요. 집에서는 주로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를 해요. 가족들이 워낙 운동을 좋아해요. 제가 7살 때 기계체조를 했고, 초등학교 때에는 200미터 달리기 선수를 했어요. 다들 제가 뮤지컬 배우를 하지 않았더라면 태릉인이 됐을 거래요.(웃음)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이 승부욕도 강한 편인데.
△맞아요. 원래 제가 졌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잠을 잘 못 잤어요. 그런데 유학 갔다온 후에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요즘엔 경쟁보다는 응원을 하게 되요.
-출연작 중에서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있나.
△얼마 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초연했던 ‘프리다’요. 제가 땀을 잘 안 흘리는 편인데, 공연할 때마다 정말 흠뻑 젖었어요. 록 뮤지컬인데, 여자 고음의 ‘끝판왕’인 작품이에요. 연습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 ‘프리다’를 연습할 때에는 매일같이 “죽겠다”고 징징댔어요.(웃음)
△세 작품이 있어요. 한국으로 컴백할 수 있게 해준 뮤지컬 ‘모차르트’, 다시 도전 정신을 발휘하게 한 ‘마리 앙투아네트’, 창작 뮤지컬에 대한 사랑을 불붙게 한 ‘마리퀴리’요.
-브로드웨이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나.
△원래 다시 가려 했는데, 코로나19로 브로드웨이가 올 스톱되는 바람에 제 차례가 다시 오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배우를 하면서 무 하나라도 잘랐다’는 만족감이 들 때까지 국내 무대에 올인하려 해요. 어디서든 도전하는 건 똑같이 가치 있는 일이잖아요.
-다른 장르 진출 계획은 없나.
△지금은 ‘전혀’ 없어요. 무대와 너무 사랑에 빠져서….(웃음) 계속 무대에 서다가 나이가 조금 더 들어 50살쯤 영화,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왜 50살쯤인가?
△그 나이 정도면 제 영역에서 뭔가 만족할 만한 것이 하나로도 있지 않을까요? 그 때쯤이면 노래 없이 연기만 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 출연작은 어느 정도 정해졌나.
△아직 다 정해지진 않았지만, 내년에는 소극장에서 창작뮤지컬을 많이 하려 해요.
-창작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 같다.
△창작이 재밌어요. 작품 준비하면서 징그럽게 많이 싸우고 뼈를 깎는 고통이 있지만, 작품이 나왔을 때 ‘내가 만들었다’는 자부심, 행복감은 정말 엄청나거든요. 라이선스 작품 중에선 언젠가 ‘엘리자벳’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윤종성 (js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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