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또 해냈다 ‘2.4㎝의 기적’

도쿄/장민석 기자 2021. 7. 27.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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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양궁 단체전 金… 2연패 이룬 3총사
韓日 4강 연장전, 김제덕의 화살이 日보다 과녁 중앙서 더 가까워 승리

“오진혁, 파이팅!”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17세 고교생 김제덕이 자신보다 스물 세 살이나 많은 마흔 살 베테랑 오진혁의 이름을 불렀다. 오진혁은 “처음엔 좀 놀랐는데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며 웃었다.

오진혁
김우진

24일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딸 때도 수없이 “파이팅”을 외쳤던 김제덕은 이날도 쉴 새 없이 외치고, 또 외쳤다. 올림픽 양궁장은 늘 고요했던 기억이 있는 기자에게 김제덕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선수 같았다.

실력 없이 소리만 지르진 않았다. 김제덕은 이날 단체전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40세 오진혁과 29세 김우진, 17세 김제덕이 ‘원 팀’으로 세대를 아우른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대만을 6대0으로 물리치며 리우올림픽에 이어 대회 2연패(連覇)를 달성했다. 혼성 단체전 우승으로 한국 남자 역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던 김제덕은 이날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 2.4㎝가 가른 승부

사실상의 결승전은 한국과 일본이 맞붙은 4강전이었다. 일본과 두 세트씩 나눠 가지며 4-4로 맞선 한국은 슛오프(연장전)에 돌입했다.

슛오프는 한 명이 한 발씩 총 3발 합산 점수로 승부를 가린다. 김우진이 9점을 쏘자 일본의 가와타 유키가 10점을 쐈다.

더는 물러날 수 없는 순간 김제덕의 활을 떠난 화살이 10점에 꽂혔다. 일본은 9점. 스코어는 19-19로 동률이 됐다.

한국의 마지막 사수인 오진혁이 아쉽게 9점을 쐈다. 일본은 무토 히로키가 나섰다. 그의 화살이 9점에 꽂히자 김제덕은 포효했고, 두 형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28-28 동점이었는데 왜 한국 선수들이 환호했을까. 동점이면 양팀이 쏜 화살 중 과녁 중앙에 가장 가까운 화살 1개의 중앙으로부터 거리를 비교해 더 짧은 팀이 승리한다.

가와타가 먼저 쏜 10점 화살은 김제덕의 화살보다 눈으로 봐도 중앙에서 멀어 보였다. 방송 중계 화면엔 김제덕의 화살이 중앙에서 3.3㎝, 가와타의 화살은 5.7㎝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2.4㎝ 차이로 한국이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2.4㎝로 승부를 가른 ‘강심장’ 김제덕은 이미 5년 전에 될성부른 떡잎을 드러냈다. 리우올림픽이 열린 2016년, 12세 ‘양궁 영재’ 김제덕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국 여자 선수와 맞대결을 펼쳤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펼쳐진 승부에서 둘은 동점을 이뤘고, 슛오프 한 발로 마지막 승부를 가렸다. 중국 선수가 9점을 쏘자 김제덕은 보란 듯 10점을 맞히며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슛오프는 처음이지만 당황하진 않았다”고 당차게 말한 소년이 성장해 올림픽 무대 슛오프에서 한국 양궁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파이팅 소년’으로 거듭난 김제덕은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효자다. 김제덕의 스승인 황효진 경북일고 코치는 “아버지 몸이 안 좋으시다. 애써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김제덕은 대회를 마치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을 생각이다.

◇ 한 가닥 남은 힘줄로 금메달

맏형 오진혁은 대만과 결승전에서 마지막 사수로 나섰다. 9점 이상을 쏘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그는 화살이 떠나자마자 “끝”이라고 말했다. 오진혁은 “쏘는 순간 10점인 줄 알았다”며 웃었다.

1981년생인 그는 사격 진종오(리우올림픽 37세)를 제치고 한국 역대 올림픽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오진혁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양궁 스타다.

4년 전 그림자가 찾아왔다. 어깨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더니 오른쪽 어깨 회전근 4개 중 3개가 끊어졌고, 나머지 하나도 80% 이상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의 은퇴 권고에 흔들렸지만, “형 좀 못 쏴도 괜찮아요. 우리가 잘하면 되죠”라는 김우진의 말에 마음을 바꿨다.

끊임없는 재활과 보강 운동으로 버텨낸 오진혁은 9년 만에 값진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는 “런던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보다 동생들과 어울려 이뤄낸 오늘의 금메달이 훨씬 기쁘다”며 “젊은 마음이 몸도 젊게 만든 것 같다. 한국의 40대들에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우승 주역 김우진은 18세이던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개인·단체 2관왕에 오르며 ‘신궁’이라 불렸던 선수다. 하지만 런던올림픽 선발전에서 4위로 떨어지며 아픔을 맛봤다.

절치부심한 끝에 ‘양궁 천재’에서 훈련량이 가장 많은 ‘노력형 궁사’가 됐다. 리우올림픽에 이어 2연속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건 김우진은 “남은 개인전에서 3관왕에 도전하는 제덕이와 멋진 승부를 벌여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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