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상승세라 기대하세요, 하하” 도쿄를 뒤흔드는 발랄한 10대

도쿄/이태동 기자 2021. 7. 2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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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세대교체, MZ세대가 뛴다
수영 황선우 오늘 자유형 200m 결승… 탁구 신유빈은 단식 32강 올라
수영 황선우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2003년생 수영 소년 황선우(18)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는 26일 도쿄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준결승 2조 경기에서 1분45초53을 기록, 다섯 번째로 터치 패드를 찍었다. 1·2조 전체 16명 중 6위로 27일 오전 열리는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 선수가 경영에서 결승에 오른 건 2012년 런던 대회 박태환 이후 9년 만이다. 전날 예선에서 1분44초62로 한국 신기록과 세계주니어 신기록을 동시 작성한 데 이어 연이틀 낭보를 전했다.

제2의 박태환으로 불린 황선우에게 일찍부터 전 국민의 시선이 쏠렸지만, 그의 어깨는 결코 부담에 짓눌리지 않았다. 그는 동네 수영장을 찾은듯 카메라를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며 경기장에 들어섰고, 무덤덤히 입수해 역영하고 나와선 환히 웃었다. “최선을 다하겠다” 같은 모범 답안 대신 “나는 상승세에 있으니 기대해달라. 결승에서 한국 신기록을 또 경신하겠다”고 소리쳤다. 긴장⋅부담 같은 것들을 이 10대 소년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치 집 앞 놀이터를 뛰어다니듯 도쿄올림픽을 휘젓는 10대들이 있다. 세계에서 날고 기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성적까지 내고 있다. 이 청년들의 천진난만한 몸짓에 국민은 잠시나마 걱정, 근심을 잊는다.

이들은 흘린 땀의 양이 충분했다면 남 탓을 하지 않는다. 황선우는 25일 밤 예선에 이어 다음 날 아침에 곧바로 준결승을 치러 기록이 조금 떨어졌는데, 불만 없이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신유빈이 25일 니시아리안(룩셈부르크)과의 탁구 단식 경기에서 서브를 하며 공을 쳐다보고 있다. 눈에 힘을 주고 집중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신유빈은 니시아리안을 4대 3으로 누르고 32강에 진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 탁구 역대 최연소 올림픽 대표 신유빈(17)도 그랬다. 그는 25일 여자 단식 2회전에서 마흔 살 이상 연상인 룩셈부르크 니 시아리안(58)과 맞붙어 게임 스코어 4대3으로 이겼다.

신유빈이 게임 스코어 1-2로 밀린 채 맞은 4게임 초반, 경기가 갑자기 중단됐다. 3점을 연달아 빼앗긴 상대가 “에어컨 때문에 공이 흔들린다”며 코트에서 벗어나 벤치로 들어가 버렸다. 항의가 5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신유빈은 표정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기다렸다. 재개 후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리듬을 이어갔고, 이겼다. 추교성 감독은 “흔들리지 않는 걸 보고 승리를 예감했다”고 했다. 신유빈은 경기 후에도 별 불만 없이 “엄마⋅아빠, 한국 가면 마시멜로 구워 먹자”는 소감을 남겼을 뿐이다.

신유빈의 어린 시절 모습. /신유빈 가족 제공

실력에 걸맞은 관심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 것도 10대 에이스들의 특징이다. 신유빈은 도쿄에 들어오며 홀로 방호복으로 완전 무장해 화제가 되자 가족에게 “나만 관종(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의 속어)이 됐다. 그래도 방역복이 무거워 살도 빠지고 일석이조네”라며 웃어넘겼다.

여서정(19)도 자기 힘으로 ‘부녀 비교’를 헤쳐가고 있다. 그의 아버지 여홍철(50)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 교수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다. 종목은 여서정과 같은 ‘도마’였다.

체조 여서정

이런 아버지가 여서정에겐 동기의 원천이다. 아버지를 ‘롤모델’로 여기는 여서정은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아버지(1994·1998 금)를 한 걸음 따라갔다.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부녀 메달을 노린다. 일단 지난 25일 도마 예선에서 전체 5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여서정은 “난도 높은 ‘여서정’ 기술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도마를 정면으로 뛰어 두 바퀴를 도는 여서정 고유의 기술이다. 이 역시 아버지와 같다. 여홍철도 이름을 딴 ‘여1’ ‘여2’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서정이 8월 1일 결선에서 시상대에 서면 한국 최초 부녀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탄생한다.

도쿄에선 이들 외에도 유독 10대 에이스가 많이 보인다. “코리아 파이팅”이란 함성으로 ‘국민 아들’이 된 김제덕(17)은 벌써 양궁 2관왕이다. 배드민턴 최연소 국가대표 안세영(19),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18) 등도 파란을 준비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찬승 박사는 “주위를 의식하기보단 내 경기에만 집중하는 요즘 10대 선수들의 성향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데에 쓸 에너지를 온전히 자신에게 쏟는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도 있다. 코로나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되고 대회가 다수 취소됐다. 스포츠정책과학원 성봉주 수석연구원은 “전력 노출이 줄어 이변의 가능성이 커졌고, 노련한 선배와 신예의 경험 차이가 끼치는 영향은 적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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