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나훈아 콘서트보다 힘든 '백신 효케팅'

배소영 2021. 7. 2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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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대구에 사는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요즘 너무 덥지? 밥은 잘 챙겨 먹니?" "동생은 새 직장에 잘 적응하고 있어." 이런저런 안부를 묻던 엄마는 통화한 지 10분이 지나서야 딸에게 전화한 이유를 꺼냈다.

어떻게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할지 고민하다 보니 '나훈아 콘서트'가 떠올랐다.

곧장 엄마에게 백신 예약에 성공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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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지? 미안해. 이번이 내 차례더라고. 대리 예약 좀 해주겠니?”

이달 초 대구에 사는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요즘 너무 덥지? 밥은 잘 챙겨 먹니?” “동생은 새 직장에 잘 적응하고 있어.” 이런저런 안부를 묻던 엄마는 통화한 지 10분이 지나서야 딸에게 전화한 이유를 꺼냈다. 55~59세 백신 접종 사전 예약을 받는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사용이 서툴러 나더러 대신 신청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배소영 사회2부 기자
엄마로부터 “친구 ○○이도 딸내미가 대리 예약을 해준다더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내가 하면 몇 분이면 끝날 일. 하지만 엄마가 하면 몇 시간이나 끙끙거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어렵지 않아. 내가 해줄게”라며 호기롭게 백신 예약을 장담했다.

다음날 오전 8시쯤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온라인 코로나19 백신 예약 사이트에 접속까진 순조로웠다. 하지만 ‘예약하기’ 버튼을 누르자 대기 중이라는 안내가 모니터에 떴다. 불안감이 덮쳤다. 이어 ‘고객님 앞에 38만명, 뒤에 5만명의 대기자가 있습니다’는 문구가 나왔다. 예상 대기시간은 2시간24분. 재접속하시면 대기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안내에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대기자가 줄어들지 않자 초조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날 백신 대리 예약은 실패했다.

어떻게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할지 고민하다 보니 ‘나훈아 콘서트’가 떠올랐다. 나훈아의 열성 팬인 부모님 덕에 어릴 적부터 그의 히트곡은 줄줄 꿸 정도였다. ‘고장난 벽시계’, ‘영영’, ‘무시로’까지…. 2017년 ‘11년 만의 나훈아 콘서트’라는 말에 들뜬 부모님에게 콘서트 티켓 예매를 장담했다. 실제로 티켓 오픈 3분 만에 예매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신 예약은 달랐다. 전국에 55~59세 부모를 둔 자녀들이 경쟁자였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효도 백신 용병을 구한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대리 예약에 성공하면 적게는 3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까지 사례금을 준다고 했다. 곧장 인터넷 창을 켜 ‘K-효도 백신 예약 성공’, ‘백신 예약 꿀팁’ 등 단어를 요리조리 조합하며 검색에 나섰다. 이렇게 띄운 창만 10개. ‘질병관리청 coov 앱이 빠르다’, ‘스마트폰 비행기 모드를 설정했다가 접속하면 빠르다’ 등 효도 백신 대리 예약에 성공한 자녀들의 각종 무용담과 ‘꿀팁’이 넘쳐났다.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비장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국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우스를 클릭한 끝에 ‘코로나19 예방접종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창이 떴다. ‘K-효케팅(효도+티케팅)’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곧장 엄마에게 백신 예약에 성공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딸 고마워”라는 답문이 왔다.

대화창을 보고 있자니 ‘엄마가 이걸 직접 할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이 들었고, 어려울 것이란 답을 냈다. 인터넷 은행 업무나 벨소리 다운로드까지 부탁하는 엄마였다. 본인 인증에 의료기관 선택까지, 이 복잡한 과정을 엄마 스스로 하긴 어렵다는 추론적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자녀도 없고 인터넷 사용도 어려운 50대들은 어떨까. 그들은 백신 예약에 성공했을까. 얼굴도 이름도 모를 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모니터 위에 겹쳐 보였다.

배소영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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