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가 집 비운 사이..테슬라는 빈집 털이

고영득 기자 2021. 7. 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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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전기차 '내수 부진' 왜?

[경향신문]

현대차·기아, 탄소배출 벌금 ‘비상’
생산된 차량들 유럽에 대부분 수출
반도체 부족에 모터 생산 차질까지
사전 예약 인기에도 공급 못 따라가
선착순 보조금에 초조한 구매자들
당장 구매 가능한 ‘테슬라’ 선택해

국내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 테슬라를 중심으로 한 수입차들의 공세 속에서 올해를 ‘전기차 대중화’의 원년으로 삼은 현대차·기아가 추격의 고삐를 당기는 형국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산 전기차 시장은 파생 전기차 모델의 노후화로 성장이 주춤했다. 그러다 지난 4월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 출시를 계기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봉고와 포터를 제외한 국산 전기차의 내수 판매량은 1만233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0% 늘었다. 하지만 유럽 등 해외시장 공략에 집중한 나머지 수입 전기차들에 밀렸다. 하반기에는 아이오닉 5와 함께 제네시스의 G80 전동화 모델과 전용 플랫폼 기반 전기차 JW(프로젝트명), 기아의 첫 전용 전기차 EV6 등이 승부를 벌인다. 현대차·기아는 야심차게 내놓는 신차들이 테슬라의 기세를 누르고 안방에서 자존심을 회복시켜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형세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 전용 플랫폼 E-GMP로 승부

준중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아이오닉 5는 내연기관 차량의 플랫폼을 활용한 기존의 전기차와는 다르게 설계됐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처음 적용한 모델이다. 엔진과 변속기, 연료탱크 등이 차지했던 공간이 줄어들어 실내 활용도가 커졌다. 통합 플랫폼이어서 단기간에 라인업을 늘려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현대차는 오는 2024년까지 아이오닉 브랜드로 준중형 CUV에 이어 중형 세단,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까지 전용 전기차 라인업을 갖출 계획이다. 내년에 나올 중형 세단은 아이오닉 6, 2024년 출시될 대형 SUV는 아이오닉 7으로 명명했다.

아이오닉 5는 출시 전부터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 2월 사전예약 첫날 2만3760대가 계약됐다. 국내 완성차 모델 중 최대 사전계약 규모였다. 지난달 말까지 국내 누적 계약 대수는 약 4만대로, 올해 목표치 2만7000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아이오닉 5는 국내에서 신차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차량용 반도체가 제때 공급되지 않고 전동모터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상반기 국내에서 570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1만976대 팔렸다. 현대차는 특히 유럽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연합의 강도 높은 환경 규제 때문이다. 현대차로선 유럽에서 전기차를 많이 팔아야 전체 판매 차량의 탄소배출량을 줄여 거액의 벌금을 면할 수 있다.

주요 해외시장 판매를 본격화하다 보니 내수 공급이 기대만큼 원활하지 못했다. 현대차는 반도체 수급난으로 일부 공장 라인의 가동을 중단했고 예비 차주들의 대기 시간만 길어졌다. 지금 계약한다 해도 내년에야 차량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급기야 현대차는 다른 친환경차로 바꾸면 최대 100만원을 할인해주는 고육지책까지 내놨다.

하반기에도 반도체 수급난이 지속될 것으로 현대차는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2일 올해 2분기 경영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부터는 형편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으나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진단했다. 서강현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생산 차종 전환, 휴무일 변경 등 생산 계획을 수시로 조정해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해왔다”며 “현재 전사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 추가 물량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고 지연에 보조금 소진 불안

기아는 지난 3월 첫 전용 전기차 EV6의 티저를 공개하면서 ‘EV+숫자’로 구성되는 전기차의 차명 체계를 공식화했다.

EV6 역시 E-GMP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지난 3월 온라인 설명회에서 “2030년까지 전체 판매 모델 중 친환경차 비중을 40%까지 확대하겠다는 기아의 중장기 전략 ‘플랜S’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까지 기아는 내연기관 기반의 파생 전기차만 시장에 내놨지만 올 하반기 EV6 출시를 시작으로 전용 전기차 라인업을 강화한다. 오는 2026년까지 전용 전기차 7개를 출시해 파생 전기차 4종과 함께 총 11개의 전기차 라인업을 짠다는 구상이다.

기아가 밝힌 EV6의 면모를 보면 롱레인지 2WD(후륜구동) 기준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475㎞, GT 기준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3.5초로, 아이오닉 5보다 우수한 성능을 갖췄다. 저온 환경에서의 항속거리는 테슬라 모델을 능가한다고 현대차는 자평했다.

폭발적인 관심으로 EV6는 올해 생산 목표인 1만3000대를 크게 웃돈 3만2000여대가 사전예약됐다. 기아 관계자는 “최대 주행거리, 빠른 충전 시간과 합리적인 가격에 첨단 신기술을 집약해 경쟁차 대비 우수한 상품성을 갖췄다”며 “판매가 본격 개시되면 인기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기아는 이달 안에 EV6를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아직 출시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반도체 수급난에 발목을 잡혀서다. 게다가 여름휴가에 따른 공장 가동 중단으로 출고 속도는 더욱 더뎌질 것으로 보인다.

EV6는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반영하면 30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자체 예산이 한정돼 있는 데다 수입 전기차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어 EV6 출고가 늦어지면 보조금을 받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기차 보조금은 국고에 지자체 예산을 더해 선착순으로 지급한다. 최대 800만원까지 지원되는 국고 보조금은 그대로지만, 최근 서울시 보조금이 최대 4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축소됐다.

네이버 카페 ‘전기차 동호회’에서는 최근 EV6와 아이오닉 5 사전예약자들이 거주 지역별 보조금 지급 현황을 언급하면서 초조해하는 내용의 글들이 줄을 잇는다. 한 회원은 “아이오닉 5를 2월에 사전예약 걸고 4월에 계약했는데 아직도 생산 대기 상태”라며 “차량 반도체 대란이 길어지는 거야 알겠지만 차량 지원금 예산은 추경 있는 지역 외에는 다 고갈돼 가는데 테슬라만 좋은 일 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차량) 옵션에 따라 순번이 너무 차이가 난다”며 “수출 물량 팍팍 선적되는 거 보니 왠지 국내 계약자들은 홀대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 보급형 시장 노리는 테슬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올해 1~6월 판매된 수입 전기차는 1만4295대로 지난해 동기(8681대) 대비 64.7% 증가했다. 한편 이 기간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모두 2만6632대였다. 절반 이상이 수입차인 셈이다.

수입 전기차 인기는 단연 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가 주도했다. 테슬라는 상반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7079대)보다 64.3% 늘어난 1만1629대를 판매했다. 전체 수입 전기차 판매량의 81.4%를 테슬라가 차지했다. 테슬라의 모델3가 6257대로 가장 많이 팔렸고, 모델Y 판매량도 5316대에 달했다. 차량용 반도체 문제로 현대차·기아가 제때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테슬라가 대규모 물량 공급으로 국내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쥔 것이다. 테슬라의 공장 가동률은 100%인 것으로 전해진다.

테슬라를 비롯한 수입차 업체들이 고가 수요뿐 아니라 보급형 시장까지 노리고 있어 국산차 업체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테슬라는 중국 업체 CATL의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쓰면서 차량 가격을 낮추고 있어 테슬라 일부 모델은 현대차·기아의 아이오닉 5, EV6의 가격과 비슷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기아로선 생산 물량을 유럽에 먼저 보내야 하는 실정이어서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독주 체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며 “국산 전기차는 모델 다양화와 성능 향상에 주력하고 가격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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