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시대..폭염에 잠 못 드는 당신에게 권하는 '그린북'

선명수·김종목·이혜인·김지혜·백승찬·유경선 기자 2021. 7. 2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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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이 책과 함께 어때요

[경향신문]

두 해째 이어진 팬데믹에 폭염까지 겹쳐 올여름 나기가 얼마나 힘드신가요? 이 어려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입니다. 결국 ‘녹색’의 가치를 망각한 데 있지 않을까요.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서평을 써온 기자 6명이 저마다 꼽은 ‘녹색 책’을 소개합니다. 다가오는 휴가철에 멀리 가지 않더라도, 좋은 책을 벗 삼아 재충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라파엘 프리에 글·줄리앙 마르티니에르 그림, 이하나 옮김 | 그림책 공작소
점점 곰으로 변해가는 회사원
풀빛 가득한 숲이 주는 행복을 얻다

오늘은 월요일. 평범하고 성실한 회사원 블레즈씨는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이날 아침, 무언가 달라졌다. 블레즈씨의 발이 곰의 발처럼 변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는 가야 하니, 그는 장화를 신고 출근한다. 장화 속에 감춘 걱정거리 때문에 심란하지만 그럴수록 블레즈씨는 발을 잊기 위해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평소처럼 퇴근해 잠이 든다. 내일이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면서.

그런데 일이 심상치 않다.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블레즈씨의 몸은 점점 변해간다. 온몸이 갈색 털로 뒤덮이고 목에선 자꾸만 크르릉 크르르릉 소리가 난다. 그래도 그는 몸을 꽁꽁 싸맨 채 집 밖으로 나선다. “하지만 어쨌든 회사에는 가야 하니까….” 도대체 회사가 뭐길래.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 날 블레즈씨에게 일어나버린, 그가 ‘곰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조바심 내며 기다렸지만 결국 완전히 곰이 되고서야 그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된다. ‘회사원 블레즈’일 때는 몰랐던 밤의 아름다움도, 풀빛 가득한 숲이 주는 행복도 그는 이제 알게 된다.

‘블레즈 곰’은 도시를 떠나 숲으로 향한다. 털이 숭숭 난 발을 감추기 위해 신었던 장화에는 초록빛 잎사귀가 돋아난다. 금요일,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블레즈씨는 원래 곰의 삶을, 숲을 갈망했다. 온통 푸릇푸릇한 그의 집 안 구석구석에 그 힌트가 숨겨져 있다. 어쩌면 블레즈씨는 잠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곰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 없는 날, 이 청량한 그림책 책장을 덮고 잠시 생각해봐도 좋겠다. 곰까진 아니어도, 잠시 쉬어갈 나만의 ‘숲’은 무엇일지 말이다. 반복되고 지치는 일상을 보내는 어른들이 보면 더 공감할, 쉼표 같은 그림책이다.

지구를 구하는 열 가지 생각 존 B 캅 주니어 지음·한윤정 엮고 옮김 | 지구와사람
성장 지향 경제의 수혜를 받은 당신
생태계 위기 ‘책임’ 알고 ‘회개’하라

미국의 신학자·철학자 존 B 캅 주니어(1925~)는 “이 시대 신학은 생태신학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는 인간만의 세계가 아니다. 세계는 ‘생명의 그물’이다. 생명이 서로 의존하며 연결된 이 그물을 찢으며 문명 위기를 불러온 건 성장 지향의 경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가 환경을, 다른 종을 파괴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고통에 빠뜨린다. 예수는 부의 축적을 비판했는데, 지금 기독교도들은 성장의 지지자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지구를 파괴하는 걸 알면서도 무시한다. 기술적 기적이 구해주기 바라면서 맹목적으로 앞으로 향해 뛰어든다. 캅은 ‘우리는 스스로 많은 해를 끼치는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지구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구원은 ‘책임’과 ‘집단적 회개’로 가능하다. 캅은 공동체의 성취에 자부심을 갖는다면, 공동체의 실수·한계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조국의 범죄와 자기를 분리할 수 없다. 캅이 베트남 전쟁 반전 운동에 참여한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책임과 회개의 지평을 확장한다. 캅은 대량생산 같은 인류의 파괴적 행위의 결과로 먹고살아왔다면 그 행위에 가담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파괴적 행동을 강요한 상황을 바꿀 책임은 공유해야 한다. 그는 “개인적 결백은 중요한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생태계 위기에 대한 각성, 즉 ‘회심(回心)’이 필요하다.

캅의 제자인 옮긴이는 생태신학이 화이트헤드의 용어를 빌리자면 ‘세계에의 충성’일 것이라고 말한다. 캅은 화이트헤드 사상이 인간 이외 사물의 내재적 가치에 가장 충실한 아메리카 원주민, 모든 생명 존중을 강조한 슈바이처의 그것에 가깝다고 했다.

책은 캅의 짧은 원고를 모았다. 책 제목과 같은 1장이 사상의 핵심을 다룬다. ‘지혜를 위한 교육’ ‘자원을 최소화한 주거’ ‘생물권역의 번성을 위한 경제’ ‘토양을 되살리는 농업’ 같은 구체적인, 지구를 구하는 방법론도 실었다.

인간 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지음·이한중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지구상에서 인간이 한번에 사라진다면
상처 입은 지구는 회복될 수 있을까

지구촌 곳곳이 이상기후로 신음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는 폭염 이후 계속되는 대형 산불로 도시가 잿빛 연기에 뒤덮였고, 독일과 중국에서는 1000년 만의 호우로 물에 잠겼다. 화석연료를 태워 이룩해낸 눈부신 탄소문명의 대가는 기후위기다.

지구상에서 모든 인간이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상처 입은 지구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환경과학 논픽션의 역작으로 꼽히는 <인간 없는 세상>은 이 질문을 과학적으로 탄탄하게 풀어내면서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책이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이 썼다.

도시의 모든 것들은 인간의 손을 타지 않으면 금세 허물어진다. ‘인간 실종’ 이틀 만에 뉴욕의 지하철역은 침수되고, 7일 후에는 세계에 흩어져있는 원자로 수백개가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1년쯤 지나면 문명이 허물어진 자리를 자연이 채우기 시작한다. 매년 새 10억마리가량이 부딪쳐 죽던 고압전선 전류가 차단되면서 하늘을 더 많은 새들이 채운다. 10~50년 후에는 대부분 건물이 허물어진다. 500년이 지나면 교외지역 대부분은 인간의 손을 타기 전인 숲으로 돌아가는데, 플라스틱 손잡이만은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저자는 인간이 사라진 미래를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한국의 비무장지대(DMZ),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의 원시림, 터키와 북키프로스의 유적지들, 체르노빌 등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보존된 곳의 풍경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DMZ는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황폐화된 자연이 인간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순식간에 복원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적의 공간이다. 책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인간의 해악이 아닌 자연의 소중함이다.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온갖 경이로움의 상실을 생각하면 금세 아픔이 되살아난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놀라운 존재인 ‘아이’가 다시는 푸른 대지에서 뛰어놀 수 없게 된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 뒤에 남을 것인가?”

섭식일기 최미랑 지음 | 오월의봄
더 나은 세계 위한 ‘밥상 위의 저항’에
동식물·인간과의 새로운 소통 열려

매일 먹고 살고 있지만, ‘먹고 사는 일’을 생각하면 무력해진다. 허겁지겁 출근해 아무렇게나 때우는 끼니, 일거리를 털어낸 후 보상심리로 먹는 배달 음식들….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 일련의 과정들이 거대한 쳇바퀴처럼 이미 다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죄책감과 무력감에 자맥질하던 나날 속에 만난 반가운 에세이다.

책에는 “어디든 발붙인 곳에서 조그만 저항을 계속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식탁 위의 폭력을 거부하고, 쓰레기를 덜 만들기 위해” 애쓰는 마음과 실천이 그득하다. 즐겨 먹던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밥상 뒤의 보이지 않는 수고를 생각하며,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조그만 저항’들이 소담한 일상들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펼쳐진다. ‘나메살따구(남의 살)’ 없이 즐기는 섭식이 얼마나 맛깔나고 즐거운지, 그 실천을 통해 열리는 동식물 그리고 인간과의 새로운 소통이 얼마나 값진지…. 저자는 경주·서울·베이징·런던 등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겪어낸 몸의 경험으로 쏟아낸다.

“하던 대로 하고 싶은 게으른 관성과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자연스럽다’ ‘필수적이다’ 같은 말로 포장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대목을 오래 곱씹었다. 생존을 위한 섭식은 당연히 살생을 동반하기에, 다른 종에 대한 착취 역시 생존의 일부라고만 생각하던 습관을 반성했다. 관성 속에서만 ‘먹고 사는 일’을 사고하던 습관이 오랜 무력감의 주범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나의 섭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감각을 일깨우는 책이다. 타자에 대한 존중으로 ‘섭식’을 고민하기 시작해,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일기’로 끝맺은 저자의 여정이 주는 선물이다. 채식 지향 여부를 떠나, ‘먹고 사는 일’을 그저 무력하게 반복하고 있는 모두에게 권한다.

풀잎 월트 휘트먼 지음·허현숙 옮김 | 열린책들
시인의 감각, 인간 종의 경계를 넘어
세상의 모순, 궁극의 긍정으로 삭여내

“나는 나 자신을 찬양한다”니. 시인의 자아는 원래 이토록 비대한가.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라도 하고 싶은 건가.

월트 휘트먼(1819~1892)이 1855년 자비로 출판한 이후 평생에 걸쳐 가다듬었다는 시집 <풀잎>에 담긴 ‘나 자신의 노래’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청교도적 엄숙주의가 지배했던 19세기 중반 미국을 떠올리면 당황스러운 구절은 한둘이 아니다. “나는 숲가의 강둑으로 가서 어떠한 가면도 쓰지 않고 벌거벗는다, /나는 내게 와닿는 것에 미칠 것 같다.” “나는 육체와 식욕을 신임한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기적이다.”

휘트먼은 ‘나 자신’을 한껏 부풀린다. 부풀다 보니 ‘나 자신’은 세상 만물과 연결된다. “이제까지 태어난 모든 사람은 또한 나의 형제”라고 부른다.

시인의 감각은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를 넘는다. 풀잎은 “하느님의 손수건”이자 “불변의 상형문자”로 인식한다. 바위 위에서 해바라기하는 방울뱀, 꿀을 찾는 검은 곰, 오래된 나무뿌리에서 나와 흐르는 개울물, 외로운 평원 위로 드리운 해 질 녘 그림자까지 노래한다. “나는 물질과 비물질을 마음껏 즐긴다, /어떤 경비병도 나를 막지 못하며, 어떤 법률도 나를 저지할 수 없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삶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고 인식한다.

여러 장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학교 교육도 마치지 않은 휘트먼이 세상의 비참에 대해 몰랐을 리 없다. 그래도 휘트먼은 젊은 미국을 긍정한다. 세상의 모순과 그늘을 끌어안고, 궁극의 긍정으로 삭여낸다. 초인 혹은 성인이어야 가능한 힘이다. 폭염과 팬데믹에 포위된 이들에게 19세기 시인이 전하는 에너지다.

주체적이지 못한 사랑 거부한 여성
‘녹색 광선’ 앞에서 진실을 찾을까

소설의 주인공은 ‘헬레나 캠벨’이라는 씩씩한 여성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캠벨은 샘 멜빌과 시브 멜빌이라는 든든한 ‘팔불출’ 삼촌과 함께 산다. 삼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캠벨의 행복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캠벨이 18세를 앞두자 삼촌들은 조카에게 맞는 남편감을 찾는다. 마침 아리스토불러스 어시클로스라는 젊은 학자가 이들의 눈에 든다. 성대한 결혼식을 치를 생각에 들뜬 삼촌들에게 캠벨이 선언한다. “저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녹색 광선을 보기 전에는.”

‘녹색 광선’은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마지막 찰나에 볼 수 있다는 광학 현상이다. 소설의 배경인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녹색 광선을 본 사람은 사랑의 감정에 속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사랑에 속기를 원하지 않는 캠벨은 결혼 전에 녹색 광선을 보고야 말리라고 마음먹는다. 삼촌들은 캠벨의 행복한 결혼을 위해 기꺼이 녹색 광선을 보기 위한 여정에 동참한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여정 중에 만난 어시클로스는 캠벨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는 장광설을 늘어놓기 바쁘다. 녹색 광선은 맑은 하늘에서만 볼 수 있다지만 스코틀랜드에는 원래 안개가 자주 낀다. 그 사이 캠벨의 눈은 자꾸만 다른 남자를 향한다. 그리고 캠벨 일행은 마침내 녹색 광선 앞에 선다. 캠벨은 녹색 광선을 보게 될까?

초록색 표지에 금빛으로 새겨진 원제가 눈길을 끄는 책이다. 주체적이지 못한 사랑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사랑스럽고, 캠벨 일행의 여정에 등장하는 스코틀랜드의 대자연과 중세 고성의 묘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2년 가까이 해외 휴가 계획을 접어야 했던 우리들에게 여행을 하는 듯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선명수·김종목·이혜인·김지혜·백승찬·유경선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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