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용암호학 - 알프레드 J 메네제즈 [이영의 내 인생의 책 ②]
[경향신문]
“뭐요? 암호학을 전공했다고요? 간첩들이 쓴다는 그 암호요?”
1010235. ‘삐삐 세대’만이 해독할 수 있는 ‘열(10)렬(10)히(2)사모(35)’한다는 의미의 암호다. 내 전공은 이런 암호를 만들고 해독하는 학문이다.
1990년대 초, 국내 암호학 전문가는 서른 명 남짓이었다. 관련 서적이나 논문을 구하기조차 무척 어려웠다. 가끔 외국 학회에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연락해 복사본이라도 구하러 갔다. 그래서 학위 과정 내내 내 책꽂이에는 겉표지가 허술한 제본 책들이 가득했다.
박사과정이던 1990년대 중반, 당시 존재하던 암호 관련 이론이 총망라된 <응용암호학(Handbook of Applied Cryptography)>이 출간되었다. 제본이 아닌 원본으로 구매했다. 보는 것만으로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 보안 1세대가 되어 정보보안 벤처기업을 20년간 운영했다. 인생의 절반을, 그리고 청춘의 대부분을 암호를 붙들고 보안 세상(Security World) 속에서 보낸 것이다.
암호학이란 학문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는 늘 컴퓨터를 끼고 사이버 세상에서 살았다. 보이지 않는 세상, 만져지지 않는 세상이었다. 24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분주히 오가는 동안에도 <응용암호학>은 늘 나와 함께했다. 평생 이공계생이 문과생으로 가득한 여의도에 와서 혼란스러울 때는 ‘정치라는 암호를 명쾌하게 풀어줄 비법서는 어디 없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도 의원실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생 최고의 로봇은 ‘태권V’이듯, 나를 평생 보안인으로 살게끔 이끈 암호학 서적이야 말로 내 인생 최고의 책이기 때문이다.
이영 | 국민의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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