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긴 물건 찾아가시오" 최고금리 인하에 전당포 줄폐업

윤진호 기자 2021. 7.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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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최고금리 44%→20%.. 대부업체인 전당포 수입도 급감

박모(41)씨는 지난 15일 서울 용산의 한 전당포에서 예전에 쓰던 휴대전화를 맡기고 10만원을 빌렸다. 박씨는 “생활비 쪼들리면 여기서 빌렸는데 이것도 마지막일 듯싶다”고 했다. A전당포에서 “이젠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올해 초 개인회생절차를 졸업하고 불법 사금융에는 손을 안 대기로 마음먹고 급전이 필요할때마다 전당포를 찾았는데 문을 닫는다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다음 달 15일 폐업을 앞두고 있는 서울 종로구의 한 전당포. 22일 이 전당포 사장은 돈을 빌려간 채무자들에게 담보로 잡아 둔 물건을 찾아가라고 연락을 돌리고 있었다. /김지호 기자

지난 7일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떨어진 후 문을 닫는 전당포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저신용자들이 돈이 필요할 때 주로 찾는 전당포는 모두 대부업체들이다. 1999년 전당포영업법이 폐지되면서 대부업권에 귀속됐는데, 전당포들은 대부업체 중에서도 영세 대부업체들로 분류된다.

최고 금리 인하로 남는 게 없어지는 대부업체들이 줄폐업을 해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은 결국 불법 사금융에 손을 벌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최고 금리 인하는 선의라고 해도 시장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책”이라며 “저신용자들은 결국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데다, 금리 인상까지 되면 이런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당포 메카 종로마저…줄줄이 폐업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최고 금리가 연 44%에서 24%로 낮춰지는 동안 대부업체 수는 1만4014개(2010년)에서 8455개(2020년)로 39.7% 감소했다. 금은방이 몰려 있는 ‘전당포의 메카' 종로5가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재 종로2가부터 동대문역까지 약 3.6km의 대로변엔 총 9개의 전당포가 있는데, 본지 기자가 22일 오후 9곳을 모두 방문해보니 2곳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B전당포는 문이 열려 있었지만 다음 달 15일 폐업을 앞두고 담보로 잡아놓은 물건 10개를 정리 중이었다. B전당포 사장 이모씨는 “집 하나 팔아서 전당포 차렸는데 이번 달엔 보름간 3명 찾아왔다”며 “가게 문을 열수록 적자만 커져서 담보 빌려놓은 손님들한테 물건 찾아가라고 연락을 돌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폐업을 고려 중인 인근 C전당포 사장 역시 “임차료 내고 하면 남는 게 없다”며 “표 받으려고 한 최고 금리 인하는 결국 전당포에서조차 돈을 못 빌리는 취약계층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전당포 폐업 행렬은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보루인 영세 대부업체에서조차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저소득·저신용자들에게 직격탄이다. 대부업체가 최근 10년간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동안 이용자 수도 같은 기간 220만7000명에서 138만9000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최고 금리가 20%로 떨어진 첫해인 올해는 대부업체 수와 이용자 수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 당국 “최고 금리 인하 잘 정착”…현장선 “어림없는 소리”

이런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최고 금리 인하는 시행 일주일이 지난 현재 시장에 안착해 나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저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 카드·캐피털사, 대부업체의 대출 추이에서 특이 동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업권에선 최고 금리 인하 전엔 일주일간 일평균 237억원 대출이 나갔는데 이후 245억원으로, 대부업권에선 27억원에서 34억원으로 늘었다는 것이 근거였다.

한국은행 역시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채무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차주의 비중은 하락세를 지속했다”고 분석했지만, 이는 대부업 등을 집계하지 않은 경우로, 실제 저신용자들의 금융 리스크는 한은 분석보다 심각하다는 것이 금융권 현장 관계자들 지적이다.

금융 당국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최고 금리 인하에 따른 저신용자 축출 효과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기존 저신용자들은 대출 만기가 다가올 때마다 대출 절벽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상가상 저신용자들을 노리는 불법 사금융은 더욱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1~2월에 일평균 700여 건이던 불법 대부 광고는 3월엔 1447건으로 급증한 후 매달 1000건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지난달엔 1067건으로 줄긴 했지만 이달 들어 다시 급증했다. 7월 1~15일간 일평균 1364건의 불법 대부 광고가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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