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고려불화'.. 독보적 예술성에 취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주요 작품 77점 전시
'진경산수화 걸작' 정선의 '인왕제색도'
금강산 그린 '금강전도'와 비교해볼 만
예술성·희소성 겸비 '수월관음도' 등
대중들에게도 관람 기회 생겨 '주목'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격하게 아끼고, 어디 내놓아도 꿀릴 것 없는 예술품이라 자부하는지라 더욱 특별한 유물이 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는 우리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 하나의 장르가 된 진경산수의 절정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수월관음도’는 외국에서 우리보다 먼저 예술성을 평가한 고려불화다. 전시회에서 영상을 활용해 세 작품의 관람 편의를 높인 것도 빼어난 이런 가치를 고려한 것일 터다.
◆‘공적인’ 금강전도, ‘사적인’ 인왕제색도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은 인왕제색도에 흔히 붙은 수식어다. 같은 평가를 받는 정선의 또 다른 작품이 ‘금강전도’(국보)다. 두 작품 모두 이 회장의 수집품인지라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이 공표되었을 때 어느 것이 기증 목록에 오를지가 관심거리였고, 누군가는 둘 다 기증되지는 않을까란 기대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이번 특별전의 사실상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 인왕제색도를 감상할 때 금강전도를 함께 떠올리며 이런저런 면모를 비교해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금강전도는 정선이 59세이던 1734년작이고, 인왕제색도는 76세이던 1751년작이다. 각각 장년기, 노년기의 대표작인데, 창작의 계기에는 차이가 있고 그 때문에 인상이 다르다.
금강전도는 당시 유행하던 산수유람 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 전국의 각지가 명승이란 이름으로 주목을 받았고 해당 지역의 모습을 전하는 회화, 감상 등을 표현하는 문학과 결합해 소개됐다. 최고의 명승은 단연 금강산이었다. “금강산 진경산수를 창안하고 정립한 당사자”인 정선이 “내금강 대부분의 권역을 한 장면으로 포착해 그린 대작”이 금강전도다. “자신을 위해 그린 게 아니라 주문자를 위해서 그린 남을 위한 그림”이었던 셈이다.
고려불화는 최고의 예술성과 더불어 희소성으로 주목받는 유물이다. 세계를 다 뒤져도 전하는 것은 약 160점뿐이라고 한다. 워낙에 귀하고, 그런 이유로 몸값이 워낙 비싸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중박조차 내내 갖지 못하다가 2016년 수월관음도 한 점을 기증받으면서 고려불화 소장처로 이름을 올렸다. 사정이 이러니 대중들이 접하기 쉬운 유물이라 할 수도 없다.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 천수관음보살도, 수월관음도가 한 점씩 포함되어 중박은 소장품의 양과 질을 높이고, 대중들은 보다 수월하게 관람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건 특히 반가운 일이다. 천수관음보살을 그린 고려불화는 이 기증품이 유일하다니 더욱 특별하다.
고려불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일본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예술품이지만 지금은 일본과 더 인연이 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해지는 160여 점의 대부분인 130여 점이 일본에 있다.
고려 당대에는 우리에게 훨씬 많았을 이 특별한 작품들이 7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째서 일본에 더 많이 있을까. 긴 시간 온전하게 보관하는 게 쉽지 않고 전쟁, 화재 등의 희생물이 되기 십상인 종이 재질의 유물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는 조선 전기의 회화도 드물다. 이런 사정이 일본이라고 예외가 아닐 텐데 일본에 고려불화가 더 많이 남은 이유가 무엇일까. 동국대 최응천 교수는 “일본은 전쟁 중에도 사찰은 파괴하거나 약탈하지 않은 경향이 강해 헤이안 시대(794∼1185년), 가마쿠라(1185~1333년)의 유물도 상대적으로 많이 전한다”고 말했다.
전해지는 유물이 많다 보니 고려불화의 가치를 제대로 알린 것도 일본이었다. 그 시작으로 꼽히는 게 1978년 나라 야마토문화관에서 열린 ‘고려불화 특별전’이다. “한국미술사 연구에 한 획은 긋는 기념비적 전시회”로까지 꼽히는 특별전은 이전까지 중국의 송나라, 원나라의 것으로 여겨지던 고려불화의 국적을 회복시키고,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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