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역사 세운 산악인 김홍빈,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다

2021. 7. 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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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8시 58분(이하 한국시간) "장애인 세계최초 김홍빈 히말라야 14좌 등정 성공"이라는 히말라야발 무선통신이 대한장애인체육회 등에 긴급히 전해졌다.

모두가 감격의 환호를 지르고 난 뒤,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인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은 코로나로 힘겨운 국민을 위로하고 용기를 갖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일주일 동안 숨 가쁘게 이어졌던 수색 작업은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지만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보여준 불굴의 도전 정신은 후배 산악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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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힘내십시오" 격려해주던 김 대장, 이제 국민들 가슴에
장애인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불굴의 인간승리' 남겨
세계 산악 역사에서 불굴의 업적을 이루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한 김홍빈 대장

[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 “코로나 19로 지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장애인 김홍빈도 할 수 있으니 모두들 힘내십시오!”

18일 오후 8시 58분(이하 한국시간) “장애인 세계최초 김홍빈 히말라야 14좌 등정 성공”이라는 히말라야발 무선통신이 대한장애인체육회 등에 긴급히 전해졌다. 모두가 감격의 환호를 지르고 난 뒤,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인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은 코로나로 힘겨운 국민을 위로하고 용기를 갖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메시지는 결국 국민들을 향해 남긴 마지막 말이 될 공산이 커졌다.

이번 브로드피크(8047m) 등정으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14봉우리에 모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 그는 하산하던 도중 실종됐다. 낭보를 전한지 불과 5시간만에 조난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족, 동료,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불굴의 의지로 온갖 역경을 이겨낸 초인적인 행보를 이어갔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무사 귀환’이라는 기적을 쓸 것이라고 기원했다.

하지만 이런 기원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김 대장은 두 차례 추락을 당하고도 버텼지만 조난 현장의 미숙한 산악인들이 구조에 나서거나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마저 외면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 24일과 25일 파키스탄 군 헬기 2대와 중국의 구조 헬기 2대로 항공 수색 작업을 펼쳤으나 육안으로 김 대장을 찾아내지 못 했다. 헬기에서 촬영한 영상에서도 김 대장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기대했던 항공 수색에서 큰 성과가 없는 가운데 26일 김 대장의 가족들은 큰 결단을 내렸다. 광주시 사고수습대책위원회는 26일 김 대장 가족(배우자)의 의사를 존중해 수색 작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김 대장은 브로드피크 등정에 앞서 “내게 사고가 나면 수색 활동에 따른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 지금까지 주위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죽어서까지 주위 분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김 대장의 가족들도 그의 유지를 존중해 수색 중단을 결정했다.

일주일 동안 숨 가쁘게 이어졌던 수색 작업은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지만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보여준 불굴의 도전 정신은 후배 산악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게 됐다.

김 대장은 필생의 위업이었던 히말라야를 완전정복하고 산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가 산악인으로서 걸어온 길은 모두 역사가 됐다.

전남 고흥 출신의 김 대장은 27살의 전도유망한 산악인으로 성장한 1991년 5월22일,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 매킨리(6194m)의 데날리 패스(5700m)에 쳐놓은 텐트 안에 있다가 조난을 당했다. 정신을 잃고 몽환적인 상태로 구조될 때까지 며칠동안 버텼지만, 극심한 동상을 입었다. 열흘 만에 온전히 깨어나 보니 열 손가락을 모두 절단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판정을 받았다. 더이상 산을 탈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아든 그는 엉덩이 살을 옮겨 붙이는 등 무려 7번이나 수술을 했으나 소용없었다.

우울감과 좌절감에 빠져 살던 김홍빈은 장애인 동계올림픽 출전을 통해 워밍업을 시작했다. 고산등반을 위해 스키를 배웠다가 장애인 판정을 받기 전인 1989년 동계 전국체전 노르딕에서 2위, 1991년초 바이애슬론 우승까지 한 하기도 한 강철 체력과 운동감각은 서서히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2002년 동계스포츠 국가대표를 자진반납하고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해 2006년 가셔브룸2봉부터 14좌 완등을 시작했다. 2007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등정은 14좌 완등의 확신을 심었다. 2009년엔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는 기록을 세웠고, 결국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꿈은 가셔브롬2봉 이후 15년만에 이루어졌다.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살아서 모든 꿈을 이뤘고, 이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게 됐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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