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갈매기'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한 사람의 날갯짓

박지현 2021. 7. 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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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갈매기' /사진=필앤플랜
[파이낸셜뉴스] 나쁜 일은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평온한 삶을 자신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벌어진 사건을 바라볼 때에도 내 일이 아니라며 한발짝 물러날 것이 아니다.

성폭력 범죄는 성별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것. 그 마음의 뿌리에서 폭력이 시작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는 순간, 제 3자들은 그것으로 폭력적인 일이 발생됐고 마무리되었다 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피해자가 침묵하는 순간 폭력은 가해자의 승리로 완성된다. 그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목도하거나 방관하고 싶지 않다면 피해자가 미약하나마 자신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내었을 때 그의 존엄을 지키고 존중하려 노력해야 한다. 무지함으로 인해 나 역시 그 사람에게 2차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여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낸 한 사람이 있다. 수십년 간 수산시장 바닥에서 그 자신은 입에 대지도 못하는 생선들의 머리를 쳐 가며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청춘을 다 불사른 중년의 엄마 '오복'. 첫째 딸의 결혼을 위해 없는 형편에 쌈짓돈을 모아 예단비를 겨우 마련하고 상견례 자리에서 예비 사돈의 눈치를 보았다. 상견례를 잘 마치고 한숨을 돌리며 시장 상인 동료들과의 수산시장 재개발 반대 모임에 참석한 그는 그날 밤 시장의 동료이자 재개발 반대 위원장인 '기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내상을 입는다. 처음엔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집에 홀로 누워 서러운 눈물을 훔쳤지만 이내 일어나 주변 동료들의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오히려 오복에게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다. 시장 재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분란을 일으켜서 뭐하냐, 젊은 사람 발목 잡아 좋을 게 뭐가 있냔다. 가해자에게는 비난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눈치보면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상황. 수십년 간 일해온 시장 바닥이 낮설어지고 옆 가게 친구들에게 배신감이 밀려온다. 주위 모든 사람들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상처를 덧입히는 상황. 가만히 꾹 참아야 하나 서러움이 밀려오는 그 때 딸들이 나선다. 경찰서에 난생 처음 고소장을 접수했더니 그동안 시침 뚝 떼던 가해자 기태가 가게에 나타나서 펄펄 뛰고 오복은 더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복은 자신의 존엄을 찾기 위해 애쓴다. 물증과 증인이 불충분해 사건이 무혐의 처리될 수 있다는 경찰의 말에 주위 사람들에게 증언을 부탁하지만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하며 오복을 피하는 이들과 오히려 그녀를 적대시하는 이들에게 더욱 상처받는다. 결국 지쳐버린 오복은 가게를 접고 시장을 떠난다. '성폭력'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피해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도 성폭력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음으로서 행여 발생할 수 있는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섬세하게 구성됐다. 10초 남짓의 블랙아웃 화면을 통해 사건이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을뿐이다. 감독은 성폭력 장면이 영화에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성폭력 사건 이후인데 이를 매우 현실적이면서 담담하게 그려낸다. 주위의 2차 가해와 더불어 억울함은 100% 해결되지 못한 채 어설프게 사건이 종료되는 과정까지도 현실적이다. 영화는 가해자 앞에 다시 선 오복의 모습으로 마무리 되는데 감독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영화는 가해자인 동료 상인 '기택'에게 별다른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데 다만 '기택'의 가해 행위와 행위 이후 시장 상인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오히려 기세등등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동안 성폭력 가해자에게 유독 너그러웠던 사회 인식에 대한 날카롭게 문제제기한다.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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