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언론의 '전력 대란 위기설'..다음 달에도 되풀이 될까

김정수 2021. 7. 2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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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
언론발 '전력대란 위기설 광풍'은 사실무근
"원전 덕분에 고비 넘겼다"며 탈원전 공격
실제 실적보면 원전 무관하게 위기는 없어
게티이미지 뱅크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언론발 ‘전력 대란’ ‘블랙아웃(대정전) 위기’ 광풍이 이번 주 들어 다소 잠잠해진 듯하다. 전력수급 위기설 전파에 앞장 선 언론들은 원전이 동원된 덕분에 고비를 넘겼다며 탈원전을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국민들은 이들이 바라는대로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원전에 특별한 고마움을 느껴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원전 동원과 무관하게 전력 수급 위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인성호(세 사람이 있으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란 말처럼 지난 주 전력수급 위기설은 보수·경제 매체들이 입을 모아 그려낸 호랑이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 서울의 한 코로나 선별 진료소가 폭우에 의한 누전 위험 때문에 운영을 중단한 것이 전력공급 중단을 우려한 조처로 왜곡됐고, 일부 언론은 정전이 올 것에 대비해 냉장고를 비우고 대피할 호텔을 물색한다는 주민까지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들 언론이 유령과도 같은 위기설로 국민을 불안케 했던 이유는 탈원전 비판에 앞장서온 한 원자력공학자가 잘 말해준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6일 한 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전력수급 불안은 오늘로 끝나는 일이 아니므로 원전 정책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을 재고하라는 요구다.

보수·경제지들이 전력 수급 위기설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전력 공급예비율 10%’ 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공급예비율은 공급 가능한 전력량에서 실제 수요를 뺀 공급예비력을 수요로 나눈 백분율이다. 전력 수요가 예기치 않게 급증하거나 발전기의 고장 등으로 발전량이 갑자기 줄어드는 경우에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여유분인 셈이다. 조선일보는 “블랙 아웃(대정전)에 대비하기 위해선 통상적으로 전력 예비율은 1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며 ‘공급예비율 10%’를 대정전으로 갈 위험을 막기 위해 지켜야 하는 기준선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이들이 불지핀 위기설의 시작점인 ‘공급예비율 기준’부터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한국전력거래소가 전기사업법에 근거해 만든 전력시장운영규칙은 예비율이 아니라 예비력을 기준으로 전력의 수급 상황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규칙은 예비력이 5.5기가와트(GW) 밑으로 내려갈 때부터 전력수급경보 발령을 위한 준비 단계에 들어가도록 하고 있다. 예비력이 5.5GW 이상이면 안정권으로 본다는 것이 전력거래소의 설명이다. 예비력 5.5GW를 예비율로 바꿔보면, 이번 여름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 94.4GW를 적용해도 5.8%선이다. 보수·경제지들이 내세우는 10%에서 한참 아래다.

실제 지난주 전력수급 실적은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예비율 10%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비상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주에 시간 평균 공급예비력이 가장 적었던 23일 오후 5시에도 예비력은 9.946GW를 기록했다. 예비율로는 11.1%였다. 예비력을 5분 단위로 세분해 보면 23일 오후 4시55분에 9.116GW까지 떨어졌지만, 이 때 예비율도 10.08%를 기록해 10% 밑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지난 주 중 전력 공급을 시작한 신월성 1호기·신고리 4호기·월성 3호기 등 원전 3기의 설비 용량은 모두 3.1GW이다. 이들 원전이 없었더라도 공급 예비력은 6GW를 넘어 안정권을 벗어날 걱정은 없었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공급예비력 5.5GW 기준이 너무 낮은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기준은 비슷한 여건의 다른 나라에 비해 오히려 엄격한 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이 지난 5월25일 작성한 보고자료 ‘2021년도 하계 및 동계 전력 수급 전망과 대책에 대해서’를 보면, 일본은 예비율 3%를 안정적 공급에 필요한 최소 예비율로 보고 있다. 예비율이 3%를 밑돌 경우 ‘핍박경보’를 발령해 소비자들에 절전을 요청하고, 그렇게 대응한 뒤에도 1% 아래로 내려갈 우려가 있으면 계획 정전 등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텍사스도 한국과 비교할 만한 곳이다. 연방정부 규제를 받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에 주변의 주들과 전력망을 연계하지 않아 전력망으로 보면 한국과 비슷한 섬과 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비용량도 107GW로 한국(133GW)과 비슷한 수준이다. 3단계로 구분된 텍사스주 전력당국의 비상 단계는 예비력 2.3GW부터 시작된다.

텍사스의 전력 비상단계 기준이 되는 예비력은 운전 중인 발전기에서 확보해야 하는 ‘운전 예비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수요가 급증하는 비상 상황에 긴급히 대응할 수 있도록 운전 중인 일부 발전기를 100% 출력으로 돌리지 않고 여유를 남겨 놓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전력시장운영규칙에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유지해야 하는 예비력은 주파수 제어 예비력 0.7GW와 1·2차 예비력 2.4GW를 포함해 3.1GW다. 한국이 더욱 여유 있게 예비력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부는 지난달 말 발표한 ‘여름철 전력 수급 전망 및 대책’에서 이번 여름철 최대 전력 수요는 8월 둘째주에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능력이 99.2GW인 상황에서 최대 전력수요가 94.4GW에 도달하면서 공급 예비력은 4.8GW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처럼 이때에도 전력 위기설이 또 다시 제기될까? 4.8GW는 전력수급경보의 ‘준비’ 단계에 들어가는 기준이지만, 전력거래소는 실제 준비 단계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설명해왔다.

이런 설명은 민간 전문가들의 판단과도 일치한다. 수급경보 준비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발전기 출력 확대, 에너지저장장치(ESS) 충·방전 시간 조절, 수요반응(DR) 자원 동원 등을 통해 7GW 가량의 추가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예비력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다 돈”이라며 “한국의 비상상황 준비 기준인 공급예비력 5.5GW와 별도로 가용한 예비력을 모두 합하면 일부에서 우려하듯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발전설비 건설에 적어도 5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설비 예비력을 가지고 매년 과부족을 논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예비력은 수요의 증가 경향, 설비의 특성 등을 고려해 과부족 없이 적정하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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