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반전은 없었다' 이정은 "한국 팬께 태극기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김현지 2021. 7. 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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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라운드 챔피언조로 함께 경기한 리디아 고(오른쪽)와 경기 후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는 이정은6(왼쪽)

[뉴스엔 김현지 기자]

반전에 또 반전은 없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네번째 메이저 대회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총상금 450만 달러)' 최종일 한국 골프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날이었다.

7월 25일 오후(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 르뱅의 에비앙골프장(파71, 6527야드)에서 치러진 LPGA 투어 '에비앙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많은 한국 팬들은 이정은6(이하 이정은)의 낙승을 기대했다.

이유는 이정은이 대회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물오른 샷감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대회 첫날은 버디 7개와 보기 2개를 묶어 5언더파를 쳤다. 선두와 1타 차로 출발했다.

2라운드부터는 이번 대회를 이정은이 지배하는 듯 보였다. 보기 없이 버디만 10개를 솎아내며 10언더파 61타를 작성했다. 이는 메이저 대회 18홀 최소타 타이 기록이다. 또한 36홀 127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남녀 메이저 대회 통틀어 최소타 기록이다. 종전 최소타 기록은 전인지의 129타였다.

3라운드에서는 보기가 3개 기록됐지만 샷 이글까지 나오며 분위기도 한껏 끌어올렸다. 단독 2위 노예림(미국)과는 5타 차. 3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와는 6타 차, 공동 4위 그룹을 형성한 이민지(호주), 후루에 아야카(일본), 파자라 아난나루칸(태국) 등과는 7타 차였다.

일반적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5타 차 선두로 최종라운드를 나설 경우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LPGA 투어는 5타 차 선두로 나설 경우 우승 확률이 84.5%라고 했다. 즉, 역전패를 당할 확률은 15.5%다.

또한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선수 스스로가 무너져서다. 이정은은 3일 내내 견고한 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도 적어보였다. 모두가 이정은의 우승을 점쳤다. 그러나 경기 초반,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최종라운드 1번 홀(파4)에서 이정은이 버디를 낚을 때 까지만해도 좋았다. 하지만 이정은은 이후 급격하게 무너졌다. 3번 홀(파4)부터 5번 홀(파3)까지 3개 홀에서 연속으로 보기도 범했다. 3개 홀 모두 티샷 난조다.

샷이 따라주지 않자 당황한 탓인지 퍼트까지 말을 듣지 않았다. 짧은 버디 퍼트도 홀 컵을 외면했고, 겉잡을 수 없었다. 결국 8번 홀(파3)에서 5타 차 2위로 출발한 노예림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노예림은 약 5m 거리에서 먼저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채 1m도 안되는 짧은 파 퍼트를 남겨뒀던 이정은은 이마저도 놓치며 보기를 범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하지 않았을 법한 실수들이 계속해서 나오자 이정은은 평정심을 잃었다. 9번 홀(파5)에서도 미스샷이 나왔다. 빨리 잃었던 타수를 만회하고자 했던 욕심이 컸던 터다. 투온 공략을 했는데, 두번째 샷이 그린을 훌쩍 넘어갔다.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충분히 버디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이없는 칩샷 미스가 나왔다. 공이 그린에 올라가지 못하고 바로 앞 프린지에 뚝 떨어졌다. 결국 퍼터를 들고 핀에 붙이고자 했지만, 이 역시도 마음 처럼 되지 않았다. 결국 이 홀에서도 보기로 마쳤다.

전반 9개 홀에서 이정은은 1번 홀 버디가 전부였다. 나머지 8개 홀 중 5개 홀에서 보기를 범했다. 지난 3일간 56개 홀에서 기록한 보기 수와 같다. 그정도로 고전했다. 선두 자리도 내어줬고, 우승 경쟁자들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난 채로 후반 홀에 나섰다.

새로운 마음으로 후반 홀에 들어선 이정은은 12번 홀(파4)에서 드디어 첫 버디 기회를 잡았다. 세컨드 샷을 핀과 2m 거리에 붙였고,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결국 두번째 버디가 나왔다.

상승세를 좀 더 끌어올렸으면 좋았을텐데 다시 파 세이브에 급급해졌다. 버디를 낚아야하는 15번 홀(파5). 운도 따르지 않았다. 투 온을 노렸는데, 그린 앞 왼쪽 경사로에 위치한 벙커쪽에 떨어져 벙커 주위를 따라 반바퀴 돌더니 그대로 벙커에 빠졌다.

포대 그린이지만 높이가 그리 높지 않고 벙커 가운데 쪽에 공이 놓여 어렵지 않게 그린에 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됐다. 하지만 공은 그린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경사를 타고 굴러 러프에 떨어졌다. 파세이브에 성공한 것이 다행이라고 안도해야했다.

이정은이 점차 우승과 멀어져보이던 이 때, 또 다시 반전이 일어나는 듯 보였다. 갑자기 이정은의 샷감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16번 홀(파3)에서 티 샷을 2m 이내 거리에 붙여 버디를 솎아내더니 17번 홀(파4)에서는 약 1m 거리 버디 퍼트로 2개 홀 연속 버디를 낚았다.

이정은에 7타 차 공동 4위로 출발해 최종합계 18언더파로 먼저 경기를 마친 이민지에 1타 뒤진 채로 18번 홀(파5)에 나선 이정은. 최종라운드에서 유난히 파5 홀에서 고전했던 이정은은 이 홀에서 또 버디를 추가하며 3개 홀 연속 버디로 최종합계 18언더파로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쳤다.

승부를 연장전으로 이어간 것이다. 후반 3개 홀에서 이정은의 다시 돌아온 물오른 샷감에 다시금 우승에 대한 희망이 커졌다. 반전에 또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정은이 너무 지쳐있었다.

승부는 18번 홀에서 치러진 연장 첫 홀에서 갈렸다. 따지자면 두번째 샷만에 승부가 갈렸다.

최종라운드에서 파5 홀을 모두 쓰리온 공략하던 이민지는 연장전에서만큼은 날카로운 투온 공략으로 먼저 샷을 핀에 붙였다. 뒤이어 두번째 샷으로 투온을 노렸던 이정은. 이정은의 두번째 샷은 그린에 올라가지 못하고 그린 앞 워터해저드에 빠졌다. 이정은은 보기를 기록했고, 이민지의 짧은 이글 퍼트는 빗나갔지만 가볍게 버디를 낚으며 우승했다.

사실 이번 대회 최종라운드는 메이저 대회 치고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리오나 매과이어(아일랜드)는 최종일 무려 10언더파를 쳤다. 메이저 최소타 타이 기록이다. 2014년 이 대회 1라운드에서 김효주가 기록했고, 올해 2라운드에서 이정은, 4라운드에서 매과이어까지 총 3명이다.

그런가하면, 이민지도 보기 없이 버디만 7개를 솎아내며 7타 차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톱10으로 경기를 마친 선수 중 최종일 5타 이상 줄인 선수만 5명이나 된다.

그래서인지 이정은의 이번 대회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이정은은 "전반에 워낙 샷과 퍼트가 안돼 보기가 많이 나왔다.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곳에서 실수를 많이 했다"고 하며 "후반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9홀이니까 마음을 다 잡고 스윙 리듬이나 퍼팅 스트로크에만 신경을 집중하며 버디를 잡았다"고 했다.

막판 3개 홀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이어간 이정은. 그는 최종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낚은 것 처럼, 연장전 역시 버디로 승부를 보려했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그는 "마지막 홀은 투온이 되는 홀이라 버디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이 좀 힘들었던 것 같다"고 하며 "그래서 미스샷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오늘의 아픔은 또 다른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법. 이정은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독였다. 그는 "마지막 3개 홀에서 버디를 만들어 연장전에 나간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아직까지 아쉬움은 좀 남는다. 성과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믿고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다. 이정은은 "연장에서 진 것도 아쉽지만, 우승해 한국 팬분들께 대회장에서 태극기 내려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좀 더 아쉽다"고 했다.(사진=이정은)

뉴스엔 김현지 928889@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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