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평온의 숲 '곰배령'

이은지 기자 2021. 7. 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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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활엽수와
아기자기한 야생화로부터
조화를 배웠다.

곰이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의 곰배령

●발길조차 까다롭지

결단코 계획형은 아니다.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충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을 맞이했다. 그저 오르면 된다 생각했거늘, 까다로웠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곰배령은 지정된 탐방로에 한해 제한적 탐방제를 운영하고 있다. 오르기 위해서는 개방 시기(하·동절기)와 탐방 신청 방법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절기는 매년 4월20일 경에 시작된다고 하니, 문득 곰배령의 첫 인상은 한껏 무르익은 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두 번째 단계, 예약 전쟁(?)이다. 선착순 인터넷 신청으로 하루에 단 450명만을 초대한다. 자리가 없다고 좌절하지 말 것. 숙박객에 한해 450명 추가 입산이 가능하다. 왜 이리 나누었나 했더니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 오르기도 전에 곰배령의 속살을 엿봤다.

등산 시작점인 산림생태관리센터
입산허가증은 등산 내내 지녀야 한다

전적으로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 하나 해볼까. 곰배령 입구는 두 곳으로 나뉜다. 예약도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산림청에서 각각 받는다. 일찌감치 예약을 완료하고 마음 놓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반대쪽을 예약했단다. 여행사에서 맞게 예약했는지 거듭 확인해 주어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개별적으로 찾는 이들 중에는 입구를 헷갈려 한참을 돌아가는 이들도 수두룩하다고. 오늘의 출발지는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산림생태관리센터다. 입구에서 예약 내역과 신분증을 제시하고 파란색 입산허가증을 받았다. 트레킹 도중 확인할 뿐만 아니라 등산 후 반납해야하니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 것. 자, 이제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활엽수가 그늘을 드리우는 산길

●수수하니 아름다운

초심자라도 걱정 없다. 등산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힘든 여정을 떠올렸는데 곰배령은 호흡마저 편안했다. 왕복 10km의 길이 산책로처럼 완만하게 이어져 있어 누구나 무난하게 오를 수 있다. 쏴아- 계곡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천천히 걷는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 중간 초소가 나온다. 입구에서 받은 입산 허가증을 보여주고 강선마을을 지났다. 이곳이 마지막 화장실임을 절대 잊지 말 것.

입산허가증을 확인하는 첫 번째 다리

산길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거진 활엽수림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시원한 산 공기가 주변을 감싼다. 아름답고 쾌적하다. 바쁜 일상을 잊고 오롯이 자연을 들이마시는 것이 얼마 만인지. 걷는 내내 "좋다"는 말만 연발한 이유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천상의 화원이라더니 어쩐지 꽃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생종의 약 20%에 해당하는 850종의 식물이 살아가는 곳이라던데….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눈을 크게 떠보자. 수풀 사이로 작고 아기자기한 꽃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다.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득 둘러싼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가 무엇인가 했더니 곰배령은 '극상림'이란다. 산림이 파괴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종 구성이 평형을 이루고 안정적인 상태에 이른다고.

시원한 계곡물이 흥을 더한다

아뿔싸. 야생화에 시선을 빼앗겨 풀썩 진흙을 디뎠다. 자연을 최대한 보존한 덕에 등산로 곳곳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나무뿌리가 드러나면 드러나는 대로. 자연의 곁을 잠시 빌리는 길이었다. 얼룩덜룩해진 신발이 찝찝하지만 뭐 어떤가. 더 힘차게 발을 디딜 용기가 생겼다.

곰배령 정상에서 추억을 남기는 등산객들

한 시간 반 만에 드디어 해발 1,164m에 위치한 곰배령에 올랐다. 약 5만평(16만5,290m²)에 달하는 드넓은 초지가 맞이한다. 구름에 해가 가릴 때마다 초원이 시시각각 색을 바꾼다. 곰이 배를 드러내고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모습이라 곰배령이라 이름 붙였다고. 바람이 불 때마다 꽃이 파도쳤다.

●곰배령은 경후식

초조했다. "입산 제한 시간이 있으니 막걸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단 오르세요" 가이드가 어찌나 신신당부하던지. 정상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막걸리와 나물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선마을에는 등산로를 따라 양쪽으로 두 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고민은 잠시, 발길이 이끄는 대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밖에 앉았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의 변덕조차 추억이라 생각하며 실내로 들어갔다. 이내 나물전과 도토리묵이 나왔다. 곰배령에서 자란 나물을 빼곡이 넣어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전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짭짤하면서도 매콤달콤한 도토리묵무침은 입맛을 돋운다. 하이라이트는 곰취막걸리다. 곰취 특유의 쌉쌀한 맛은 거의 나지 않지만 꿀떡꿀떡 목을 타고 절로 넘어간다.

나물전과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강선마을
등산 후 막걸리 한 잔은 일품

등산할 때면 늘 동물 친구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한다. 곰배령은 조류와 포유류도 71종이나 서식하는 터전이라고. 내려가는 길에 청설모 두 마리를 만났다. 나무 위에서 서로 용맹하게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 숨을 죽이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자연 속에서의 힐링도 잠시, 이제 본 주인에게 자연을 돌려줄 때다. 그제서야 흙투성이가 된 신발을 툴툴 털어냈다.

우연히 만난 청설모

▶곰배령 야생화 사전

붉은병꽃나무
5월에 깔때기 모양의 붉은 꽃을 피운다. 양지 바른 곳에서 관찰되며,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높이는 2~3m까지 자라며, 관상용으로도 좋다.

고광나무
우리나라 각지의 산골짜기에서 자생한다. 5~6월에 향이 나는 하얀 꽃을 피우고, 9~10월 열매를 맺는다. 높이는 2~4m에 달하며, 비옥한 양토에서 잘 자란다.

붓꽃
곧추 서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국 산기슭에서 만날 수 있으며, 초여름 줄기 끝에서 2~3개의 자색꽃이 피어난다. 뿌리는 약용으로도 쓰인다.

미나리아재비
습기가 있는 양지에서 자란다. 전국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꽃잎은 5개로 샛노란빛을 띠며 윤기가 난다. 6월에 꽃이 핀다.

졸방제비꽃
연한 자주색 꽃이 5~6월에 피어난다. 줄기 전체에 털이 있으며, 잎은 끝이 표족한 모양새를 띤다. 산 아래 양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쥐오줌풀
뿌리 부분에서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전국 각지에 분포하나 산지의 약간 습한 기후가 가장 알맞다. 5~8월에 붉은 꽃이 피어나며, 꽃부리는 5개로 갈라진다.

(참고=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곰배령 글·사진=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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