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의 고요한 바다

서울문화사 2021. 7.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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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박지훈을 만났다. 혼자 있는 게 좋은, 덤덤한 소년의 무구한 얼굴을 마주하자 고요와 정적이 찾아왔다.
슬리브리스 톱과 와이드 팬츠는 모두 김서룡 옴므, 이어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깨가 이렇게 넓었던가요? 그을린 피부도 매력적이고 체격도 좋아졌어요.

사람이 건강해야죠. 하하.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더 이상 귀엽기만 한 나이는 아니죠.

귀엽다는 말, 별론가요?

사실 예전엔 좋았는데, 나이 들수록 좀 쑥스럽죠. 예전과 다른 모습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많이 변했네요, 워너원 때랑.

성격도 좀 변했어요. 그룹 활동, 솔로 초반 당시엔 신경 써야 할 게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예뻐 보일까, 박지훈이란 이미지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지금은 굳이 꾸며내지 않은 박지훈 그 자체여도 팬분들이 아껴주신단 걸 알게 됐어요. 쓸데없는 생각이 많이 없어졌죠. 하하. 해야 할 것만 열심히 하고요.

<프로듀스101> 시즌 2에서부터 마냥 귀여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나이에 비해 초연하고 담담해 보였거든요.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서바이벌에서도, 이목의 중심에 있던 워너원 활동 때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어요.

매사에 깊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에요. 내가 왜 이 문제에 이렇게까지 매달라고 있지? 왜 시간을 지체하고 낭비하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면 저는 끊어내고 더 생각을 안 해요. 잠도 꿈 한 번 안 꾸고 푹 자고요.

동시에 윙크나 ‘내 마음속의 저장’이라는 깜찍한 유행어를 만든 것도 박지훈이죠. ‘나 이렇게 귀여워요’라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프로로서 공들인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어요.

그때는 제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켜야 했고, 박지훈이 어떤 사람인지 어필해야 했으니, 제가 가장 표현하기 쉬운 귀여운 이미지를 보여드렸어요. 제가 가진 하나의 무기였고, 강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에도 팬분들은 방송에서 애교 많은 ‘저장 지훈’과 숙소에서 쿨한 ‘숙소 지훈’ 자아가 있다고 그러셨죠. 하하. 절 간파하신 거야. 이젠 애교 없다는 것마저도 귀엽게 봐주세요.

마이페이스죠?

고집 있어요. 남들이 맞다고 할 때 ‘난 아니에요’라고 하는 이상한 고집인데, 청개구리 같은 기질이죠. 남들 다 하는 건 안 하고 싶어요. 평범한 다수보단 특별한 소수에 끌리는 것 같아요. 옷 취향도 화려해서 별명이 ‘독개구리’였어요. 요즘엔 하키에 빠져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취미로 하긴 생소한 운동인데, 무척 재밌어요.

주연 배우로서도 자리 잡고 있어요. <연애혁명>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에 이어 <멀리서 보면 푸른 봄>까지. 여준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박지훈과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 맞나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외로워 보인다고. 하하. 명암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죠. 팬들의 환호와 응원 속에 있다가 혼자가 되면 너무 고요해요. 여준이처럼 그 갭이 크진 않지만요. 하지만 확실한 건 여준이보다는 제가 강한 것 같아요.

강하다는 건 어떤 걸까요?

정신과 마음 모두 건강한 것. 저 멘탈 강해요. 게임할 때만 약하고. 하하. 무엇이 절 흔들어도 저는 절대 안 흔들릴걸요. 다잡을 수 있어요. 안 좋은 말을 들어도 흘려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거든요.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고영수나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의 여준에겐 슬픈 과거가 있고 자주 상처받거나 울죠. 박지훈은 그런 연기를 잘하고요. 비결이 있나요?

댓글을 보면 ‘울리고 싶다’는 말이 많던데. 울려주시면 좋습니다. 우는 연기에 자신 있거든요. 하하. 주변에선 방금 울고 온 것 같은 얼굴이라고 그래요. 저는 연기할 때 말고 어지간해선 울지 않는데 “너 왜 그래, 울고 왔어?” 하시죠. 팬분들은 “얼굴에 서사가 있다”고 표현하시는데 제 삶엔 별 사연이 없었습니다. 하하. 단지 저는 순간에 몰입을 잘하는 것 같아요.

실크 셔츠는 오브디티, 레이어드는 네크리스 쥬디앤폴, 이어커프와 브레이슬릿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는 로에베, 레터링 팬츠는 구찌, 레드 첼시부츠는 오디너리 피플, 이어커프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몰입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저는 현장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 혼자 대본을 외울 때 깊게 상상하지 않아요. 현장에서 감독님 디렉션을 들은 후, 리허설에서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추고 몸이 풀려야 그 순간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몰입이 되거든요. 결국은 집중력 싸움이에요.

신인 배우들은 감정 연기 할 때 자신이 경험했던 비슷한 감정을 끌어올리기도 하잖아요. 박지훈은 어때요?

전 그렇게 하면 제 페이스에 제가 말린다고 생각해요. 여준으로 몰입해서 연기하면 컷 소리가 날 때까지 여준으로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밖에 있는 박지훈의 감정을 가지고 오면 말리는 거거든요. 집중이 안 되고 생각이 많아지죠. 저도 초반엔 시도해본 방법인데, 그걸 알고 그만뒀어요. 연기할 때는 자기 걸 비우고 새롭게 시작하려 해요.

앞으론 무슨 배역을 해보고 싶어요?

웃음기도,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 조용하고 혼자 다니고, 다들 쟤는 그럴 애가 아니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주동자. 이런 반전 있는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일곱 살 때부터 아역 배우 생활을 했죠? 어릴 때부터 <주몽> 등 여러 드라마와 각종 예능, <피터팬> 등 뮤지컬에 출연하고, 워너원으로 데뷔한 후 지금 솔로 활동까지.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일곱 살 때 TV에서 한 배우가 오열하는 연기를 보고 마치 제가 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나도 저렇게 TV 안에서 밖에 있는 사람과 감정을 공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좀 이상한 생각이죠? 하하. 어머니에게 연기시켜달라고 떼써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죠. 초등학생 때는 뮤지컬 배우가 하고 싶었고, 중학생 때는 팝핀에 푹 빠져서 버스 손잡이를 잡고서도 연습했어요. 그때부터 아이돌을 꿈꿨죠. 뭐 하나에 빠지면 미친 듯이 해요.

살면서 목표가 없었던 적 있어요?

없네요. 철이 없었던 적은 있었어도 꿈과 목표는 언제나 확실히 있었어요.

실패한 적은?

있죠. 오디션에서 떨어지거나, 연습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는 게 보이거나. 하지만 저 악바리거든요. ‘야, 너 여기서 끝이야? 여기서 포기할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절대 못 하지’라고 답하곤 했어요. 내가 여기서 포기할 사람은 아니지.

박지훈을 쉬지 않고 꿈으로 이끈 건 뭐예요?

즐거움. 저는 즐거워서 이 일을 해요. 제가 즐거워서 한 걸 팬분들이 즐거워해주시니까 그만큼 동기 부여되는 게 없죠. 팬분들이 “진짜 잘했어” 해줄 때 제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모르실 거예요. 손 편지도 보내주시는데, 그런 진심을 마주할 때마다 힘이 나요.

피드백을 잘 찾아보는 편인가요?

많이 찾아봐요. 팬분들 피드백에서 정보도 얻고, 영감도 얻죠. 열심히 귀 기울이고 반영하려 해요. 저를 잘 아는 분들이고, 저라는 사람을 있게 해주신 분들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아까 남이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한텐 흔들리죠. 하하.

어릴 땐 어떤 아이였어요?

저, 친구가 별로 없었어서. 마산 살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서울 망원동으로 이사 왔는데요. 엄청 낯가리고, 혼자 노는 거 좋아하고, 곤충 관찰하고 채집하는 거 좋아하는 애였어요. 게임 좋아하고 동화책 읽는 것도 좋아했는데, 공부엔 취미가 없었죠. 그 성격이 지금도 그대로 있어요. 저 혼자 있는 게 제일 좋거든요.

지금은 집에서 혼자 뭐하고 놀아요?

아무 생각 없이 운동하고, 음악 듣고, 게임하고, 반려견 맥스랑 장난쳐요. 제가 치대면 한숨 쉬는데 너무 귀여워요.

인간관계도 좁고 깊게?

많이 좁죠. 친구가 굳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다가가는 걸 못 해서, 친구가 된 사람들은 먼저 다가와준 친구들이에요. 비유하자면 밧줄을 걸어서 저를 계속 끌고 와야 해요. 제가 못 끌어오는 사람이라. 하하하. 대신 한번 친해지면 끝까지 가요. 초등학교 때 친구, 고등학교 때 친구, 그룹 활동할 때 친구가 있는데. 지금도 저를 지켜주는 친구들이에요.

사람들이 박지훈에게 갖는 편견이 있나요?

예전엔 절 너무 귀엽게만 보시는 건 아닌가 했어요. 웃는 이미지가 강해서 무표정으로 있으면 안 좋은 일 있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이젠 자연스럽게 깨진 것 같아요. 팬분들은 다 아세요. 제가 사교성 없고, 혼자 있는 거 좋아하니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얘기를 안 해줄 수도 있겠다’고 걱정하시는데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전 약한 사람이 아니고 부정적인 생각도 하지 않거든요. 혼자 있는 건 단지 그게 제게 편하고 익숙해서예요. 혼자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야, 너 여기서 끝이야? 여기서 포기할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절대못 하지’라고 답하곤 했어요.”

박지훈이 삶에서 지향하는 건 뭐예요?

여유롭고 베풀 줄 아는 것.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친구들에게 자주 쏘려고 하고요. 이렇게 베풀면 돼지고기가 소고기가 되어 돌아오더라고요. 하하. 친구들이 지훈이 네가 항상 사줬으니 이번엔 우리가 산다고 소고기를 사준 적 있는데 뿌듯했어요.

자신을 사랑하나요?

사랑, 사랑까진 아니고요. 좋아는 하죠.

자기 얼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눈이요. 많은 분들이 예쁘다고 해주시니, 저도 모르게 관리하게 되더라고요. 평생 써본 적도 없던 아이크림을 이젠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니까요. 하하하.

좋아하는 책 있어요?

나태주 시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조용한 책 좋아해요.

지금 박지훈의 꿈은?

묵묵히 저의 길을 가는 것. 열심히 달려가는 것. 즐거움을 잃지 않으면서요.

셔츠와 플라워 패턴 팬츠는 모두 김서룡 옴므, 네크리스는 쥬디앤폴, 이어커프와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는 김서룡 옴므, 네크리스는 쥬디앤폴, 이어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터링 셔츠는 디올, 팬츠는 프린 라인, 이어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GUEST EDITOR : 이예지 | PHOTOGRAPHER : 김참 | STYLIST : 박지혜 | HAIR : 박창대 | MAKE-UP :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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